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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과 티키타카

by 김효주

<본 소설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학교, 사건 등은 모두 사실이 아님을 밝힙니다. >


시간이 흐르고 흘러 드디어 개학날이 되었습니다. 학교를 옮기시는 전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나오미가 맡을 4-4는 여자아이들이 드센 편이고, 통합학급이라는 것이었어요. 통합학급은 특수교육 대상자 아동이 학급에 속해있는 뜻으로, 교내 특수 학급에서 국어, 수학 등의 과목을 학생 수준에 맞게 공부하고 나머지 과목은 자기가 원래 소속된 반에서 함께 공부하는 시스템을 말하는 거래요. 전 담임 선생님은 그 친구(Y)가 어떤 행동을 해서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곁에 있는 아이들에게 도와주게 했다고 말씀하셨어요.


아직 학교에 대해 잘 모르는 나오미는 잔뜩 긴장했어요. 학생 명부를 보면서 아이들의 이름을 다 외긴 했지만, 자리 배치도를 보며 이름을 부를 준비를 다 했지만, 아직 아이들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으니까요. 그리고 다른 선생님과 이미 한 학기를 보낸 아이들이 나오미를 어떻게 생각할지도 잘 모르겠고요. 또 학급에 도움이 필요한 친구가 있다고 하니 더욱 부담이 느껴졌어요.


8시쯤 출근한 나오미는 책상을 정리하고 수업 준비를 했어요. 일단 첫 시간에는 서로 소개를 해야 할 것 같았어요.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고 있는데 어떤 아이가 다가왔어요.

"선생님, 방학 숙제는 어떻게 해요?"

아차, 나오미는 개학인 것은 알았지만 방학이 끝났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거예요!

"아... 숙제... 일단 아이들이 다 오면 한꺼번에 같이 걷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조금 기다려줄래?"

어휴.. 숨을 돌리기 무섭게 다른 아이가 다가옵니다.

"선생님, 방학 숙제 어떻게 할까요? 어디다 내요?"

응? 방금 한 이야기를 못 들은 걸까요? 일단 친구들 기다려달라고 이야기해둡니다. 그 후로도 몇 명이나 더 나왔다지요. 나중에 다른 선생님께 들었는데요. 학교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요. 1학년은 모든 아이들이 선생님한테 이야기하러 나오고, 2학년은 학급 인원의 반쯤 나온대요. 어휴. 그걸 어떻게 다 감당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드디어 8시 40분이 되었어요. 둘러보니 모든 학생들이 등교해서 자기 자리에 앉아있어요. 나오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칠판 앞에 섰어요. 새로운 선생님을 보는 아이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앞을 바라보고 있었어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앞으로 여러분과 함께 공부하게 될 나오미 선생님입니다. 먼저 선생님 소개.."

갑자기 어떤 아이가 끼어들며 말했어요.

"선생님, 방학 숙제는요?"

"아, 그러네요. 친구들이 다 오면 방학 숙제를 같이 내기로 했죠. 보통 방학 끝나고 숙제는 어떻게 했었어요?"

"개학날 학교 오자 말자 냈어요."

"선생님 책상이나 뒤에 있는 사물함 위에 올려요."

"아, 그랬구나. 그럼 모두 방학 숙제를 꺼내보세요."

생각보다 방학 숙제가 많았어요. 일기장, 독서록, 체험 감상문, 요리실습, 만들기 등 아이들이 왜 그리도 방학 숙제를 내고 싶어 했는지 알겠더라고요. 개학 직전 집에서 숙제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그리고 가방에 한가득 넣어온 과제물을 얼마나 꺼내고 싶었을지요. 그래서 종류별로 자리를 정해서 숙제를 제출하도록 해주었어요. 아이들은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떠들기 시작했어요.

"자, 여러분. 방학 숙제 다 냈으니까 이제 선생님이랑 서로 소개하는 시간 가져볼까요? 선생님이 먼저 소개하고 우리 친구들 이야기 들어봐요."

그렇게 나오미의 교사 첫날 첫 시간이 무사히 지나갔답니다.


며칠이 지났어요. 요즘 나오미의 신경을 자꾸 거슬리게 하는 아이들이 몇 명 보이기 시작했어요. 분명히 인수인계받을 땐 여자아이들이 드세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남자애들이 힘들게 했대요. 수업시간에 무슨 이야기만 하려고 하면 끼어들고, 특히 재미있는 내용이 나오면 어김없이 친구들한테 큰소리로 말을 해서 수업 진행을 방해하는 W라는 아이도 있고요. 나오미는 그 아이가 대체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대학 졸업 동기인 후배한테 하소연을 했더니 하는 말이

"언니, 그 아이가 언니 좋아하는 거 같은데?"

"뭐라고? 나를 좋아해? 좋아하는데 대체 왜 그래?"

"좋아하니까 관심받고 싶어서 그러지. 그리고 좋아하니까 공부가 재밌어서 자꾸 말하는 거고."

"엥? 정말? 나는 잘 모르겠는데...."

"응, 그럴 거야. 왜냐면 걔가 딱 언니랑 판박이거든!"

"무슨 소리야? 나는 수업 시간에 떠들지 않는 범생이었어!"

"아니, 그 말이 아니고. 하하. 언니도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렇게 한다고."

나오미는 충격을 받았어요. 아이들을 좋아하고 잘 지내는 친구라서 조언을 구하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학교에 가서 W를 보니 전만큼 힘든 마음이 생기진 않았나 봐요. 그 후론 W에게 호통을 치는 일도 많이 줄었대요.


