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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 선생님이 되다!

by 김효주

<본 소설은 픽션이며, 등장하는 인물, 학교, 사건 등은 모두 사실이 아님을 밝힙니다. >


옛날 아주 조금 옛날, 약 10년 전 나오미라는 여성이 있었어요. 며칠 전 교육청으로부터 발령이 났다는 공고를 보았지요. 그리고 오늘 아침 일찍 임용장을 받으러 가는 길이래요.


먼저 도교육청에서 도 단위 신규교사 임명장 수여식 행사가 있어 아버지 차를 타고 나오미는 U시로 달려갔어요. 혼자 가려고 했는데 끝나고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지역교육청으로 다시 이동해야 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들 것 같았거든요. 운 좋게도 살고 있던 지역(S시)에 임용된 것을 알게 된 나오미는 무척 기분이 좋았답니다. 아버지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지역교육청 입구에서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시고 나오미는 교육청사 안으로 들어갔어요. 지나가면서 보기만 했던 건물에 들어가려고 하니 설레기도 하고 겁도 났어요. 입구에 붙여 둔 안내문을 따라 2층에 있는 초등교육과 사무실로 새내기 교사들이 한 둘 씩 모이기 시작했어요. 약 20명 정도였는데, 남자는 3명 쯤 있었고 거의 대부분이 여자 선생님이었어요. 몇몇은 같은 학교 출신이라 되게 반가워했지만, 대부분 서로 모르는 사이라 서먹한 분위기 속에 쭈뼛쭈뼛거리며 서 있었어요. 모든 신규 교사들이 도착하자 담당 장학사님은 교육장실로 새내기 교사들을 데리고 들어가셨어요. 간단하게 축사를 하신 교육장님은 한 사람씩 호명하며 임용장을 나눠주셨어요.


다시 대기하던 곳으로 와서 같은 학교에 발령이 난 선생님들끼리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각 학교에서 선생님들께서 오시기 시작했어요. 나오미와 함께 발령이 난 선생님은 두 사람이 더 있었는데, 한 사람은 나오미보다 1살 어린 여자 선생님(꽃님)이고, 다른 한 사람은 2살 어린 남자 선생님(미남)이었어요. 기다리다 보니 학교에서 연구 부장 선생님께서 오셔서 세 사람을 차에 태워 학교로 이동하도록 도와주셨지요.


학교에 도착한 후, 교장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교무실로 들어갔어요. 개학은 아직 10일 정도 남았지만 2학기부터 바로 일하기 위해서는 인수인계 및 학급 정리해야 하므로 다음 날부터 바로 학교에 나와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어요.


다음 날, 나오미는 9시쯤 학교에 도착했어요. 학교를 돌아보니 대부분의 교실에서 선생님들이 청소도 하시고, 새롭게 환경 미화를 하실 준비를 하고 있더라고요. 아마도 새 학기 준비기간이라 그런가 봐요. 교무실에 새내기 교사 3 사람이 다 모이자 교무 부장님은 학교 사정에 따라 부장님들이 모여 회의한 후 신규 교사가 맡을 학년 및 학급을 배치했다고 하셨어요. 나오미와 꽃님 선생님은 4학년, 미남 선생님은 5학년으로 가게 되었어요.


4학년 연구실에 가보니 선생님들께서 모여 계시더라고요. 돌아가며 소개를 한 후 학년부장 선생님은 나오미랑 꽃님 선생님이 맡은 학급에 대해 말해주셨어요. 나오미가 맡게 될 반(4-4)은 1학기에 약간의 사고가 있어서 민원이 크게 발생했었대요. 나오미가 졸업하고 바로 교사가 되지 않고 학원에서 일했던 경력이 있어서 그 학급 담임으로 배치했다네요. 그리고 꽃님 선생님은 1학기 때까지 지역 교환으로 계시던 중년 남자 선생님이 원래 지역으로 돌아가시고 담임이 필요한 학급으로 배치했대요. 나오미는 뭔가 자신을 인정해주는 것 같았지만, 힘든 학급을 맡기면서 나오미의 의사를 묻지 않은 것에 조금 기분이 상했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학년 부장님이 말씀하셨어요.

"나오미 선생님, 조금 있다 선생님 반 학부모님들과 모임이 있어요. 10시부터."

"오늘이요?"

"네, 아까 말한 것처럼 1학기 때 일로 민원이 많이 발생했고, 담임 선생님이 학교 옮기시는 게 학급 사고 때문으로 생각하는 부모님들이 있어서 그 일로 민원이 생긴 것 같아요. 학원에서 일했던 경력 있으니까 잘할 거 같은데."

