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한 피서지 이야기

납량 특집 아님 주의

by 김효주

<본 소설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학교, 사건 등은 모두 사실이 아님을 밝힙니다. >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나오미는 생각했어요. 그러더니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각자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나요? 왜 그렇게 생각했냐고요?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하소연을 하면 다들 자기도 힘들다고 하고 아무도 나오미가 힘들다고 하는 말을 믿어주질 않아서요. 첨에는 공감을 받지 못해서 무척 속상했는데요.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다른 사람들도 다 일하는 것을 힘들어해서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나요?


그런데 얼마 전 나오미는 진짜로 학교에서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요. 선배님이랑 같이 갔던 외국어 연수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선배님과 나오미는 기숙사에서 한 달간 합숙을 하는 연수를 받게 되어 설렜는데, 막상 도착해서 보니 다른 방이라서 무척 실망스러웠대요. 하지만 각자의 방의 다른 선생님들과도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해요.


전화기에 진동이 와서 보니 선배님으로부터 전화가 오고 있었어요.

"네, 선배님."

"나오미, 양치 다 했어? 다음 강의 전까지 우리 방에 내려와서 놀래?"

"네, 다 했어요. 그럼 짐 싸고 열쇠 맡겨놓고 갈게요."

"응, 어서 와. 215호야, 알지?"

"네, 가서 문 두드리면 되죠?"

"응, 이따 봐."

"네."


나오미는 다음 시간 과목을 확인하고 짐을 챙겨서 선배님의 방으로 내려갔어요. 문을 두드리니 선배님 방의 다른 분(찰랑 선생님)이 맞아주십니다.


"어, 나오미 선생님. 어서 와요. 선배님은 잠시 화장실 가셨어요."

"안녕하세요. 아, 그렇군요. 그럼 선배님 자리에서 기다릴게요. 감사합니다."


나오미가 선배님, 선배님 했더니 다른 분들도 그렇게 불러주십니다. 얼마 안 있어 선배님이 나오셨어요. 나오미가 일어났어요.


"나오미, 왔네. 앉아 앉아."

"네. 이 방은 분위기가 밝네요. 저희 방 선생님들은 대체로 쉬시는 걸 좋아하셔서 식사하고 나서는 대부분 한숨 주무시더라고요."

"그래? 방마다 분위기가 많이 다른 가 보다."

"그러게요."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선배님과 같은 공간에서 침대를 쓰시는 안경 선생님이 들어오셨어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식사 맛나게 하셨어요?"

"나오미 선생님 오셨네요. 네, 맛나게 먹었죠."

"날씨가 좋네요."

"그러게요. 오늘은 맑고 기온도 높아서 풀장이나 해수욕장에 가고 싶네요."

"진짜 그래요. 이 더운 여름에 연수원에 모여서 영어 공부한다고 다들 모여있네요. 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여름에 수박도 먹고 놀고 하면 좋은데 그렇지?"

"하하하 그런 날도 있겠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아까 문을 열어주신 찰랑 선생님도 들어오셨어요.


"무슨 이야기 나누시고 계세요? 수박 이야기 들은 거 같은데."

"선생님, 어서 와요. 날씨가 너무 좋아서 수박도 먹고 물놀이도 하고 싶다 그러고 있었어요."

"아하, 그렇군요. 하하하 선생님들 최고의 피서지 하나 소개해드릴까요?"

"그런 곳이 있어요?"

"그럼요. 우리 모두 다른 지역에서 왔잖아요. 수원, 평택, 여주, 의정부, 구리. 그렇지만 모든 선생님들이 가실 수 있는 최고의 피서지! 제가 딱 소개해드릴게요!"

"어머, 거기가 대체 어디래요?"

"그런 곳이 있어? 얼른 말해봐 봐."

"두구두구두구!! 그곳은 바로!!"

"바로?!!"

"학교 교무실입니다!!!!"

"에이, 뭐야."

"허허허.. 하하하..."


다들 찰랑 선생님의 농담에 김이 빠져 헛웃음을 웃습니다. 그러자


"어라, 다들 동의하시는 거 아니에요? 학교의 다른 곳은 에어컨을 잘 안 틀어주지만 교무실만큼은 항상 시원하잖아요? 그렇죠?"

"그건 그렇죠. 늘 교감 선생님이랑 교무 부장님도 계시고 하니까."

"그리고 늘 학부모님들이나 손님들 오시니까 시원해야죠."

"그렇죠. 그렇지만 최고의 피서는 좀...."

"하하하 제 말씀을 좀 들어보세요. 저희 학교는 규모가 작아서 일이 진짜 많은데요. 몇 년 전에 제가 멋도 모르고 열심히 계획을 세워서 동남아로 여행을 갔거든요. 근데..."

