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무엇을 원하는가?"
삶이 내게 다가와 질문했다.
첫 번째 답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구세주 콤플렉스 벗어나기
안동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여성으로서 받은 천대, 아들이 아닌 것에 대한 한,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딸이 되기 위한 노력들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게 만들었다. 그래서 늘 나의 감정과 상태보다는 타인들의 요구와 기대에 먼저 반응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해결사 또는 구세주 역할을 하는 경향이 생겼다.
중학교 때 친구가 사고로 다리를 다치자 친구가 완전히 나을 때까지 등하굣길에 가방을 들어주기로 했다.
집안의 맏딸로서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리지 않기 위해 학비가 저렴한 교대를 선택했다.
대학 4학년 2학기, 임용고시를 준비해야 할 시기가 되어 모두 과대가 되지 않으려 해서 자진해서 과대가 되었다.
교사가 되고 나서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의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노력했다.
교회 청년부에서 활동하면서 일손이 필요한 모든 곳에서 일하고자 하였다.
기피 학년을 맡게 된 동료들이 학년부장을 모두 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내가 하겠다고 했다.
구세주 콤플렉스는 어린 시절에 버려진 고통스런 경험에서 전형적으로 발달한다. 이때는 친절함이나 도움을 주는 행동 방식의 콤플렉스를 드러낸다. 이런 사람들은 남에게 도움을 주고 베푸는 행동이 아무리 자신이나 타인에게 파괴적일지라도 삼가지 못한다. 이런 행동은 실제로 콤플렉스의 통제를 받을 뿐 자아의 통제 아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행동은 임의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으며, 갑자기 일관성을 잃어버려 어떻게 전개될지 예상할 수 없거나 설명도 하기 힘들다. 때로 지나치게 사려 있고 배려가 깊다가도 어떤 때는 무정하고 무관심하며, 심지어 무례할 때도 있다.
<영혼의 지도> by 융
구세주 콤플렉스의 무서운 점은 '어린아이'인 내가 또래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의 문제까지도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다르게 말해 '아이'로 지내야 할 시기를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믿고 의지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어른이 된 나는 누구와도 제대로 된 인격적인 관계 형성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부모의 삶이 자녀에게 늘 정답일 수는 없다
부모님은 모범적이고 도덕적인 편에 속하는 참 괜찮은 분들이시다. 바른생활을 하시려고 노력하시고 자녀들에게 본이 되려고 노력하셨다. 그러나 우습게도 강요의 형식으로 나타났고, 자신들과 다른 자녀들의 모습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으셨다.
"맞잖아. 내가 어디 틀린 말 했니?"
부모님은 이 말씀을 무수히도 많이 하셨다. 어릴 땐 그런가 보다 했지만, 커가면서 보니 그 말씀이 항상 맞는 것 같진 같았다. 틀렸다 콕 집어 말하긴 힘든데, 나와 맞지 않는 일들이 자주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부모님은 늘 말씀하셨다. 자신들은 늘 맞다고. 그럴 때마다 좌절했다. 그럼 나는 늘 틀렸나?
지금은 안다. 부모님의 말씀은 그들에게는 정답일 수 있으나 내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또한 그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도. 부모님이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셨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우울증이 시작되었기에 아빠와 이것을 개선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늘 옳다고 주장하시는 엄마가 내 곁에 계셨다. 엄마와 나는 논쟁에 논쟁을 거듭했다. 갱년기로 고생하시던 엄마는 왜 아빠가 없는 지금 자신만 공격하냐고 소리 지르며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실 때도 있었다. 늙어가시는 엄마가 불쌍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내가 너무 아팠으므로 싸우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여러 번 다투면서 엄마와 나, 동생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했다. 엄마는 자녀들이 자신을 존중해주길 바랐고, 동생과 나는 인간 대 인간으로 다시 사귀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자녀들은 이미 성인이었고, 엄마는 성인인 딸들과 지내는 방법에 대해 새롭게 배우셔야 했다. 또한 자신과 자녀들이 다른 세대라는 것과 자신과 많이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셔야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엄마에게 여러 해동안 부탁했다.
