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학교, 사건 등은 모두 사실이 아님을 밝힙니다. >
여름이 되었어요. 나오미는 방학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해봤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요. 교사들이 방학 때 논다고요. 나오미는 그런 말을 듣는 게 참 싫었대요. 왜냐면 그런 분들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기 때문이에요.
학교 주변엔 이런 전설이 있어요.
"선생님들의 진액이 다 빠질 때쯤 방학을 하고, 엄마들이 아이들 3끼 밥하는 데 지칠 때쯤 개학을 한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일은 분명 즐거울 때가 많지요. 하지만 다수의 아이들을 장기간 대하는 일에는 상당히 많은 에너지가 소요된답니다. 선생님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털어넣고 혼신을 다해 가르치십니다. 그러다 보면 교사들의 마음에 있는 사랑, 열정, 관심 탱크가 점점 고갈됩니다. 건강도 많이 상하게 되고요. 그럴 때쯤 방학을 하게 된다는 것이죠.
나오미도 1년 2년 학교 생활을 하다 보니 점점 지쳐갔어요. 그리고 자신의 역량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나오미가 교사가 되었을 때 즈음엔 영어 교육 열풍이 불었기 때문이에요. 영어 과목이 정식 교과로 인정되어 교과서가 나오고 3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생들은 영어를 주당 2시간~3시간 공부하도록 결정되었지요. 그런데 나오미는 중학교 때 "I am a boy. You are a girl. How are you? Fine. Thank you. And you?"를 책으로 배우며 자란 세대였기에 영어를 가르치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인해 불안해진 거죠.
그래서 나오미는 선배님께 상의를 드렸어요.
"선배님, 선배님은 방학 때 뭐 하실 거예요?"
"왜? 뭐 재미있는 거라도 있어?"
"실은 제가 영어 연수에 관심이 좀 있는데 혼자 가기가 그래서요. 같이 가실래요?"
"영어 연수? 나는 기초회화는 들었어. 이번 여름 방학 때 영어 연수 또 있을 걸."
"안 그래도 어제 공문함 보니까 항공대에서 운영하는 연수 신청하라고 공문 왔더라고요."
"하하. 같이 가고 싶어서 그랬구나. 연구실 컴퓨터 켜서 같이 볼까?"
"헤헤. 좋아요."
이렇게 방학 때마다 나오미는 선배님과 함께 영어 관련 연수를 하나씩 차곡차곡 듣기 시작했어요. 당시에 개설되었던 연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 항공대: 영어 회화 연수(기초반/심화반)
- 교육청: 영어 교습법 연수
- 외국어 연수원: 영어 심화 연수(방학 4주간 합숙)
- S여대: 글로벌 리더 연수(방학 중 2주간 합숙)
이 모든 연수를 선배님과 함께 다니면서 나오미는 점차 영어를 가르치는 일에 자신감을 붙일 수 있었어요. 덕분에 방학 때 놀러 가는 일은 거의 포기했지만요.
그렇다면 다른 선생님들은 방학을 어떻게 보내고 계실까요? 방학 때 무엇을 해야 개학하고 나서 아이들을 웃으며 맞을 수 있을까요? 방학은 교사들에게 있어 텅 빈 마음과 지친 육체를 정비하는 필수적인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일들을 주로 하십니다.
일단 쉽니다. 며칠 집에서 푹 쉬시면서 좋은 것을 드시며 건강을 보강하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특히 방학 직전의 학교는 매우 덥고 춥기 때문에 냉방병이나 감기에 걸린 분들이 계시다면 요양을 하시기도 합니다. 또한 다수의 선생님들이 병을 안고 계시기에 병원에 정기 검진을 가시고 치료를 받으시기도 하고요. 나오미의 첫 부장님은 매우 건강한 체형으로 보였으나 암으로 인해 자궁 적출술을 받은 상태시더라고요. 또 암으로 인해 자주 조퇴를 해야 하는 분 J 선생님도 있었지요. 그런 분들에게 방학은 마음껏 치유하는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는 좋은 약이 되는 셈이겠죠.
여행으로 마음의 자유를 얻습니다. 학교에서 학년을 배정하다 보면 재미있는 특징을 볼 수 있는데요, 바로 젊은 선생님들이 주로 고학년 담임을 선호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 보면 또래끼리 동학년 교사를 맡게 되는 경우가 생기고 그런 사람들 중에 마음이 잘 맞는 선생님들끼리 여행계가 생기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까운 동남아 여행을 계획하고 함께 다녀오면서 추억을 쌓는 일로 마음을 정화하는 것이죠. 나오미는 선생님이 되면서부터 여행 통장을 만들었는데요, 가족들과 함께 여름 방학 때 바닷가로 여행을 다녀왔던 게 지금도 기억난다고 해요. 끝없이 펼쳐진 모래밭 위에 작은 그늘막 텐트를 치고 키가 큰 가족 4명이 모두 들어가 보겠다고 낑낑거리던 추억이 생각나면 혼자 킥킥 거리며 웃곤 하지요.