"근데..?"

"딱 도착해서 호텔에서 짐을 풀려고 하는데!"

"풀려고 하는데?"

"학교에서 전화가 오는 거예요!!"

"엥? 왜? 학교에서 왜요?"

"제가 그때, 윤리부장에다 체육부장에다 3학년 부장까지 하고 있었거든요."

"뭐라고요? 어떻게 한 사람이 그 일을 다 해요?"

"선생님, 저랑 발령 같이 난 거 아니었어요?"

"맞아요. 근데.. 학급수가 적으면.. 그런 일이 생기더라고요."

"왜 그런 거예요? 저는 잘 이해가 안 돼요."

"저도 학교 오기 전까지는 몰랐는데요. 대한민국의 공립 초등학교는 어느 곳에 있든, 학급 수가 많든 적든 무조건 똑같은 양만큼의 일을 해내야 하는 것 같더라고요."

"네? 그런 게 어딨어요! 학교가 작으면 할 일이 적어야 맞는 거 아니에요?"


나오미는 그 말을 들으며 멘붕이 왔대요. 지금 학교에서 방송 업무가 많아서 헐떡이며 겨우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학교 규모가 더 작은 학교로 가면 대체 어떻게 되는 건지 감이 안 오는 거예요. 선생님이란 걸 시작하고 나서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였어요. 쉽게 말해 벽지의 아주 작은 학교를 가게 되면 신규 교사에게 각종 큰 덩어리의 업무 부장을 2개씩 맡기기도 하고, 학년에 반이 1개뿐이라 학년 부장일까지 하게 된다는 거잖아요. 근데! 그 양이 학교마다 똑같다니요!!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지!!


"워워. 나오미 쌤. 진정해보세요. 워워."

"아, 죄송해요. 제가 말도 안 되는 걸 보면 가끔 흥분하고 그래서요."

"진짜 말도 안 된다, 그렇지? 나오미?"

"네, 다음 학교 어디로 가야 하나 벌써 걱정돼요."


학교마다 주어진 업무를 100으로 생각해보면,

예를 들어 학급이 50개가 되는 학교가 있고

쉽게 선생님이 50명이 있다면

1인당 일은 2 만큼씩 하면 되는 거죠.


만약 학급이 5개짜리 학교가 있다고 생각하고

선생님도 5명이라고 생각하면

1인당 업무의 양이 20이 되는 거라는.....

(물론 학교엔 학급수보다 더 많은 선생님이 계십니다. 계산의 편의를 위해 과장되었음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소도시의 적당한 규모(30개 이상의 학급이 있는)의 학교에서는 신규교사에게 0~2 정도의 일을 줍니다. 학급이 많은 만큼 담임교사의 수, 전담 교사(영, 음, 체. 과학, 도덕 등)의 수도 훨씬 많아 일할 수 있는 교사의 수도 많기 때문에 나오미의 경우 발령 직후에는 0.5 정도의 일 밖에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업무가 많아지다고 해도 3~5 이상을 줄 필요가 없었죠. 그러나 일반적으로 업무 부장(교무, 연구, 윤리, 과학, 정보, 체육 등)을 맡게 되면 어느 학교든 업무량이 같기 때문에 7~10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직속 계원 3~4명을 두었다는 가정 하에서요. 그런데 찰랑 선생님은 신규교사인데 30 이상의 업무를 맡고 있다고 하니.... 나오미는 너무 놀라버린 것이죠.


다들 어안이 벙벙하던 순간 선배님이 찰랑 선생님께 묻습니다.

"아, 맞다. 선생님, 그래서 여행 가서 받은 전화는 뭐였어요?"

"하하 제 여행 이야기 생각나셨군요! 그래서 국제전화를 ㅠ 학교 번호라서 받았는데요... 오늘까지 보내야 할 공문이 발송이 안 되었다고 빨리 확인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동남아에서요?"

"컴퓨터는 들고 가셨어요?"

"네, 가져가긴 했죠. 여행 사진 편집용으로다가...."

"아... 그래서 어떻게 잘 해결하셨어요?"

"흐흐흐 그때만 생각하면... 뭐 결론적으로 그날 안에 공문을 처리는 했죠. 그날 여행 스케줄은 다 취소하고요."

"하이고... 저런.."

"근데요! 그게 끝이 아니에요. 하하하 그렇게 매일 같이 전화가 오는데... 내가 대체 왜 여행을 왔을까 싶을 정도로.. 무척 후회스럽더라고요... 같이 갔던 친구들이 첨에는 도와주더니 나중에는 '넌 오늘도 호텔에 있을 거지?' 하면서 나가는 거 있죠... 하..."