"엄마, 제발 우리에게 뭔가 말씀하실 때에는 '~해라.' 대신에 '~해줄래?'라고 말해주면 좋겠어요."
"그래. 엄마가 또 실수했네. 미안해. 나오미야, 이리 와서 엄마 좀 도와줄래?"
5년의 우울증이 남긴 큰 성과다. 엄마는 이제 '~해줄래?'도 할 줄 알고, 심지어 '미안하다'는 말도 자연스럽게 하실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자녀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즐겁게 지내는 가장이 되셨다.
상담은 새로운 관계 패턴을 배우는 일
우울증 진단 직전 교육 대학원에서 상담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상담이 왜 필요한지 배울 수 있었다. 당시 경기도권에는 이미 상담이나 약물치료가 보편화되기 시작했으나 내키지 않아 계속 미루던 차였다. 교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자.
"상담이란 것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편견이 많지요.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받는 것이고 치료받는 것이라는 생각들이요. 그렇지만 상담이란 것을 이렇게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아프고 괴로운 이유가 자신이 가진 관계를 맺는 패턴 때문이라면, 상담은 새롭고 건강한 패턴을 배우고 연습하는 기회라고요."
그 말씀에 바로 상담을 받기로 결정했다. 삶은 자꾸 무너지고 있었고, 직장에서 우는 날이 늘어나고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아도 나아지지 않는 생활을 멈추고 싶었다.
친구의 소개로 심리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상담자인 선생님은 나와 같은 종교를 가지고 계셔서 세계관과 가치관이 잘 통하는 편이었고, 3000회기 이상의 상담 경험을 가진 분이셨다. 선생님께서 지내온 삶이 나와 비슷한 것이 많아 서로 이해를 잘할 수 있었고, 선생님께서 내 삶을 수용해주셔서 참 좋았다.
새로운 관계 패턴의 핵심은 공감과 경청이다. 상담 선생님을 통해 진심 어린 듣기와 상대의 마음을 콕 집어 표현하는 말하기를 배울 수 있었다. 어떤 이야기든 잘 들어주시고 마음을 잘 읽어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나는 살맛이 다시 나기 시작했다. 살면서 행한 일들, 그게 부끄러운 것이든 하찮은 것이든 모두 내가 살아가기 위해 한 것이라고 내 편을 들어주신 선생님 덕분에 자기혐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자 마음속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사람들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할머니, 엄마, 선생님들, 아빠, 친구들, 교회 교역자 등 여러 사람이 있었다. 그들과의 관계로 인해 아팠고, 계속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미 죽은 사람, 더 이상 만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많은데도 아직 괴로워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런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지 물어보았다.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것은 이것이다.
'모든 건강하지 못한 관계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은 용서이다. 그리고 용서가 늘 관계의 회복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용서는 고통받는 자신을 위한 것이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개인의 관계 패턴은 영유아기의 주양육자와의 애착관계에서 형성되지만 잘 바뀌지 않아 어른이 되어도 영향을 주곤 한다. 그러나 그 패턴은 영구적인 것은 아니다. 관계 패턴이 바람직하지 못하여 스스로를 옭아매거나 자신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사귀고 있음을 발견했다면, 새롭게 배우면 된다. 굳이 상담이 아니더라도 배려심 있고 공감을 잘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조금씩 고쳐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급성 또는 만성 우울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는 경우라면 심리상담을 받아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요사이 위기가정 지원을 위한 상담 프로그램이 국가적으로 마련되어 있는데 무료 또는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받을 수 있다. 상담을 받는 일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수학이나 영어를 배우러 학원에 가듯이 새롭게 사람을 사귀는 방법을 배우러 간다 생각하고 가볍게 시작해보시길 적극 추천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