또 자녀들과 찐한 시간을 보냅니다. 선생님들은 자기 자녀들을 잘 돌볼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시는데요.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안타까운 점입니다. 학교에서 일을 하다 보면 교사 자신의 자녀들과 함께할 시간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습니다. 설령 자녀들이 초등학생 연령이라고 할지라도 부모인 교사와 같이 지낼 시간은 거의 없었습니다. 업무 시간 중에는 대부분 학교 근처의 학원을 전전하며 시간을 보내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방학은 그들에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돈독히 하는 중요한 기간임을 알 수 있었어요. 자신만의 엄마가 아니라 다른 많은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야 하는 사명을 띤 부모 밑에서 자라느라 학기 중에는 자녀들이 늘 애정에 목말라 있지만, 개학 후에는 부모인 교사와 더욱 돈독한 관계로 돌아오는 것들을 나오미는 자주 목격했답니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고 문화생활을 하며 각종 연수에 참여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사회가 돌아가는 상황을 잘 파악하되,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되며, 아이들과 학부모가 경험하고 있는 세계를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방학 때를 이용하여 독서와 문화생활을 하면서 간극을 줄여나갑니다. 독서는 학기 중 학생들에게 쏟아낸 열정과 가르침으로 인해 지친 마음에 힘을 주고 다시 일어나게 해 주므로 많은 선생님들이 꼭 하려고 하시는 일들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다양한 연수에 참여하십니다. 나오미도 영어 연수 외에도 애니어그램의 이해, 초등 미술 교육, 미술 치료, 상담의 기본 원리, 놀이 수업 등 여러 가지 연수를 신청하고 참여하여 개학 후를 준비하곤 했답니다. 그리고 영화, 뮤지컬, 연극 등을 관람하고 각종 체험 행사에 참여해보기도 합니다. 나오미는 원래 극장에서는 애니메이션을 잘 보지 않았는데요, 방학 때 때마침 아이들 영화를 봐야겠다 싶어서 <겨울 왕국>을 보게 되었고, 개학 후 아이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 되었다고 해요.
마지막으로 다음 학기 준비를 합니다. 새 학기 중에 운영될 행사들을 기획하고 추진하며, 다음 학기의 교육 과정을 분석하고 재구성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개학 직전에는 교실을 정리하고 청소하는 일을 하기도 합니다. 나오미도 개학 전 1주일 정도는 매일 학교에 갔다고 해요. 보통 이 기간에는 자유롭게 근무하기 때문에 꼭 참석해야 하는 회의가 없다면 오전이나 오후, 교사들이 편한 시간에 새 학기를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교실 바닥을 쓸고 닦고, 정리해 둔 학습준비물들을 다시 꺼내서 배치해두는 일을 하다 보면 나오미는 아이들이 빨리 학교에 왔으면 하고 생각하곤 했대요.
이렇게 다양한 일들이 방학 때 일어납니다. 그리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일도 하나 있지요. 방학 중에는 학교에 가서 근무도 합니다. 물론 학교 규모에 따라 방학 중 근무 일수는 학교마다 다르긴 하지만 선생님들은 하루에서 3일 정도 학교에 가서 교대로 근무를 하게 됩니다. 그날에는 학교 교무실에서 각자 맡은 업무를 점검하고 공문을 정리하고, 잠시 자기 교실 정리를 하러 가기도 한다고 해요. 나오미는 방학 때마다 이 근무 날이 얼마나 빨리 오길 기다렸는지 몰라요. 뭔가 빨리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숙제 같이 여겨져서요. 근무일이 모두 종료되면 그때부터 진짜로 쉬는 느낌이 난다나요? 그리고 가끔 방학 중 행사가 있는 업무를 맡게 되면 방학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고 해요. 나오미는 학교에서 평가와 부진아 지도를 맡은 적이 있는데요, 방학 때마다 3주짜리 수학 캠프를 여는 통에 거의 매일 오전 방학 내내 학교에 가야 했대요. 휴...
방학 때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쉬시는(아니.. 노시는) 분들이 분명히 계셔요. 그렇지만 나오미는 꼭 주장하고 싶었어요. 정말 방학은 선생님들에게 필요한 시간이고, 그 시간을 잘 보내야 다음 학기를 잘 지낼 수 있다고 말이에요. 그래서 쉬시는 분들의 그 시간 역시도 매우 소중한 시간이라고요. 그리고 정말 많은 선생님들은 그냥 놀지 않으신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대요. 누가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그냥 허투루 보내면 너무 아까운 것이 방학이라는 걸 교사들이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