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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 중의 학교

by 김효주

<본 소설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학교, 사건 등은 모두 사실이 아님을 밝힙니다. >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숙직 기사 황 씨 아저씨는 평소에 듣지 못하던 소리를 듣고 덜컥 겁이 났습니다. 이 학교는 평소에 큰일이 없기로 유명했고, 그래서 숙직 기사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 있는 학교였습니다. 지난주까지 일하던 이 씨가 갑자기 그만두면서 드디어 자신의 차례가 되어 오게 된 것이었어요. 횡재했다며 이번 주부터 근무를 나온 건데 이게 웬일이랍니까? 금요일 한밤 중에!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학교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겠어요! 한참 재미있게 보던 TV를 끄고, 다시 귀를 기울입니다.



철커덕 철컥 투구 척


투벅투벅 투투버벅


턱 턱턱 턱턱 턱


(무슨 소리인지 상상해 보세요. 답은 아래쪽에 적어 두었어요^^)


아무래도 숙직실 문을 열고 밖에 나가서 확인을 해 봐야 할 것 같은데, 분명히 모두 퇴근한 것 같다고 전달받은 후라 그런지 등줄기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립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점점 숙직실 가까이로 오는 것 같았어요.


터벅터벅 턱턱 턱턱 터벅터벅 턱턱


숙직실 문고리를 부여잡고 덜덜덜 떨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숙직실을 두드립니다.


쿵쿵 쿵쿵


"기사님, 계십니까?"


앗, 상상했던 나쁜 놈들은 아닌 걸까요? 앳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숙직실 문을 열어봅니다. 문 밖에는 회색 바지에 검은 반팔 티를 입고, 뿔테 안경에 머리가 별로 길지 않은 선생인 듯 선생 아닌 학생 같은 사람이 서 있습니다.

"누구...?"

"아, 안녕하세요. 새로 오신 숙직 기사분이신가요? 처음 뵙는 거 같네요."

"네, 이번 주부터 일하게 됐수다."

"아, 그러시군요. 저는 3-2 담임 나오미라고 합니다. 제가 방송일을 하느라고 금요일에는 늦게 퇴근을 해요. 토요일에 방송이 있어서요."

"아, 그런 거였구먼요. 나는 아무도 없는 학교에 누군가 하고 놀랐습니다."

"아이고, 제가 먼저 알려드린다고 생각을 하고 잊어버렸네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기사님, 제가요... 올해 말까지는 금요일마다 늦게 갈 것 같아요."

"뭐 일하느라 그런 건데 어쩌겠소. 알겠어요."

"감사합니다. 학교 뒤쪽 현관문이랑 후문 좀 열어주시겠어요?"

"그럽시다. 대장에 사인하고 먼저 나가시우."


나오미가 숙직실에서 나서자 숙직기사 황 씨 아저씨가 따라 나오십니다. 나오미는 학교 후문을 걸어 잠그시는 기사님께 인사를 드렸어요.

"감사합니다. 들어가셔요."

"네, 네. 가시우."


숙직실로 돌아가시며 기사님이 휴하고 가슴을 쓸어내리십니다.





여러분은 초등학교에서 몇 시까지 있어보셨나요?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보통 몇 시에 퇴근하는지 아시나요? 나오미는 과연 몇 시쯤 학교를 나선 걸까요? 대체 무슨 일을 하다가 이렇게 어두워질 때까지 학교에 있었던 걸까요?


나오미는 올해 방송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원래 방송일은 학교 행사 시 방송장비를 다루는 일, 방송국 아이들 관리하는 일 크게 두 가지입니다. 그런데 명품 교육 어쩌고 하면서 없던 일들이 마구마구 늘어났지요.


각 학급은 학급별 자랑을 촬영하여 동영상으로 편집을 하여 2주일에 2 학급씩 교내 방송을 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방송국 학생들은 캠페인을 기획하고 촬영하는 일을 맡았죠. 또한 (지금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그때는 좀 이른 감이 있는데...) 공개수업이 있을 때마다 방송 장비를 대동하여 촬영을 하고 모든 수업을 캡처해서 영상으로 저장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어요.


학급일을 하면서도 방송국 아이들 관리하랴, 방송실 기기 관리하랴, 동영상 작업하랴, 오후마다 학년, 학급별 공개수업 촬영하랴 나오미는 몸이 12개여도 모자랄 정도가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과학정보부의 임 부장님(나오미의 직속상관)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나오미 선생님, 방송 업무가 많아서 힘들죠."

"네, 생각했던 업무도 아닌 데다가 올해 방송 일이 너무 커져서 버거워요. 모든 학급 촬영을 제가 다 하고 편집을 다하긴 힘들 것 같아요. 어떡하죠?"

