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 찢는 니 맘은 오죽했겠니

by 김효주

용서의 끝은 어디일까?



살다 보면 누구나 '너만큼은 용서가 안 된다'는 사람을 가끔 만나게 된다.

내게도 인생의 역경을 선사해 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그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미궁에 빠진 것처럼 멍해질 때도 있다. 미워하지 않는다고 나 자신을 속이며 억지로 참아보지만 결국 마주 대하는 건 용서하지 않으려 애쓰는 나의 본심일 뿐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정신건강을 위해 나를 괴롭히는 사고방식을 끊어내야 할 때가 온다.

용서해야 할 때가 온다는 것이다.




어릴 때 성추행을 당했다.

학교 선생님이었다.


이후로 성인 남성에 대한 불신이 심각하리만치 마음속에 자라나 편하게 이성을 대할 수 없었다.


11살 때 있었던 일을 28살이 되어서야 처음 꺼내었다.

17년 넘게 혼자 속으로만 곱씹었던 이야기.

남에게 알려지는 것이 너무 부끄럽게 느껴졌던 그 일을, 믿을 만한 이들에게 다 들려주고 나니 마치 그 일이 꿈 같이 느껴지고, 실제 하지 않았던 일처럼 되는 걸 경험했다.


하지만 나를 욕보였던 그 선생님에 대한 분노만큼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상담을 통해서도 이 문제를 다루었고 용서에 대한 여러 가지 책을 읽어보고 세미나에도 참석해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했다.


그 때 읽었던 책 중 하나에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8단계 방법]이 나와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당신을 해쳤던 그 사람이 그 당시 당신보다 더 연약한 상태였음을 봐주라.'는 것이었다.


진짜.. 너무 하기가 싫었다.

나는 11살짜리 4학년 여학생이고, 가해자는 초등학교 학급 담임교사였는데

어떻게 그 사람이 더 연약할 수 있다는 것인가?


마음속에서 거센 소용돌이가 일었고 거부감이 치솟아 화가 나고 눈물도 났다. 하지만 그 자리에 서기까지 약 20년이 넘게 걸렸으므로 이제 제발 끝내고 싶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문제에 마주했다.

무조건적으로 보호해주어야 할 학생을 성추행할 정도로 그 교사는 연약하였나?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당한 내가 오랜 기간 느껴왔던 무력감과 트라우마가 당시 그가 겪고 있던 어떤 일과 비교할 때 더 작다고 할 수 있는가?


곱씹고 곱씹었더니 답이 나왔다.

그는 소아성애자였던 것이다.

교사로서, 어른으로서 어린이를 보호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임무를 져버리고 제자에게서 성욕을 채우려 한 심각한 상태의 병자였던 것이다.


그동안 그 사실에 대해 알고는 있었으나 그것이 4학년 짜리 소녀와 비교해서 더 약한 부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꾸역꾸역

그가 나보다 더 힘든 상황이었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 후 그 사건과 그 선생님에게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언제나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고, 나 자신조차 나를 만족시킬 수 없음을 이제는 잘 안다.


하지만 아직도 가끔은 정말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싶은 사람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왕이면 조금 더 부드럽게 말해주면 좋을 텐데...'

'그래도 이제까지의 관계가 있는데 나를 봐서라도 좀 돌려 말해주지...'

'저 사람을 참 좋아했는데 이렇게 밀어내니 너무 가슴아프네...'

'그렇게 힘들면 가끔씩 말이라도 좀 해주지... 왜 그리 혼자 아파하는 건지...'


서로 오해하고 사이가 틀어질 때

정신이 멍해지고 마음이 너무 아파온다.

며칠 씩 기운이 없고 여기 저기가 쑤신다.


하지만 요새는 이 말을 바로 소환한다.

'내 맘 찢는 니 맘은 오죽했겠니!'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격한 공감'.

용서의 끝이자 자유의 시작이 아닐까?



(이미지 출처: Pixabay@conger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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