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후 1: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으로 죽어가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그게 뭔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잘 안다면 그렇게 꽃 같은 인생들이 매일 툭툭 떨어져 가는 걸 보고만 있지는 않을 테니까.
그 무지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울증을 겪고 이겨 낸 나도 처음엔 알지 못했다. 직장을 관두게 하고 교회 공동체를 떠나게 만들 때까지 남은 힘을 다해 달리고 또 달렸다. 어떻게 하면 우울감을 피할 수 있을지 몰라 체력을 다 소진해 버렸다.
번아웃이 너무 깊어지거나 자주 발생할 때 맥이 쭉 빠져버린다. 마음과 몸의 힘이 다 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된다. '혼자 힘으로 절대 밀어낼 수 없을 것 같이 무겁고 큰 바위에 깔린 느낌'이 바로 '우울감'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들어봐도 '우울감'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뭔가 이뤄내면 기분이 좋아질까 싶어 프로젝트도 많이 크게 벌려봤다. 그럴수록 검은 바위가 더 무겁게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우울감이 심해지면 사람이 많이 이상해진다. 평소에 하지 않던 말과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간다. 예전과 다른 모습은 감당하기 어려우니까. 친구들과 공동체도 나를 받아주지 못했고, 처음에는 가족들도 많이 거북스러워했다.
그렇다면 왜 누군가는 우울증을 극복해 내고 또 다른 사람들은 죽어가는가?
직장을 그만두고 싶다고 했을 때 아무도 나를 지지해주지 않았다. 1년 간 휴직했다 복직했으나, 일주일 만에 퇴직을 결심했다. 생애 처음으로 '공황 장애'가 일어난 것이다. 숨을 쉴 수 없어 죽을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다시 살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두려움이 급습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불행함 속에서도 솔직히 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찾아서 해봤다. 제일 먼저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었다. 직장을 그만뒀다.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책을 많이 읽었다. 휴식을 취했다. 집에서 밥버러지로 지냈다. 우울증 환자 행세를 하며 이상한 소리를 지껄였다. 어릴 때 말 못 했던 속상했던 일들을 토로했다. 가죽 잠바를 하나 샀고 머리를 붉은빛이 나도록 염색했다. 캐나다로 여행을 다녀왔다.
우울감은 '하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으며 살아온 삶의 태도로 인한 것이었다. '해야 하는 것'만 하며 살면 누구나 힘들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누구도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진 않는다.'며 면박을 준다. 그게 사람을 시들게 만든다.
'우울증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이다. 당신에게 괜찮은 일이라고 해서 내게도 괜찮지는 않은 법이다. 너무 힘들겠다는 말이 참 좋았다. 원하는 것을 해도 된다는 말이 구원으로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했던 못난 행동을 '살기 위해 그런 거 아니었느냐'라는 위로가 나를 살아나게 했다.
받은 위로 중에 가장 큰 것은 가족들이 끝까지 버텨준 것이라 하겠다. '딸'이라서 밥 먹여주려고 일하러 가시는 엄마, '언니'니까 생떼를 써도 들어주던 동생이 있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내 혈육'이니까 밤낮으로 기도해 주신 친척분들 덕분에 믿음을 잃지 않았다.
지금도 우울했던 때를 돌아보면 가슴이 저리고 목이 멘다. 정말 힘들었구나 싶다. 병세가 계속 나빠지다가천천히 회복하는 병의 특성상 견디는 몇 년간 퍽 고단했다. 죽음을 피할 수 있었던 유일한 빛은 '사랑받는 자'라는 신앙 때문이었다. 아무리 못난 모습이라도 있는 그대로 받으시는 예수님을 만났기에 바닥을 찍을 때까지 버틸 수 있었고 또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
우울증 환자를 둔 가족들이 가끔 상담을 요청할 때가 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런 분들께 이렇게 말씀드린다.
'먼저 우울증이 발병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 알아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십시오. 그리고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도록 끝까지 견뎌주십시오. 울게 해 주시고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사랑, 위로, 기다림. 우울증에 특효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