"나도 그 생각을 했어요. 이건 어때요? 학년별로 편집 담당할 수 있는 선생님을 한 사람씩 특별 과외를 하는 거예요. 그 학년은 그 선생님이 담당하는 걸로."

"아, 그거 좋을 것 같아요. 그럼 다른 분들께는 편집 방법 설명해드릴 필요 없을까요?"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좀 알고 계셔야 하니까 두 개 학년씩 묶어서 연수를 하고, 특별히 학년 담당자들에게는 좀 더 상세히 따로 연수를 진행하는 건 어떨까요?"

"오, 좋을 것 같아요.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인데 먼저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아니에요, 나오미 선생님 일이 많은데 다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죠."

친절하신 임 부장님은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일들을 나오미가 잘 소화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어요.


학년별 편집 담당자 연수가 끝났고, 모든 교사들을 위한 촬영 및 편집 연수를 모두 마쳤어요. 순진한 나오미는 연수 때 알려드린 대로 업무가 진행될 것으로 생각했죠. 왜냐하면 선생님들께 캠코더 촬영과 편집 프로그램 사용법을 설명드릴 때 모두 웃고 계셨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앞으로 선생님들 학년에서 촬영 및 편집할 일이 생기면 학년별 담당 선생님이 도와주실 거라는 말씀을 드렸을 때에도 다들 알겠다고 하셨고요.


그러나 예상외의 변수들이 많았어요. 하루는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4-4 학급 차례가 되었습니다. 담임이신 K 선생님은 경력은 짧으신데 나이가 아주 많으시고 아주 권위적이지만, 자기 일은 다 처리 못하시는 것으로 유명했어요. 그래서 업무적으로 그분과 부딪치면 싸우지 않고 지나갈 수 없는 악명 높은 분이었죠. 나오미는 원칙대로 K 선생님 학급에 캠코더를 설치해드리고, 촬영하는 방법을 알려드린 후 학급에 돌아와 수업을 하였습니다. 수업 종이 울리자 말자 전화가 왔어요. K 선생님은 촬영을 다 했다며 얼른 편집을 해내라고 성화를 부리셨습니다.


"선생님, 수고 많으셨어요. 편집에 대해서는 제가 학년 초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학년마다 편집 담당.."

"아, 지금 바빠요? 아니잖아. 일단 방송실로 오세요."

"네? 선생님, 제가 지금 할 일이 있고요. 선생님 학년에는 꽃님 선생님이 편집 담당이셔서 이미 부탁..."

"아, 됐고 일단 방송실에 와서 이야기해요."

나오미는 너무 황당하고 화가 났어요. K 선생님이 그렇게 전화를 끊어버리셨기 때문이죠. 방송실로 갔더니 캠코더를 들고 오셔서는 투덜대기 시작하시더래요.

"이렇게 어려운 걸 어떻게 나한테 시킬 수가 있어!"

"그래서 촬영을 못하셨나요?"

"아니, 옆 반 꽃님 선생님 불러서 해달라고 했지."

"그러셨군요. 선생님, 제가 학년별 연수 때도 알려드렸고 오늘도 알려드렸는데..."

"아, 뭐래. 됐고 빨리 편집이나 해줘요."

"선생님, 제가 오늘 할 일이 있어서 선생님 학년에 꽃님 선생님한테 부탁을 미리 해..."

"아, 그냥 선생님이 해요. 할 수 있잖아."

정말 어이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꽃님 선생님이랑 이미 다 약속을 해 놓았고, 전화만 하면 오게 되어 있는데 그 말을 하지를 못하게 K 선생님이 말을 끊으시니까 화도 나고요. 일단 캠코더를 영상 편집기에 연결해서 캡처를 하며 나오미는 다시 설명드렸어요.

"선생님, 정말 죄송한데요. 제가 모든 학급을 다 할 수 없어서 학년별 담당자를 세웠고 연수를 해드렸어요. 선생님 학년에 꽃님 선생님이 잘해요. 그래서 오늘 오시기로 했어요."

"아, 진짜 선생님은 왜 그래? 평소에 보아하니 사람이 남자 같고 말이야. 그냥 해주면 되잖아. 이렇게 나이 많은 내가 이런 걸 해야겠어?"

결국 나오미는 K 선생님과 입씨름을 하면서 손으로 편집을 시작하고 말았어요. 아예 전화기에 손도 못 대게 떠드시는 K 선생님을 보면서 왜 다른 분들이 이 분과 업무적으로 계속 부딪치시는지 알겠더라고요. 하지만 나오미는 끝까지 말했어요.

"선생님, 제가 꽃님 선생님 반에 전화 한 통만 할게요. 약속해놓은 거 알고 있어요."

