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 밖에 안 됐는데 배가 왜 이리도 고프지?
최근 컴퓨터학원에 등록했다.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간다. 아침 먹는 습관이 생겨서 쌀식빵 하나 우적우적 씹어 먹고 버스 타고 30 분가서 2시간 강의 듣고 돌아온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좀 더 많이 움직인다고 이렇게나 배가 고플 줄이야!
가족들이나 지인들은 내 입에서 '배고프다'라는 말이 나오는 걸 경계한다. 헐크가 나오기 때문이다. 희한하게도 멀쩡한 상태였는데 시장기가 돌기 시작하면 '배고파, 배고파'를 연발하면서 굉장히 예민해진다.
학원 수업이 9시에서 11시까지인데 끝나기 30분 전부터 배가 고파왔다. 가져간 물을 벌컥벌컥 마셔봐도 소용이 없었다. 머릿속에는 치킨, 돈가스 등이 둥둥 떠다니고 머릿속에는 비상등이 켜진 것처럼 번쩍번쩍 울긋불긋한 불이 왔다 갔다 한다. 삐삐삐삐 경계음이 울리는 것 같다.
학원에서 나와 남편에게 '양념치킨'이 먹고 싶다고 연락을 해놓고 기다리는 5분이 왜 이리도 긴 건지. 천 년보다 길게 산 것 같다. 버스 안에서 뭘 먹기도 그래서 마냥 30분을 배고픈 채로 있게 되었다.
문득 든 생각.
'배가 고플 때 모든 감각이 살아난다!'
잠들어 있던 온몸의 감각이 깨어나는 건 '이론적으로는 좋은 일'이어야 할 거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극히 심각한 감각을 지닌 나로서는 없는 척하던 감각들이 '나 여기 있소!' 하며 일어나는 건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리 생각해 봤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그렇게 까칠하게 굴어왔던 건지 궁금진 거다. 그래서 양념치킨과 남편이 도착하기 전에 배고픈 나에 대해 관찰해 보기로 했다.
1. 머릿속이 온통 '배고프다' 알람뿐이어서 다른 일에 집중하기 힘들어진다.
2. 신경이 과하게 예민해진다. 마치 '관계에 문제가 생겨서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람처럼.
3. 주로 아프던 곳이 갑자기 더 아프다. 척추측만증과 일자목으로 요통이 있는데 배가 고프면 통증이 더 심하게 느껴진다.
4. 이 배고픔을 잠재우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이 두렵다.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5. 배고픔이 심해지면 갑자기 아프다. 배도 아프고 머리도 아파진다.
6. 누가 옆에 있으면 계속 '배고파'를 말한다.
7. 몇 시간 전에 하고 싶었던 일을 지금은 못할 것 같다.
메타인지로 바라보니 꼭 '겁먹은 어린아이' 같다. 그래서 배고프다는 말을 할 때마다 다들 그렇게 후닥닥 내 입에 뭘 넣어주려고 했었구나. 하하하하.
40년 넘게 살면서 배고픈 적 많았다. 가끔은 사정이 안 되어 밥때를 놓친 적도 있었다. 꾹 참았더니 15분 내에 배고픔이 사라져서 놀랐고, 저녁때 먹기 시작하니 위통이 살짝 있었지만 아주 짧게 지나갔다. 하지만 아직도 배고픔에 헐떡이는 나를 보면서 '뭘 그리 무서워하니' 궁금해하며 관찰일기를 적어본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투쟁-도피 반응'에 대해 설명하면서 간혹 '배고픔'이 '죽음'과 비슷한 것으로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읽은 적이 있다. 나를 보고 쓴 것 같았다. 죽는 일처럼 느껴진다면 배고프다고 난리를 피우는 게 당연하겠지. 하지만 배고프다고 죽지 않는다.
감각이 일어나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그걸 활용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껏 주로 통증이나 부정적인 생각에 주목했기에 빨리 배고픔을 넘겨버리고자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같은 감각이라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면 누릴 수 있는 것도 달라지지 않을까?
먹는 일이 몇 십 년 전보다 아주 쉬운 시대가 되었다. 먹을 게 넘쳐나는 세상에선 배고픔을 느끼는 것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감각이다. 가끔은 배고픔이 신선할 때도 있다. 평소만큼 먹는데 활동량이 많아져 시장기가 빨리 오는 것도 퍽 반가운 소식이다.
내일부터는
기지개를 켜고 잠시 일어나려는 감각들이랑
놀아봐야지.
배가 부를 때엔 잘 들리지 않던
몸의 소리와 마음의 울림을
들어봐야지.
이제는 배고픈 게 무섭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