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ftable Jun 04. 2024

내 안의 숨겨진 자아를 마주하다

오후 네시 - 아멜리 노통브

"나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

책의 도입부는 이상하리만치 평범하게 시작한다. 시골의 한적한 곳으로 이사를 온 노부부, 두 사람 모두 극히 평범한 인생을 살아왔고 퇴직 후 자연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길 꿈꾸며 이사를 왔지만, 이웃집 남자를 만나며 모든 계획은 틀어진다. 


감정이란 것이 느껴지지 않는 그 노년의 이웃집 사내는, 정확히 오후 네시에 이웃집에 방문해 두 시간을 머물고 간다. 주인공이 묻는 질문엔 전부 예, 아니오로 대화를 끝내고, 멍하니 의자에 앉아 시간을 보낸다. 이런 상황은 처음 한두 번에나 괜찮지, 그 시간이 끝없이 반복될수록 그가 불편하기만 하다. 


그를 집에 들이지 않으면 될 것 같았지만, 부부의 윤리관은 확고했다. 그들은 최대한 그를 불편하게 하기 위해 그와 그의 부인을 식사에 초대해 대접하기로 한다. 그리고 식사자리에서 마주한 그의 아내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먹고 자는 본능만이 남아있는 인간, 어떤 생명체와 마주하고 있었다. 


주인공의 아내가 아팠던 어느 날, 어김없이 이웃집 남자는 찾아왔다. 주인공은 그에게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말라며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평생 남을 욕해본 적이 없는 주인공은 순간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잠잠해지고, 오히려 이 불편한 상황을 끝냈다는 생각에 만족스럽기까지 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주인공은 차고에서 자살을 하려던 이웃집 사내를 구해준다. 그가 병원에 실려가고 홀로 남아있을 그의 아내를 돌보러 그의 집에 들어갔을 땐, 끝없는 고약함과 마주해야 했다. 더럽고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고 악취가 났다. 그의 아내는 침대에서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잠을 자고 있었다. 


여러 생각 끝에 주인공은 그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형상이 아닌 아내를 돌보는 지옥 같은 인생에서 벗어날 단 하나의 길은 삶을 포기하는 것이었다고, 우리 집에 오는 그 두 시간이 순간의 행복이었을 것이라고. 주인공은 퇴원한 그에게 가 모든 걸 털어놓는다. “당신을 이해한다. 다음 자살시도는 막지 않겠다.” 그때 옆집 사내는, 책에서 처음으로 감정이란 걸 드러낸다. 그는 웃었다. 킬킬거리며 웃는 그를 보며 주인공은 그의 웃음을 나름대로 열심히 해석한다. 


주인공은 그의 삶을 대신 끝내주기로 한다. 그게 그를 구원할 유일한 구원이라 믿었다. 자신보다 남을 먼저 끔찍이 생각하는 모습에서 스스로의 이타심에 감격하기까지 한다. 그는 아내 모르게 옆집 남자를 죽였고, 홀로 남은 옆집 남자의 아내를 돌보는 생활을 시작하게 되며 책은 마무리된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시점으로만 보여준다. 어떠한 사건이 있더라도, 우리는 주인공의 시선과 주인공의 생각대로 볼 수밖에 없다. 책에서 불순물이며 악당으로 여겨지는 옆집 남자의 시선은 일절 나오지 않는다. 가장 핵심으로 보이는 그의 첫 감정인 웃음까지도 어떠한 설명이 없다. 


그가 웃은 이유가 무엇일까, 그에게 아내의 존재는 뭐였을까, 삶은 무엇일까. 사실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웃집 노부부는 그저 맥거핀에 불과했다. 중요한 건 그 상황을 겪으며 변화하는 주인공의 자아였다. 


그가 해석한 대로, 옆집 사내가 삶을 고통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책에 적힌 이웃집 사내에 대한 해석은 모두 주인공의 것이다. 그걸 독자가 판단할 수는 없어 보인다. 우리가 감히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주인공이 “친절하게 이웃을 대하는 사람” 에서 “이웃을 죽인 살인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자신의 삶만을 판단할 수 있다. 그의 자아가 진화한 방식이 이웃을 죽인 살인자로 불러야 할지, 두 여성과 심지어 옆집 사내마저 구해낸 구원자로 불러야 할지 헷갈릴 여지는 없다. 그는 변화하는 그의 자아 속에서 오류를 범했다. 그가 서서히 변화하는 자신의 자아를 조금이라도 의심했다면 결과가 바뀌었을까? 그 일련의 사건들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내가 감히 판단할 수도 없어 보인다. 



작가의 이전글 헤아리지 못한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