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의 일을 버리다

by 김효주

고전 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마흔에 결혼했다. 너그러운 성품의 남편 덕분에 삶이 무척이나 행복했다. 하지만 남편이 너무 좋은 사람이어서 반대로 너무 힘들었다.


신혼 초, 남편이 자신이 예전에 공부하던 책인데 귀하게 보존하고 싶다며 표지 수리를 맡긴 일이 있다.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그러겠노라 약속해놓고 보니 왠지 하기 싫었다. 엄마의 심부름 같달까? 계속해서 미루다 보니 재료를 구입하고 6개월이 흘렀다. 신기한 건 남편이 그 일에 대해 한 번도 독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눈에 거슬리는 거라면 뭐든 즉시 해소하기를 원하셨던 부모님이었다면 불호령이 12번은 떨어졌을 것이다. 반대로 남편이 반년 간 아무 말 없자 나중에는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얼른 수선해버렸다. 그날 저녁 퇴근한 남편에게 보여주니 너무나 기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바로 해줄 걸 싶기도 했고, 왜 남편은 조급하게 굴지 않았나 궁금하기도 했다.


남편과 살면서 나는 어른이 된 것 같다. 반대로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느라 고단했다. 감시당하고 관리당하는 방식으로 40년을 살다가 내가 원하는 것이면 뭐든 해도 좋다는 사람과 만난 건 행운이자 고통이었다. 차라리 때마다 시마다 잔소리를 해주면 귀찮아도 덜 불안할 것 같은데 좋은 남편은 그런 걸 해주지 않았다.


무기징역을 살다 이유도 모른 채 감옥에서 석방된 사람처럼 갑자기 원하는 모든 걸 하는 자유가 주어지자 얼떨떨했다. 하지만 이제껏 해보지 못한 것을 하나씩 해보면서 정말로 그 자유가 주어진 것인지 확인했다. 가장 먼저 직장을 때려치웠다. 가족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교사'라는 정체성을 갖다 버리고 싶었던 소망을 다시 실천했다. 그 후 예전부터 관심있던 캘리도 배우고, 그림책 지도사 자격증에도 도전했다. 전자 드럼을 사서 혼자 뚱땅땅 쳐봤다. 퍼스널 브랜딩에 대한 공부도 하고 SNS 계정도 팠다. 팀 활동으로 글쓰기도 같이 해보고 프립에서 호스트를 맡아 상담도 해봤다. 브런치에 글도 쓰고 블로그에 포스팅도 했다.


이 모든 것을 처음에는 덜덜 떨면서 남편에게 허락을 받으면서 했다. 남편은 늘 말해주었다.

"나오미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지 해보세요."


최근 나는 어릴 적 꿈에도 도전했다. 판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IMF 때문에 포기했다. 너무 원했는데 근처에도 가보지 못해서일까. 사법고시, 로스쿨 이야기만 나오면 입에서 한 맺힌 사연이 줄줄 흘러나왔더랬다. 그래서 로스쿨, 가보기로 했다. 지난가을부터 시작해 약 3~4개월 정도 준비했다. 그런데 정작 갈 수 있게 되었는데 공부가 별로 즐겁지 않았다. 로스쿨에 가고 싶은 이유도, 변시를 통과 후 하고 싶은 일도 없다는 사실에 맥이 쭉 빠졌다.


교사가 적성에 잘 맞았다는 것, 판사가 아닌 선생님만 되어도 부모님은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다는 것, 가족들을 위해 사는 것, 가족들에게 기쁨이 되는 것으로 나는 충분히 만족해 왔다는 걸 역으로 알게 되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남편과 살면서 얼마나 행복한지, 지금의 그 평안함이 너무 충만해서 딱히 다른 걸 하지 않아도 될 상태라는 것까지도 받아들이고는 로스쿨 진학준비를 과감하게 내려놓을 수 있었다.


얼마 전까지도 어린아이였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 감시당하는 듯 긴장하면서 원하는 대로 결정하지 못하고 부모님과 남편의 눈치를 보았다. 주어진 시간에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죄스럽게 여겨졌고, 뭐라도 해서 누군가를 기쁘게 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장성한 사람이 되면 어린아이의 일을 버리게 된다.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이 생겨도 남편에게 허락받지 않는다. 남편은 동반자이지 부모님이 아니니까.


뭘 하든 기쁜 마음으로 응원해 주는 사람, 나를 한 사람의 어른으로 봐주고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는 사람을 만나 드디어 어린아이의 일을 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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