이번엔 Y의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Y는 특수교육 대상자로 도움이 필요한 친구라고 첫 부분에 소개한 아이입니다. 학기 초에 Y의 어머님께서 학교로 찾아오셨어요. 담임 선생님이 바뀌었다는 안내장을 받으신 후, Y에 대해 알려주시고 차후 지도방향에 대해 이야기 나누시려고요. 어머님은 먼저 Y를 소개해주셨어요.

"우리 Y는요, 성격이 밝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해요. 집에서는 무척 귀여운 막내고요."

"그렇군요. 친구들도 Y를 무척 좋아하고 잘 지내더라고요."

"그래요? 다행이네요."

"네. 어머님,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이 있는데 여쭤봐도 될까요?"

"그럼요, 뭐든 물어보세요."

"감사합니다. Y가 집에서 생활할 때에는 어떤가요? 스스로 자기를 관리할 수 있나요?"

"네, 그럼요. 혼자 옷도 입고 신발도 신을 수 있어요. 그리고 엄마를 도와서 청소도 하고요."

"그렇군요. 잘하고 있네요."

"그런데요, 선생님... 저희 Y가 첨 보는 어른을 간본다고 해야 할지.. 시험한다고 해야 할지... 암튼 이런저런 행동을 해보는 경향이 있어요. 침을 뱉거나 물을 쏟거나 그런... 사실 제가 오늘도 그 말씀을 드리려고 온 거예요. 절대 선생님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 받아주는지도 보고, 어떻게 행동할지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군요. 안 그래도 1학기 때 선생님께서는 Y가 그런 행동을 종종 했는데 옆에 친구들이 모두 도와주도록 했다고 하셨거든요. 근데 제가 생각할 때에는 Y가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특수교육 전문가인 친구에게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상담했는데 앞으로 Y의 성장을 위해서도 자신의 일을 서서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제 의견을 지지해주더라고요."

"아, 그러시군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하고 있고요."

"그럼 2학기부터는 Y가 자신의 일은 스스로 책임지는 연습을 시작해도 될까요?"

"네, 그럼요. 혹시라도 저희 Y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제가 올 수 있으면 바로 오고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도움을 요청할게요."

"감사합니다, 어머님. 이해해주셔서 너무 기뻐요."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난리가 나서 교탁으로 쫓아왔어요.

"선생님, 큰일 났어요!"

"왜? 무슨 일이야?"

"교실 뒤에 Y가 우유를 쏟아서 버리고 있어요!"

드디어 올 것이 왔나 봐요. 나오미는 담담한 얼굴로 교실 뒤편으로 걸어갔어요. Y는 우유를 다 쏟은 후 빈 우유팩을 들고 가만히 서 있었어요. 나오미는 Y가 쏟은 우유의 양을 가늠한 후, 창가에 놓아둔 마른걸레 1장을 들고 왔어요.

"Y, 우유를 쏟았구나. 치우자. 자, 이걸로 닦으렴."

Y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걸레를 받아 들고 바닥에 있는 우유를 닦기 시작했죠.

"다 닦았네. 선생님이랑 손잡고 걸레 빨러 가자."

나오미는 Y의 손을 잡고 화장실로 갔어요. 걸레를 세면대에 넣고 물을 틀어준 후,

"이제 빨자."

Y는 군말 없이 걸레를 빨았어요. 아직 4학년이라 손 힘이 약해 짜는 것은 나오미가 도와주었어요.

"자, 이제 걸레 들고 가자."

둘은 손을 잡고 교실로 왔어요. 걸레를 창가에 널고 나서 나오미는 Y의 눈을 보며 말해주었지요.

"Y, 네가 한 일은 네가 책임지는 거야. 알겠지?"

그러자 Y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이후로도 Y는 간을 여러 번 보았어요. 급식을 먹다 식판을 바닥에 쏟아보고, 미술 시간에 준비물로 가져온 광고지를 다 찢어서 바닥에 뿌렸어요. 물을 먹다 말고 입으로 쪼르륵 흘리기도 하고요. 그럴 때마다 나오미는 웃으며 다가가 걸레와 빗자루를 건넸어요. 그리고 말했죠.

"Y, 네가 어지른 것은 네가 치우자. 친구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고 Y 너도 할 수 있잖니."

여러 차례 경계를 찾는 작업을 통해 Y는 선생님과 잘 지낼 수 있는 선을 찾았고, 아이들은 도움이 필요 없게 된 Y와 재밌게 지낼 수 있게 되었지요.


다음 해가 되어 아이들이 5학년이 되었고, 나오미는 다른 학년을 맡게 되어 헤어지게 되었지요. 하루는 퇴근길에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W를 보았어요. W는 나오미를 보자 환하게 웃으며 마구 달려왔어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제 퇴근하시는 거예요?"

"응, 그래. 축구하고 있었니?"

"네, 선생님, 근데 손 펴보세요."

"응? 왜?"

"빨리요, 빨리요."

나오미는 얼떨결에 왼손을 폈어요. 그러자 W는 손바닥 위에 조그마한 머리핀을 내려놓았어요.

"이거 동생 주려고 산 건데 선생님 드릴래요."

"어머나, 고마워. 동생이 서운하겠네."

"비싼 거 아니에요. 다시 사면돼요."

미소 짓던 W는 안녕히 가시라면서 다시 운동장으로 뛰어들어갔어요. 사실 같이 있던 작년 2학기 동안 여전히 수업 시간에 말을 끊고, 항상 떠들어대기 때문에 후배의 말이 정말 사실일까 궁금했었거든요. 근데 맞나 봐요. W가 나오미를 좋아해서 그랬던 게 맞나 봐요. 좋아해서 선생님을 괴롭게 하는 아이들이 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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