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한곡쯤은 끝까지 불러보고 싶어서

어떤 연습

by 서윤재

대학원에 다니면서 나의 부족한 점을 많은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학원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었는데, 평소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부족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중 하나가 노래였다. 어렸을 적부터 노래방을 싫어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그중에서도 노래방을 가장 싫어했다. 어두운 곳에서 한 명이 노래를 부르면 한 명은 재미가 없다는 점이 싫었던 것 같고, 아니면 한 명이 노래를 부르면 그 노래를 장단 맞춰 끝까지 잘 들어줘야 하고 흥을 돋워야 하는 것이 싫었다. 어느 쪽이든 다른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데 내가 그걸 같이 들어줘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그런데 사실대로 말하면 노래를 못하기 때문에 노래방을 싫어했다.



어렸을 적부터 노래를 진짜 못했다. 어렸을 때야 말로 지금처럼 유튜브도 없고, 넷플릭스도 없었고, 공중파 방송밖에는 없던 시절이어서 명절에 친척들과 만나도 다 같이 노래방에 가고는 했었다. 가족들과 가더라도 노래방은 재미가 없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도 노래방은 재미가 없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회식으로 가는 노래방도 재미가 없었다. 해마다 연말 장기자랑이랍시고 회사에서 시켜서 걸그룹 노래를 연습했던 적도 있는데, 다른 사람 앞에서 뭔가를 하는 것이 싫었다. 코로나 시대 이후로 노래방에 갈 일이 없어진 것 같아 앞으로 노래방에 갈 일은 없을 것이라 굳게 믿고 살았는데, 늦은 나이에 진학한 대학원에서 매주 회식 때마다 노래방을 갈 줄은 몰랐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기 때문에 노래방을 여러 번 따라가긴 했지만, 나한테도 마이크가 넘어올 줄은 몰랐다. 나이가 들면 아무도 나에게 노래방에 가자고도 안 하고, 노래를 안 시킬 것 같았는데, 공부를 더 해보겠다고 간 대학원에서 자꾸 노래방을 가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대학원에서 만난 분들은 하나같이 성실해서 자신의 일을 하면서도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애쓰시는 분들이었는데, 모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음주가무에도 출중했다. 다들 어쩜 노는 것도 잘 노는지, 평소에 집에서 책만 보면서 혼자 놀던 나는 도저히 낄 수가 없었다. 평소의 회식 때는 노래방에 간다고 하면 몰래 도망치고는 했었는데, 어디로 1박 2일 정도 워크숍을 가면 빠져나갈 수도 없이 노래방에 함께 가야만 했다. 40년 가까이 노래방에 가지 않았던 나로서는 노래를 정말 못했고,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부끄러웠다. 내가 노래를 부르면 분위기 싸해질 것만 같다. 어느 날에는 교수님으로부터 노래 안 하면 졸업 못한다는 농담도 들었었는데, 만일 내가 박사학위를 하게 된다면 음주가무는 꼭 단련해서 회식 때 노래 한곡 정도는 뽑을 준비가 된 후에 박사학위과정에 진학하기로 다짐했다.



노래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노래뿐만이 아니라 말을 할 때에도 목소리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어릴 적부터 모기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창피했다. 발음도 좋지 않은 것 같고 목소리에 대한 전달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것이 두려웠다. 이것도 고쳐보고 싶어서 강남역에 있는 유명하다는 스피치학원도 다녔었는데 쉽게 고쳐지진 않았다. 아나운서처럼 대본을 읽는 연습도 하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연습도 했었다. 어느 날은 선생님이 갑자기 다른 반 수강생들 앞에서 발표하라고 해서 울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대학생 때부터 발표하기가 싫어서 발표를 미뤄왔는데,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는 어쩔 수 없이 발표를 할 기회가 많아서 울면서 겨자 먹기로 발표를 하기는 했지만, 이런 목소리로 발표를 해도 되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발성에 대한 오랜 콤플렉스를 고치고 싶었고, 이참에 노래 한곡 제대로 불러보고 싶었다. 딱 한곡만 제대로 부를 수 있으면 앞으로 노래방을 가게 될 때 그 한곡을 부르면 될 것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노래에 열광하고 음악을 즐기는데, 나는 음악을 거의 듣지 않았었다. 노래를 부르지 않는 것과 노래를 듣지 않는 것, 이 두 가지를 모두 하지 않는 삶은 인생에서 어떤 즐거움을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과 노래에서 행복을 느끼는데, 나는 이 즐거움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 같아서 한 번쯤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알게 된 것은 나는 대부분의 분야에서 서툴고 배우는 데 오래 걸리며, 처음 하는 일에 대하여 웬만하면 잘 못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 무모하게 혼자서 시도했다가 잘못된 방향으로 갔던 경우가 많았다. 돈을 아끼기 위해, 아니면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어서 혼자서 뭔가 해보려고 했을 때 시간과 비용을 날렸고, 결국 흥미와 의욕도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노래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에는 처음부터 전문가를 찾아가 올바른 방향설정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흔 살의 나이에 노래 한곡을 완창 하는 것을 목표로 보컬학원을 검색하여 다니게 되었다.



