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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만 빼고 다 아는 이야기

by 김효주

<본 소설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학교, 사건 등은 모두 사실이 아님을 밝힙니다. >


궁금하셨죠? 나오미가 H 선생님을 따라 3학년으로 갔을지 아님 다른 곳으로 갔을지 말이에요. 후훗


이윽고 12월이 되자 다른 학교로 가시는 선생님들의 전출서류 준비로 학교가 공식적으로 북적거리기 시작할 때쯤, 나오미가 사랑하는 선배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나오미, 내년에 어느 학년으로 가고 싶어? 결정했어?"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나랑 같이 안 갈래? 나는 3학년 가려고."

"아, 그래요? 선배님이랑 같이 가고 싶긴 한데..."

"왜 뭐 걸리는 거라도 있어?"

"아니요, 그냥 뭐..."

"그럼 한 번 생각해 봐. 나는 나오미랑 같은 학년 하고 싶다아~"


선배님의 한 마디에 나오미의 마음이 흔들렸어요. 게다가 요즘에는 H 선생님이 나오미에게 잘해주십니다. 다른 학교로 출장을 갈 때에도

"나오미 선생님, 내 차 같이 타고 가요."

그러시고요. 한 번은 연구실에서

"나오미 선생님, 내년 학년 생각해 봤어?"

"아직 고민 중이에요."

"나랑 같이 3학년 가자. 내가 많이 도와줄게."

하면서 대놓고 의사를 물어보시네요. 그러면서 평소에는 자기 애들 이야기하느라 바쁘시더니

"그럼 이번에는 나오미 선생 이야기 한 번 들어봐요, 우리."

이렇게 대화에도 끼워주시는 게 아닙니까!


순진하고 바보 같은 나오미는 선배님의 권유와 H 선생님의 유혹에 빠지고 말았어요. 그리고 업무, 학년 배정서에 이렇게 써서 냈지요.

"어느 업무든 상관없습니다. 선배님과 H 선생님이랑 같은 학년에만 넣어주십시오."

이 한 문장에 나오미의 미래가 얼마나 험난해질지도 모르고요!


교내 인사 이동은 교감선생님의 권한이십니다. 선생님들이 즐겁게 학교 생활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조정을 하시죠. 만약 꼭 하고 싶은 업무가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을 지정하시고, 웬만해서는 다들 친한 사람들 위주로 학년을 구성하길 원하기 때문에 선호 학년, 친한 교사들 위주로 이동시키시죠. 업무는 작고 미천한 것들을 원하기 때문에 조정이 들어가야 하고요.


여기서 잠깐!

초등학교에서는 업무가 매년 바뀔 수 있습니다.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는 경우가 아니어도 원칙적으로는 해가 바뀔 때마다 다른 업무를 지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로 맡은 업무가 더 크거나 중한 경우가 아니면 다른 학교로 옮길 때까지 같은 업무를 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학교를 옮길 때마다 업무 영역이 바뀔 수 있으므로 학교 밖에서 그 업무 경력을 인정해줄 만큼의 전문성이 쌓이지는 않는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생님들은 업무 희망서에 웬만하면 다들 자신이 하던 일을 하게 될 것을 알고도 아주 쉬운 일 3가지를 적어내곤 합니다. 내년에는 일을 적게 하고 학급에 집중하고 싶다는 꿈과 함께요.

동학년 교사가 좋으면 업무가 힘들어도 1년이 즐겁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같은 학년을 구성하는 교사진은 서로에 대한 영향이 매우 크답니다. 따라서 비공식적 인사조정이 먼저 시작돼요. 그 후 12월 중순, 방학 직전에 업무-학년 배정 희망을 적어내는 서류를 작성합니다. 그 내용을 토대로 교감 선생님이 여러 차례 조율과 조정하셔서 새 학년도 업무가 결정됩니다.


학년-업무 배정이 완전히 끝나는 건 2월입니다. 왜냐면 다른 학교로 가시는 분들과 새로 오시는 분들까지 다 조정이 되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남게 되는 교사들로 배정하는 것은 1월 말이면 완료되지요.


교감 선생님은 나오미에게 선배님과 H 선생님이라는 동학년을 선물하는 척하시면서, 생각지도 못한 업무를 맡기셨어요. 그건 '방송 업무'였죠. 나오미는 생각지도 못한 업무에 방송실을 담당하시는 선생님께 달려가 업무 인계를 받았어요. 근데 뭐랄까 너무 쉽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방송실은 '방송 담당 어린이'가 있어서 담당교사는 그 아이들만 관리하면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선배들이 대대로 훈련이 잘 되어 있어 뽑아주기만 하면 알아서 교육을 잘 시키기 때문에 방송하는 일은 어렵지 않아 보였어요. 그리고 혹시 방송실 장비에 문제가 생기면 계약한 업체에 전화를 걸어 수리를 요청하면 되고요.


생각보다 조금 쉬워 보이는 업무를 맡게 되어 나오미는 안심이 되었어요. 9월에 학교에 오게 되어서 새 학년 담임이 되어도 아직 6개월이 좀 넘은 상태이기 때문이죠. 아직도 학교란 곳이 낯설고 아이들이 두렵기도 한 나오미는 참 기뻤답니다. 왠지 2년 차에는 더욱 기분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고요!! 교감선생님이 대체 왜 방송 업무를 맡겼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말입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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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초 교감-교장 회의>

교장선생님: 채 교감, 지난해 우리 학교가 연구학교가 끝나는데 올해에는 다른 것을 할 계획이 있습니까? 다른 학교 이야기 들어보니 슬슬 준비한다고 하던데요.

교감선생님: 네, 교장 선생님. 올해에는 방송으로 해볼까 합니다.

교장선생님: 방송이요? 한번 들어봅시다.

교감선생님: 그러니까 올해에는 연구학교보다는 대회 형식으로 참가를...


<2월 초 부장회의>

교장선생님: 작년까지 연구학교 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올해에는 연구대회 형식으로 해볼까 합니다. 교감선생님 설명 부탁해요.

교감선생님: 올해에는 명품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교별 대회가 있습니다. 우리 학교는 여러 항목들 중에서 방송으로 해볼까 합니다.

부장님들: 어떤 형식으로 하게 되는지요?

교감선생님: 학급별로 자랑할 거리들을 찾아 촬영하고 동영상을 만들어 학교 방송에 내보낸 후, 그것을 저장장치에 넣어 제출하는 것입니다.

부장님들: 그러면 방송업무가 확대되겠네요.

교감선생님: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임 선생, 올해 과학정보부 맡게 되었는데 방송 담당 선생님 도와서 잘 추진해 주십시오.

임 부장님: 네, 알겠습니다.

부장님들: 그럼 학급별로도 촬영 및 편집 등 일이 많아질 듯한데, 학교 방송 시설은 충분할까요?

교감선생님: 네, 그래서 방송실 장비도 보완하고 영상 편집 프로그램도 구입할 예정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임 부장이 설명을 해주세요.

임 부장님: 네. 내년 과학정보부를 맡게 되었습니다. 명품교육 대회에 방송으로 참가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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