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는 웁니다

by 김효주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어릴 적 나는 고아 같았다. 부모님이 살아계셨고 두 분 덕분에 내가 누렸던 것도 있었지만 그들의 강압적인 양육태도와 완벽주의적 성향으로 인해 자라면서 늘 사랑이 고팠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의 관심과 애정을 받을 수 있을까 하며 늘 궁리했었다.


하지만 칭찬에 인색했던 두 분에게서 공감이나 용납을 별로 느껴보지 못했기에 대상을 집 밖에서 찾으려 했다. 선생님께 관심받으려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발표를 많이 하는데 애를 썼다. 친구들에게 친절을 베풀며 받는 감사가 좋아서 부담스러운 맘이 들 때까지 도와주기도 했다.


정말 속상한 건 불만족스러운 가족들만큼도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최소한의 상처와 괴로움을 겪도록 모드를 전환했다. 그렇게 사랑받지 못하는 자로서 매일을 견뎌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작년 한 해, 상담을 다시 받았다. 삶이 안정되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중에도 계속 나를 증명해야 할 거 같은 불안감이 있어서 해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 상담하시는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오미 씨 같은 분들이 주로 하는 착각은 '내가 잘 나서 지금 이렇게 성공했다.'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느낌. 늘 외로이 살아왔기에 진심으로 '나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부모님은 해준 것이 없다.'라고 믿고 있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 부모님이 나를 위해 해준 일이 있는가? 정말 내 힘으로만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시야를 넓혀보았다. 공부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있고, 부모로서 아이들의 학습에 아예 관여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또한 학생으로서 자기 과업을 완수할 수 있을 정도의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부모님은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할 수 있게 공부 습관을 만들어주시고 공부방도 마련해 주셨다. 과제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집안일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으셨다. 학교 생활에 대해 늘 물어봐주셨고 발표를 잘하거나 상장을 받아오면 무척 기뻐하셨다.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나는 공부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눈앞에 보이는 자녀들의 미숙함이 영원히 지속될까 불안해하는 부모님들이 '완벽주의'적으로 양육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도 그런 타입이셔서 마음이 늘 빈곤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양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 중에 공부에 깊이 몰두하는 성향이나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무슨 공부든 두려워하지 않으며 깊이 연구할 수 있는 재능을 키워주신 분도 부모님이고, 칭찬을 적게 하셔서 향상심을 가지도록 해주신 분도 부모님이다. 늘 쓸쓸한 마음으로 애정을 갈구하며 살게 한 것도 그들의 탓이지만 내가 누릴 수 있었던 모든 것의 기반을 닦아주신 분도 부모님이었다. 장점도 단점도 모두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파생되었다.


모든 것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주신 은혜였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사랑이 아니었기에 소용없다며 내 쪽에서 그들을 단절했다. 늘 부모님이 잘못했고 나는 피해자다 믿어왔으나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늘 사랑받는 자로서 부모님의 은혜 안에 살아왔음이 진실이었다.


뜨거운 눈물이 가슴에서부터 솟구쳐 오른다. 펑펑 샘솟는 눈물에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왜 이리도 늦게 알게 된 걸까.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알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빠가 살아계시다면 더 좋은 관계로 지낼 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나름 최선을 다해 부모님께 했다고 생각했지만 받은 것이 너무 많아 감히 갚을 수 없다는 걸 깨닫는 건 왜 이리 오래 걸렸을까. 할 수 있는 건 살아계신 어머니와 관계를 더 돈독히 하고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한 일을 찾아보는 것뿐이다. 과연 어머니는 충분히 오래 사실 수 있을까.


불효자는 오늘도 운다. 냇가에 엄마를 묻고 비 오는 날마다 개굴개굴 눈물 흘리는 개구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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