보컬학원에 등록한 뒤에도 노래 한 소절 부르기까지는 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호흡하는 법을 배우고, 자세를 똑바로 하는 법을 배웠다. 한 글자를 음만 바꿔서 계속 발음하기도 하고, 피아노 반주에 맞춰서 '아아아아아'같은 소리를 내며 연습을 했다. 노래를 다닌다고 열심히 다니긴 했는데, 매일 발성만 하고 노래를 한구절도 부르지 못하자 지인은 보컬수업이 사기가 아니냐고 했다. 몇 달동안은 소리 내는 연습만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수업을 갔는데, 수업 시간에는 내 몸과 내 목소리가 내 마음 같지가 않아서 소리를 제대로 내기 위해 집중하다 보면 세상만사 모든 시름이 잊혔다. 딴생각을 하지 않고 온전히 집중을 해야 좋은 소리가 나올까 말까 했다. 평소에 안 써본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집중하는 것은 명상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번잡한 생각들을 내려놓고 발성에만 집중하다가 수업을 끝내고 나면 머릿속이 맑아져 있었다. 내가 전혀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 몸을 쓰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생소하면서도 즐거웠다.



보컬선생님은 집에서 연습을 좀 해오라고 했지만, 직장에 다니느라 연습을 할 시간도 없었고, 큰 소리를 내며 연습할 공간도 없었다. 그래서 수업을 듣고는 연습을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수업에 들어가고는 했었다. 바쁜 나날이었지만, 보컬수업 시간만큼은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내 자신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다른 생각이나 고민거리를 떠올리지 않아야 간신히 목소리가 의도대로 나오는 듯했다. 평소에 소리를 내는 습관과 전혀 다르게 소리를 내면서 내가 비워지는 느낌을 받고는 했다. 나는 더 좋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걸 알지 못한 채 그냥 살아갔다면 조금 아쉬웠을 것 같다. 보컬수업을 듣지 않아도 살아가는 것에 지장은 전혀 없겠지만, 목소리를 더 잘 낼 수 있는 법에 대해 알아가는 것은 유용하게 느껴졌고, 자신감을 갖게 만들었다.



보컬수업을 들으면서 지난주에 수업을 받았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실력이 초기화되는 것을 보면서 꽤나 좌절을 하기도 했었다. 선생님 보기가 민망하게 실력이 초기화되어버리면 지난주에 했던 발성연습을 처음부터 다시 하고는 했다. 모기목소리로 말을 하는 것도, 또렷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도 언제나 콤플렉스였는데, 수업을 할 때에는 그 콤플렉스를 모두 꺼내어 늘어놓는 느낌이었다. 내가 자신 없는 부분, 내가 못하는 부분을 늘어놓고 바라볼 때 괴롭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평소에는 낼 일 없는 큰 목소리로 발성 연습을 하다 보면, 한 주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말끔히 풀리는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발성 수업을 힐링 시간처럼 느낀 적도 많았다. 소리를 지르듯 크게 내고 나면 답답했던 가슴이 뚫리는 것 같았고, 그 자체로 후련했다. 발성이 잘 되지는 않았지만, 수업 자체가 즐거웠기에 성에 집착하지 말고 그냥 즐기자는 마음으로 꾸준히 다녔다.



