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아줌마가 되고 싶었다.
나오미가 꼬마였던 시절은 80년대. 아가씨라 불리는 사람들은 예쁘고 날씬했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특이 체질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아줌마들은 통통 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머리는 뽀글뽀글하고 헐렁한 바지에 박스티를 입으신 분들이 많았다. 그게 참 좋아 보였다.
TV에 나오는 아줌마들도 그랬고 우리 동네분들도 그랬다. 그래서 아줌마가 되면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워질 것 같아 꼬마 나오미는 커서 아줌마가 되기로 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들이 아니어서 서운해하고, 엄마는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딸로 키운다고 나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보다 늘 '남성'의 삶이 우월하다는 잘못된 지식을 설파했다. 정작 아빠는 나와 여동생을 인격적으로 대해주고 '지지바들이~ 여자들이~' 이런 말을 한 번도 하신 적이 없는데 주변의 다른 분들은 그런 성격조차 신격화하며 오로지 아빠만 대단한 것처럼 말했다.
하... 그럼 나도 아빠처럼 살아야 하는 건가? 항상 건강은 관리하고 긴장하며 즹해진 시간에 밖에 나가서 일하는 그런 삶? 싫은데... 싫어도 매일 들으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나 보다. 적당한 나이가 되어 가정을 꾸리고 아이 낳고 맘 편히 살고 싶은데 그걸 계속해서 미루거나 일과 병행해야 하는 시대가 열리고 말았다.
대학에 갈 무렵엔 심지어 아줌마들이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이런! 좀 편하게 좀 살자고요, 좀! 왜 다들 살은 빼고 난리예요! 어릴 때 보았던 아줌마들은 아이를 낳은 기쁨과 자녀를 양육하는 데 올인했기에 자신을 돌보는 데는 크게 신경 쓰지 못하셨다. 요새는 그런 분들을 찾기 힘들다. 아이와 손잡고 걸어가는 여성들을 보면 이모인지 누나인지 모를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다. 그게 좀 못마땅하다.
자라면서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 같은 압박 속에서 늘 벗어나고 싶었다. 빨리 괜찮은 놈 만나서 결혼하고 직장을 때려치우는 게 인생의 낙이 될 것 같은데. 그런 괜찮은 놈은 정~말 찾기 힘들었다. 선자리를 주선하시는 분들은 내가 초등교사라는 이유로 자리를 만들어 주셨기에 맞선남들은 계속 교사를 하기를 원하는 남성들이 대부분이었고 그게 아주 거북스러웠다.
왜 그렇게도 아줌마가 되고 싶었던 걸까? 내가 인식하는 '아줌마'는 일단 결혼을 한 사람이었다. 서로 사랑하기로 맹세한 확실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의지할 수 있기에 맘이 평온해 보였다. 또한 몸매가 아가씨와는 달랐다. 출산 후에 몸매가 바뀌는 사람도 있지만 직장을 다니지 않고 집에 있다 보면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 되는 건 자연스럽게 보였다.
어릴 때부터 '사랑받기'를 간절히 원했다. 가족 환상이 있는 엄마는 우리가 꽤 괜찮은 가족이라고 지금도 믿고 그렇게 과대포장해서 남들에게 설명하신다. 그러나 인격적인 것처럼 보이는 아빠에게서도, 혼자 희생을 다 한 것처럼 믿고 있는 엄마에게서도 맘 편하게 쉬어본 적이 없다. 속이야기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다. 뭐든 반대하고 싫어할 것 같은 인물로 저장되어 있으니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다. 뭔가를 해 보이지 않으면 칭찬과 사랑을 주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피곤한 부모님 밑에서 하루라도 더 빨리 독립하고 싶었다. '아줌마'를 롤모델로 삼아온 것은 내가 추구하는 이상향이 그들에게서 관찰되었기 때문일 거다. 먹고 마시는 시간이 자유롭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시간의 선택권이 나에게 주어져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상태. 먹는 걸 좋아한다면 먹어도 되고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맘껏 배울 수 있는 그런 자유.
엄마는 롤모델로 삼으라며 '마거릿 대처 수상'의 위인전을 선물했지만 다 읽지 않았다. 사실 자신을 별 볼 일 없는 것으로 취급했던 엄마의 삶이 내 롤모델이었기 때문이다. 간호조무사로 일했던 엄마의 학창 시절 꿈이 의사였다는 걸 안 건 20대 후반이 되어서였다.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니 자녀들에게 자신에 대해 소개하지도 않았고 여성으로서의 삶을 사랑해주어야 한다는 것도 알려주지 못한 것이다.
다른 사람 눈치와 시선을 많이 의식하시는 엄마는 결혼 전에 거의 40년 간 나의 신체적 조건에 대해 이리저리 감독하셨다. 야식 문화가 아예 없는 집에서 밤만 되면 굶주린 늑대처럼 '엄마, 배고파!'를 외쳐도 전혀 소용이 없었다. 한 10분은 괴롭혀야 저당 두유 1팩 정도를 겨우 먹을 수 있었다.
결혼한 지 3년 5개월째. 나는 8kg이 증가했다. 예전에 꿈꾸던 아줌마의 몸매를 드디어 획득했다! 그동안 어떻게든 다이어트를 하려고 노력은 했으나 열심히 하지 않았던 건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자유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헐...
뽀글머리는 아니지만
트레이닝복 바지가 너무 좋고
마실 다닐 땐 학생용 검은 긴 패딩 하나면 충분한
통통녀 나오미는
꿈꾸던 삶을 이룬 것이다!
와!! 이럴 수가!! 내가 아줌마가 되다니!!
뭔가 성취했다는 기쁨이 밀려온다.
하하하하
내가 나로 충분하다는 걸 발견한 순간!
이미 이룩해 놓은 업적이 눈에 보인 것이다!
마냥 자유롭고 편안하고 많은 걸 신경 쓰지 않는 그런 아줌마는 아마 세상에 없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아줌마가 되고 싶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고 싶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로봇처럼 살던 삶을 버리고
마음을 편히 기댈만한 남편 곁에서 하하 호호 웃으며
자유로운 새처럼 앞으로도 쭉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