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쓴 편지

by 김효주

고후 3:2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읽고 아는 바라



지난 설날, 예전에 가르쳤던 제자로부터 명절 인사를 받았다. 벌써 20대 후반이 된 녀석으로 작년 말 취업했다는 소식도 전해주었다. 그러면서 담임 선생님일 때 칭찬을 많이 해주셨기에 말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지 않고 프레젠테이션으로 진행된 면접을 잘 해낼 수 있었다며 자기 인생에 '나오미 선생님'이 없었다면 이런 일들을 하지 못했을 거라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개인적인 일을 하며 조용히 지낸 덕분인지 명절 날에 먼저 연락을 해오는 사람도 없고 연락을 할 만한 사람도 없다.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많이 내향적인 편이라 혼자 있는 걸 선호하기에 평소엔 딱히 불만은 없었다. 하나 명절날만큼은 좀 그랬다. 직장 생활하는 남편은 꽤 많은 명절 인사를 주고받는데 나는 가족들 외에 챙길 사람이 없어서 좀 서운하고 외로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 하소연을 동생에게 늘어놓던 찰나 제자의 카톡을 받고 어찌나 기쁘던지. 누군가 명절 날 나를 기억해 준다는 것도 감사하고, 늘 부족했던 교사로서의 삶에도 괜찮았던 부분이 있었다 위로해 주는 것 같아서다.


제자에게 먼저 연락 주어 고맙고 취업 축하한다고 전하면서, 교직에 있을 때 힘든 일이 많아 지금은 떠나 있다며 '너와의 만남이 있었고 서로 알아볼 수 있어서 참 감사한 일'이라 답장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분명히 선생님의 제자들 중에는 자신 외에도 선생님께 좋은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며 격려해 주는 것이 아닌가.


말씨가 참 고와서 지금도 보고 싶은 여자 아이도 있고, 연락해 온 제자처럼 얼굴도 행동도 너무나 귀여운 남자아이들도 있었다. 엄마가 선생님이라며 나보다 내 맘을 더 잘 알아주는 녀석도 있었고, 학교에 선생님 보러 온다고 말해주던 친구도 있었다.


사춘기를 치열하게 보내느라 1년 내내 긴장하게 만들었던 4인방. 늘상 자기 맘을 거꾸로 돌려 말하는 버릇이 있는 츤데레 남학생. 여자 아이들이 만드는 그룹에 끼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오해를 사서 왕따를 당하는 여학생.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는 마음에 슬픔을 분노로 표현하는 남자아이.


이제껏 만나왔던 모든 아이들이 마음속에 편지로 차곡차곡 쌓여있다. 때로는 기대하지 않았던 감동을 주어 웃게 만들었던 제자들도 있고, 제발 안 했으면 좋을 것 같은 일만 골라서 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이뻐하는 마음을 감추지 못할 만큼 나에게 잘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관종짓을 해서라도 사랑받겠다며 자기 멋대로만 굴려고 했던 녀석들도 많았다.


가끔 혼자 있을 때, 그 편지를 꺼내서 읽어본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나는 눈물짓는다. 지식을 가르치는 것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충분히 사랑해주지 못해 미안해서다. 나의 자리를 만족하지 못했고 늘 더 잘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지 못해서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을 때에도 늘 마음 한편 슬픔이 느껴졌던 것도 그 때문이리라.


'교대 가겠다는 아이들을 절대 말리라'라는 제목의 뉴스를 읽었다. 학교 상황이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교사는 극한직업이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드디어 알게 되었나 보다. 우울증으로 선생님을 그만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같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우울증을 모두 겪어내고 내 안에 심긴 씨앗이 '사람을 가르치고 섬기는 일'을 하는 것임을 받아들인 지금, 다시 나는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사랑으로 다음 세대를 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솟구친다. 이제는 후회가 아닌 그리움으로 마음에 쓴 편지를 꺼내 읽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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