결국 나오미가 편집을 시작하고 나자 K 선생님도 동의했어요. 꽃님 선생님은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으므로 바로 방송실에 도착했고 K 선생님은 말문이 막혀 버렸어요. 나오미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꽃님 선생님께 편집을 인계하고 교실로 돌아왔어요. 정신이 나가버리고 기분이 너무 나빠서 해야 할 일을 할 수가 없었대요. 한참을 멍하니 교탁 의자에 앉아있었더니 한숨만 나오다가 눈에서 뭔가 주르르륵 흘러내리더래요. 아주 뜨겁고 짠 것이 입술까지 내려오더래요.


며칠 후 K 선생님 학급의 편집본 영상을 확인하러 방송실에 들렀어요. 자세히 보니 나오미가 편집한 부분에서 1분 정도 더 편집이 되어 있고 끝났더라고요. 그 1분 더 해드리면 될 걸 굳이 꽃님 선생님 불렀나 싶기도 하고, 괜히 싸웠나 싶기도 해서 허탈했대요.


그래도 K 선생님네 학급 편집은 꽃님 선생님이 마무리해주셨지만, 다른 학년에서는 편집 담당자가 출장을 가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 촬영 자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영상 관련 연수는 빛 좋은 개살구가 되고 말았죠.


결국 그러다 보니 나오미는 여름이 되고부터는 토요일 방송을 앞두고 금요일마다 학교에 남아 밤 9시가 되도록 편집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어요. 왜냐하면 퇴근 전까지는 또 다른 일들을 해야 했기 때문이죠.


수업을 미리 준비하고, 방송 업무 관련 공문을 처리하고, 학교 행사 시 방송을 미리 준비하고, 방송국 아이들과 만나서 미팅하고 캠페인 기획, 촬영, 편집까지 돌보고, 학년별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연구실에 들렀다가 잡혀서 억지로 차를 마셔야 하는 등 퇴근하기 까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학교에 계신 시간엔 함께 처리할 것들을 하느라 오롯이 편집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나오미는 내일 방송을 위해 2개 학급에서 찍어오신 영상을 캡처하고 자르고 붙이고 자막을 넣고 음악을 깔고 하면서 작업을 한 것이죠. 그나마 적성에 맞아서 재미는 있는데 당시만 해도 영상 편집 프로그램이 비싸기도 하고 많이 보급도 안 되던 시대라서 집에 가서 작업을 할 수가 없으니 학교에 꼼짝없이 붙어 있었던 거예요.


겨우 2개 학급 작업을 마치고 나니 8시 반, 방송국 아이들이 촬영 후 편집해둔 것을 마무리하니 9시가 되고 말았어요. 갑자기 주변이 어두컴컴하다는 생각이 들자 무서운 생각이 들어 서둘러 정리하고 방송실을 나섭니다. 방송실 불을 끄고 문을 잠그고 나면 온통 검습니다. 귀신이 나와도 안 보일 것 같이 어두운 복도를 60걸음쯤 걸으면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오죠. 1층 아래쪽으로 켜지는 형광등 불을 켜고 빠르게 뛰어내려 갑니다. 그리고 숙직실을 노크합니다. 이렇게 어두운 금요일이 지나가지요.


돌아보니 뭐하러 그렇게까지 열심히 했나 싶습니다. 학년 말에 학교에서 원하신 대로 명품교육 방송부문 상을 받긴 했지만, 학교로 공이 갈 뿐 나오미에게는 별 영향이 없었대요. 성과급이라는 보너스가 있다는 말을 듣고 열심히 하면 보상받을 수 있을 거야 하며 일을 했지만, 이름만 '성과급'일 뿐 등급을 나누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그 해 일한 시간이 아니라 경력이라는 걸 나중에 알고 나오미는 무척 실망했어요.


한밤 중까지 남아있는 걸 알았지만 그 누구도 나오미에게 초과근무 수당이 있으니 그걸 받으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고, 뭘 그렇게 열심히 하냐는 핀잔만 돌아왔죠.


나오미의 옷은 더욱 어둡고 칙칙한 색깔로 변해갔고, 얼굴에서는 생기가 사라져 갔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어떤 일에도 의미를 느끼지 못한 채 나오미의 하루하루가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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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님께서 들으신 소리들의 실체입니다^^


(불 끄는 소리)


철커덕 처컥 투국 척

(어둠 속에서 울리는 문 닫고 잠그는 소리)


투벅투벅 투투버벅

(나오미가 걸을 때 슬리퍼가 시멘트 바닥에 닿으며 내는 소리)


턱 턱턱 턱턱 턱

(손으로 벽 더듬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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