"어머나, 어머나."

"진짜 속상하셨겠어요. 여행 가서 잘 쉬다 오셨으면 힐링도 되고 좋았을 텐데..."

"그러게요... 그래서 귀국하고 나서 지금까지 저는 피서는 무조건 교무실로 갑니다."

"아.. 그런 깊은 뜻이..."

"에이~ 너무 그러지 마세요. 꽤 괜찮아요. 공문이 오면 바로 처리하고, 학교 행사 있으면 가서 같이 앉아있어 주고요. 교무실에서 제 폰으로 전화도 안 오고요.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데요. 그냥 이 학교 떠날 때까지만 방학은 포기하자. 생각했죠."

"아.. 근데! 어떻게 이번 연수는 오셨어요?"

"그랬는데... 이번 방학 앞두고는 그러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참는데도 한계가 있죠."

"아, 그러셨구나.. 잘하셨네요!"

"아, 그래서 여기 오셔서도 맨날 수업 중에 전화받으러...."

"네. 그래서 미리 교수님들께 말씀도 드려놨어요. 전화받으러 가면 학교에서 전화 오는 거니까 양해 부탁드린다고요."

"아... 선생님.. 진짜 수고 많으시네요... 저는 제 일이 젤 힘든 줄 알았는데... 정말 더 힘든 곳도 있군요."

"저도 첨엔 죽을 맛이었어요. 어떻게 신규한테 부장을 3개나 맡기는지... 제 정수리 좀 보세요."

"어머, 선생님! 20대 중반인데 벌써 정수리가..."

"하하 저만 그런 게 아닐 걸요. 거울 가서 자기 정수리 좀 봐 보세요."


선생님들은 너도 나도 거울로 달려가서 머리 위쪽을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나오미도 젤 뒤에서 정수리를 보려고 까치발을 들었지요.

"어라.. 나도 그러네..."

"어머어머, 저도 그래요."

"저도 거울 좀... 앗.."


자리로 돌아온 4명의 여 선생님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어요. 다들 각자의 일에 지쳐 머리가 하나둘씩 빠져버린 걸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찰랑 선생님이 우울해진 분위기를 보고선 말씀하셨어요.

"정수리 쪽 탈모는 스트레스성이라고 하더라고요."

"아, 그래요? 어떻게 아셨..."

"병원에 가 본 거예요?"

"네, 저는 정수리 말고도 머리가 너무 많이 빠져서 걱정돼서 가봤어요."

"아..."

"에이, 왜 그러세요. 괜찮아요, 지금은. 의사 선생님이 보시더니 무슨 일 하냐고 해서 교사라고 하니까 끄덕끄덕 하시는 거예요."

"의사 선생님이요?"

"네, 그러시더니 이건 교사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하시면서 스트레스 적게 받도록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아... 선생님 진짜 고생 많으시네요, 진짜... 지금은 좀 어떠셔요?"

"지금 이게 좋아지고 있는 거예요. 지금도 뭐 부장은 3개 맡고 있긴 한데 작은 공문 처리 같은 건 교무보조 선생님께 많이 넘겼고요. 학교 안에서 주로 있을 수 있는 업무로 부장을 달라고 해서 그렇게 일을 좀 바꿨더니 덜 힘들더라고요. 체육선생님이 없는 데다 학교에 배드민턴부까지 있어서 맨날 시합 잡히면 출장을 가야 하니 너무 힘들어서요."

"저런 저런..."

"학교에서 일할 시간도 없었겠네요."

"네, 그랬었죠. 그래도 조금씩 자라고 있어요. 근데 정수리 쪽은 스트레스 많이 받아서 열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서 잘 낫지를 않네요."

"저도 벌써 이렇게 된 줄 모르고 있었어요."


나오미는 교사가 된 지 이제 2년 반이 조금 지난 상태였어요. 학교에서 방송업무를 2년째 계속 맡고 있었고, 올해에는 다른 업무까지 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너무 힘들다고 그만두고 싶다고 많이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찰랑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조금 더 참아볼까, 아직 내 정수리는 텅 비지는 않았네 싶었대요. 그렇지만 다음번에 찰랑 선생님이 일하시는 그런 학교에 가게 되면 어떡하지 걱정도 되었어요. 왠지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나오미를 사로잡았지요.


해외여행이나 물놀이 대신 교무실을 피서지로 선택하신 찰랑 선생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나오미는 마음이 우울해져요. 찰랑 선생님은 아직도 교사로 일하고 계실까요? 정수리 탈모는 다 나으셨을까요? 아직 결혼도 하기 전이었는데, 다른 병은 생기지 않으셨을지... 많이 걱정이 되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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