"아.. 예.."

"이따 나랑 같이 들어가면 돼요. 아, 그리고 꽃님 선생님 반은 큰 문제가 없어요. 꽃님 선생님은 기질이 부드러워서 드센 아이들이 많은 반은 힘들 것 같아서 4-2로 넣어달라고 내가 특별히 부탁했어요."


뭔가 기분 나빠질 시간도 없이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 10시가 되었고, 부장님은 나오미를 데리고 4학년 4반 교실로 들어가셨어요. 교실엔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던 어머님 다섯분이 앉아계셨어요. 그러다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셨지요.

"어머님들, 방학 잘 보내고 계신가요? 오랜만에 뵙네요."

"네, 안녕하세요. 부장 선생님."

"네, 안녕하세요. 여기는 2학기부터 4-4를 담임하게 될 나오미 선생님이에요. 대학교 졸업하시고 학원에서 오래 일하다가 발령받으셔서 새내기 교사지만 노땅 냄새가 나는 분이죠. 4-4 잘 이끌어갈 것 같습니다. 나오미 선생님, 그럼 이야기 나누세요."

부장님은 나오미만 두고 가셨어요. 나오미는 얼떨떨한 상태로 인사를 했어요. 당당한 척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잘 되었는지는 모르겠어요. 모여 계신 학부모님들은 나오미도 가까이 와서 같이 앉도록 해주시고 1학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 자세히 말씀해주셨어요. 결국 다른 학교로 가게 되신 원래 담임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상황을 잘 설명해드렸어요. 지난해에 전출 신청(다른 지역이나 타 학교로 옮기는 것)을 했으나 3월 발령이 나지 않았고, 보통은 포기하는데 언제든 발령나면 옮기시려고 포기하지 않은 채 대기 중이셨다고. 그것이 9월에 발령이 난 것이라고 알려드렸죠. 열심히 설명했더니 어머님들의 얼굴에서 의구심이 많이 가라앉는 것 같았어요. 따로 이야기를 더 하시고 싶은 것 같아 나오미는 여쭤보았어요.

"어머님들 하실 이야기가 더 있으신 것 같은데 제가 회의가 있어서 먼저 일어나도 될까요?"

"네, 선생님. 그럼 저희들끼리 이야기 더 하고 가도 되지요"

"그럼요."


연구실에 돌아오니 선생님들은 꽃님 선생님을 중심에 놓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어요.

"꽃님 선생님, 나이가 몇이라고 했지?"

"24살이요."

"그렇구나. 우리 아들이 27인데."

"호호호호"

"아이고, 부장님. 꽃님 선생 며느리 보시게요?"

"꽃님 선생이 우리 아들 좋다고 해야 말이지."

"호호호호"


그 이후로도 연구실에 모이면 눈웃음을 치며 호호호호로 일관하는 꽃님 선생을 부장님은 참으로 이뻐하셨지요. 나오미에게는 칭찬인 듯 칭찬 아닌 칭찬 같은 '나오미 샘은 신규인데 노땅 냄새가 나'만 반복하셨고요. 20대인 나오미와 꽃님 선생님을 제외한 나머지 선생님들은 모두 아줌마 선생님이었는데, 모이기만 하면 반찬 이야기, 남편 욕, 자녀들 자랑을 했어요.

"아, 저도 그런 적 있어요!"

나오미는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말을 하듯이 선생님들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끼어들었어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드렸는데 반응이 영 시원찮았어요. 왜 그런지 나오미는 궁금했지요. 여러 번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아줌마 선생님들 중 한 명이 이렇게 말했어요.

"나오미 선생님, 지금은 우리가 우리 애들 이야기하잖아."

나오미는 그날 이후로 연구실에 모여 이야기하는 것이 싫어졌대요. 애가 없으니까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건지, 너는 우리 아이가 아니니까 끼어들지 말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암튼 나오미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속상했나 봐요. 그래서 회의가 아니면 연구실에 가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가끔 커피를 타러 연구실에 들어갔다가 붙잡히면 재미도 없는 어제저녁 반찬 이야기와 애물단지 같은 그들의 자녀 레퍼토리를 몇 시간이나 들어야 했어요. 그럴 때마다 나오미는 의아했어요.


어떻게 꽃님 선생님은 늘 호호호할 수 있었을까요? 정말 재미있어서 그렇게 웃을 수 있는 걸까요?

선생님들이 꽃님 선생님만 이뻐하는 건 호호호만 하기 때문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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