발성 수업을 들으면서 발성이 잘 나오지 않고, 수업시간에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이것만큼은 내가 배우고 싶어서 배우는 것이니까, 성과가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발성수업은 일도 아니고, 숙제도 아니기 때문에 그저 오로지 즐기는 마음으로 임하고 싶었다. 그렇게 호흡연습, 소리 내기 연습만 몇 달을 하다 보니 선생님께서는 어느덧 이제는 노래를 불러보자고 했다. 그렇게 몇 달 만에 첫 소절을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노래의 첫 소절부터 박자를 맞출 수 없었고, 첫 소절조차도 부르기 어려워서 역시 노래를 부르는 것은 어렵게 느껴졌다. 그냥 편하게 흥얼거리듯이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박자도 맞추고, 발음도 신경 쓰고, 음정도 하나하나 신경 쓰니 노래 한 소절 부르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재밌었다. 노래를 본격적으로 연습하기 시작하니, 발성 연습만 할 때보다 훨씬 재미있게 느껴졌다.



하지만 노래의 진도를 나가는 것도 꽤나 더뎌서 나는 3개월 정도를 한 곡만 연습하게 되었다. 노래방을 싫어해서 코인노래방에도 간 적이 없었는데,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노래를 연습하기 위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코인노래방에도 가기 시작했다. 마침 동네에 코인노래방이 새로 생겨서 나는 혼자 퇴근 후나 주말에 코인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불렀다. 동네 코인노래방은 저녁시간이나 주말에는 사람이 많아 대기를 해야 했는데, 나보다 키가 한참 작은 동네 초등학생들과 함께 순서를 기다리며 대기실에서 기다리고는 했었다. 코인노래방에 가서는 수업 때 연습하는 곡 한 개를 열 번씩 부르기도 했는데, 하필 내가 연습하는 곡이 서글픈 이별노래라서 마흔 살 여자 혼자 코인노래방 가서 같은 이별노래를 연달아 열개씩 부르면 노래방 주인아줌마가 사연 있는 여자로 볼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야근을 하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을 제외하고는 퇴근 후나 주말에 꼭 코인노래방에 가서 노래 연습을 했다. 근래 들어 가장 열심히 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퇴근 후에도 회사 일로 머릿속이 복잡해 좀처럼 생각을 떼어낼 수 없을 때, 스트레스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쌓이면 나는 코인노래방으로 향하곤 했다. 그럴 때는 노래 실력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스트레스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 숨통을 조금이라도 트여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떤 날은 회사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커서 머리가 지끈거리고 온몸의 피가 머리로 다 쏠리는 느낌이 드는데, 그런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는 자력으로 그 스트레스를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살면서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던 노래가 어느새 내 일상에 들어왔고, 나를 코인노래방으로 이끌었다. 그렇게 회사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으로, 노래를 부르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퇴근 후 집 앞 코인노래방에 가서 수업시간에 배운 노래를 5번쯤 부를 때에는 회사 일에 대한 분이 안 풀리다가 10번 정도 부르고 나면 그제야 마음이 가벼워지고 머릿속이 맑아졌다. 남 앞에서 노래 한곡 정도는 부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발성수업이었는데, 꽤나 유용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 되었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재밌고, 무해하며, 즐거웠다. 나는 어느새 퇴근 후 스트레스를 받으면 편의점에 가서 술을 사는 것이 아니라 코인노래방에 가서 발성수업 때 배우는 노래를 10번씩 부르고 오게 되었다. 그럼 좀 살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발성수업의 진도는 여전히 더딘데, 최근 첫 번째 곡을 끝내고, 두 번째 곡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 두 번째 곡을 부르니 선생님은 두 번째 곡으로 선정한 노래가 너무 어려운 것 같다며, 노래를 다른 것으로 바꾸자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다. 좋아하던 노래라서 열심히 연습했는데 곡을 바꾸게 되어 아쉽다. 이렇게 열심히 노래연습을 하고는 있는데, 과연 노래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던 이유처럼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르게 될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 하지만 노래 연습을 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는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적이었다. 노래 연습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노래 부를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사실에 아쉬우면서도 이런 노래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부르면 큰일 나겠다 싶은 양가감정이 든다. 아직 득음의 경지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적어도 코인노래방의 단골이 되어 30분에 5분 서비스를 받을 만큼은 되었으니 나름대로의 성과는 있다. 비록 코인노래방의 기계는 연습이 무색하게 나를 약 올리듯 84점을 주지만, 노래를 부르겠다고 마음먹지 않았다면 내 일상은 지금만큼 즐겁지 않았을 것 같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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