너무 짧은 자유
숫자가 주는 진실은 때로 잔인하다. 퇴근길, 멍하니 지하철 창밖을 보며 휴대폰 계산기를 두드려보았다. 일 년 365일 중 온전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연차 15일이 차지하는 비중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결과값은 4.1퍼센트. (사실, 소수점 자리를 확인하는 순간 잠시 숨이 턱 막혔다.) 나의 일 년 중 오직 4퍼센트만이 진정한 나의 시간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우리는 참으로 부유했다. 여름과 겨울, 일 년의 삼분의 일을 방학이라는 이름으로 누리며 살았다. 그때의 시간은 마치 끝없이 펼쳐진 초원 같아서, 우리는 그 위를 마음껏 뒹굴며 무언가를 꿈꿀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편입되는 순간, 그 광활했던 영토는 15일이라는 좁은 웅덩이로 쪼그라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96퍼센트의 시간을 시스템에 저당 잡힌 채 살아가는 '길들여진 존재'가 된 것이다.
더 서글픈 지점은 우리가 이 4퍼센트의 자유를 소모하는 방식에 있다. 많은 이들이 이 짧은 휴식을 '재충전'이라 부른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자. 재충전이란 결국 다음 날의 노동을 위해 방전된 몸을 다시 추스르는 행위일 뿐이다. 나의 소중한 4퍼센트마저 결국 나머지 96퍼센트의 성실한 톱니바퀴가 되기 위해 바치고 있었던 셈이다. 이 얼마나 지독한 모순인가.
음, 하지만 나는 이제 이 숫자를 다르게 읽기로 했다. 나는 낮에는 사무실의 부품으로 살아가지만, 밤에는 문장을 줍는 작가 지망생이다. 나에게 이 4퍼센트는 단순한 휴식의 공간이 아니라,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망명지다.
이제 나는 4퍼센트의 자유를 '쉬는 데' 쓰지 않기로 다짐한다. 대신 그 시간을 문장을 벼리고 서사를 쌓는 데 오롯이 투입할 생각이다. 남들이 96퍼센트의 피로를 풀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때, 나는 4.1퍼센트의 좁은 틈새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비좁고 위태로운 시간일지라도, 그 안에서 나는 시스템이 가둘 수 없는 자유로운 작가가 된다.
어쩌면 작가가 된다는 것은 시스템이 허락한 4퍼센트의 영토를 조금씩 넓혀가는 투쟁일지도 모르겠다. 퇴근 후의 짧은 두 시간, 주말의 고요한 아침을 모두 이 4퍼센트에 이어 붙이다 보면, 언젠가는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이 나의 언어로 채워지는 날이 올 것이다.
오늘도 96퍼센트의 일상을 견뎌낸 나에게 말을 건넨다. 수고했다, 이제 너의 4퍼센트로 돌아가 문장을 완성할 시간이다. 나는 오늘 밤도 기어이 작가로 살아내고야 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