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먹 여행자의 심심한 여행6 [뉴질랜드, 퀸즈타운]

살기엔 심심한 곳이라고들 하지만, 일주일 보내기엔 천국과 다를 바 없는

by 방랑 소피아

2016년, 호주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계획해 두었던 뉴질랜드 여행을 시작했다. 비행기를 타고 퀸즈타운으로 향한 후, 버스를 타고 크라이스트 처치를 경유해 오클랜드에 가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다녀온 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의 시점에서 나에게 또렷하게 남아있는 도시는 퀸즈타운, 단 하나의 도시뿐이다.

멜버른에서 퀸즈타운으로 비행기 타고 가는 길, 세상 최상의 자연경관을 볼 수 있다는 뉴질랜드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자연은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 꼽힌 이유가 충분히 납득하고도 남을 정도로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퀸즈타운은 연중 내내 관광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도시이지만, 규모가 큰 대도시는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도시 한가운데에 위치한 와카티푸 호수를 중심으로 광활하고 멋진 자연과 어우러지는 도시이기 때문에 대규모 상권이나 키 높은 건물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도시에 비해 호텔도 다양하지가 않아 숙소 예약에 어려움을 겪던 중, 호수 가까이에 위치한 에어비앤비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객실 2개에 큰 거실, 아담한 부엌까지 마치 내가 이곳에 잠시 살다가 가는 듯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완벽한 숙소였다.


거실 한켠에 있던 큰 창문은 호수와 산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그림 같은 풍경을 품고 있었다. 호주에서 시드니와 멜버른, 바쁘게 돌아가는 대도시에서 시간을 보내고 온 직후라 이 고요하고 평화로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짐을 풀지도 않고 거실에 앉아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 것 같은 적막감이 숙소의 공기를 가득 채웠다. 이런 곳에서 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든 몇 안 되는 여행지였다.

짐을 풀고 제레마야와 함께 숙소 앞에 있는 호숫가로 나왔다. 따사로운 햇살과 잔잔한 호수, 유유자적 떠다니고 있는 오리가족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약간의 숙취 그리고 비행의 피로감이 있었던 나는 온몸의 근육이 다 풀어진 사람처럼 넋을 놓고 호숫가에 앉아 있었다. 이 여행의 끝엔 한국으로의 귀국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시작이란 늘 설레면서도 두려운 존재. 그 시작에 앞서 마주하게 된 퀸스타운은 마치 나에게 주는 평화로운 선물 같은 느낌이었다.

왜인지 으슬으슬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분위기가 좋다고 너무 오랫동안 호숫가에 앉아있었던 탓일까. 식당에 가기는 고사하고, 빨리 잠에 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같이 여행 간 제레마야까지 굶길 수는 없는 노릇. 함께 근처 마트에 가서 간단한 식사거리를 장 봐왔다. 요리 재능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나와는 다르게 제레마야는 한 끼 식사쯤 금세 뚝딱 만드는 친구였다. 그 덕에 골골 거리는 몸을 이끌고 멀리 나가지 않고도 숙소에서 갓 구운 연어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었다. 에어비엔비의 몇 없는 조리기구로 만든 식사였지만, 이때 먹은 연어의 첫맛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가장 따뜻하고 고소 한 맛으로 기억되었다.

전 날 푹 쉬고 요양을 잘 한 덕인지 아니면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 왔기 때문인지 다음 날의 나의 컨디션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만큼 상쾌했다. 원래라면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갔어야 할 곳을, 우리는 두 다리로 열심히 걸어 올라 가 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꽤 가파르고 꽤 먼 거리였지만 올라갈수록 와카티푸 호수의 전경이 한눈에 담기는 것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나에게 두 다리 뻐근할 정도로 많이 걸었을 때 가장 뿌듯한 순간은, 바로 이런 여행지에서이다. 걸어 다니며 내 눈에 닿았던 끝이 부서진 보도블록, 골목길의 낙서, 누군가 쓰다 버린 의자 같은 것을 보았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그 어떤 값비싼 어트렉션보다 더 오래 잔상이 남는 법이다.

너무나 아쉽게도, 우리는 퀸즈타운에 딱 이틀만 머무르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퀸즈타운이 이렇게 동화 속에 나올 것만 같은 오밀조밀 귀엽고 평화로운 도시인 줄 알았다면 과감하게 도시 수를 줄이고 이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차마 숨길 수 없었다. 마치 유럽의 크리스마스 거리 같았던 퀸즈타운 번화가에서 실컷 걷고 마시며 남은 저녁 시간을 보냈다. 마치 내일도, 모레도 다시 이곳에 앉아 있을 사람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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