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서점
한동안 독립서점을 즐겨 다녔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에 가게 되면 그 지역에 있는 독립서점에 들르고는 했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후로는 독립서점에 대한 애정이 생겨서, 독립서점에서 진행되는 북토크에도 많이 갔었다. 한때는 서점을 운영하는 것을 동경하기도 해서 회사를 관두면 서점 주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어떤 독립서점들은 내게 좋은 경험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언젠가 다시 들러야지 마음먹었던 곳들도 있다. 언젠가는 독립서점에서 소개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친구와의 약속이 있었는데, 그 근처에 독립서점이 하나 있다고 해서 일부러 약속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독립서점에 가서 그곳을 샅샅이 구경했다. 그 독립서점은 이 지구의 모두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인지 동물, 지구, 환경, 여성 등 다양한 주제의 책을 큐레이션 해두었다. 동물입양을 홍보하는 팸플릿도 있었고, 입양을 기다린다던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다. 아주 먼 미래가 아니라면 반려동물을 일상 속에 데려오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반려동물을 기르거나 동물입양, 동물복지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반대할 생각은 없다. 먼 훗날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기반을 마련하여 반려동물을 기르겠다고 마음먹게 된다면, 지금 반려동물에게 혐오감을 보내는 시선이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려동물을 기르기로 마음먹고 동물입양, 동물복지를 위해 애쓴 사람들 덕분일 것이다. 어떤 독립서점에 가면 평소 생각하지 않던 동물복지라던가 여성문제와 같은 생각 하지 않던 것들을 생각하게 되고 그때만큼은 내가 얼마나 큰 세계에서 다양한 것들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고는 한다.
사놓고 읽지 않은 책도 많고, 전자책구독까지 하고 있어서 책을 살 필요가 없지만, 그래도 책을 사서 독립서점의 사장님을 응원하고 싶었다. 다른 일정이 있어서 책이 짐이 될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기쁜 마음으로 책을 샀다. 그중 한 권은 수익금이 유기묘 구조활동에 쓰인다고 하는 고양이에 대한 기초입문서였고, 한 권은 아주 오랫동안 내 고민거리 중 하나인 일과 글쓰기를 다룬 책이었다. 일과 글쓰기를 양립하다가 결국 글쓰기를 선택한 작가의 책이었다. 이 날 방문한 독립서점에서 좋은 자극을 받았고, 마음이 말랑말랑해져서 나왔기 때문에 나는 이곳에서 기꺼이 책을 샀다. 그리고 만나기로 한 친구를 서점으로 불러 이런 공간도 있다며 홍보를 해서, 친구도 이곳에서 책을 샀다. 좋은 공간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서 나중에 또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곳이 오래 유지되길 진심으로 바랐다.
이미 꽉 찬 내 책장에는 더 이상 새 책을 꽂을 곳이 없고, 전자책 구독도 하고 있는 터라 재밌게 읽은 책은 아쉽지만 중고서점에 판매하고 있다. 중고서점에서 매입해 주는 가격은 책값에 비해서는 작은 값이지만 그래도 책을 판매하면 다른 책을 구매할 수 있는 포인트도 쌓이고, 또 책을 팔러 간 김에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면 새로운 책을 사 온다. 중고서점에 판매할 책에 대해서는 책을 아껴서 보게 되는데, 책을 볼 때 책이 훼손될까 봐 책을 많이 펼치지 않고 60도 정도로만 펼쳐서 본다. 새책 같은 상태로 중고서점에 판매하기 위해 아주 조심스럽게 펼쳐서 본다. 이번에 독립서점에서 구매한 책도 그렇게 조심스럽게 읽고 중고서점에 가져가서 매입을 요청했는데, 매입담당자는 내가 독립서점에서 산 책 바닥에 '증정'이라는 단어가 찍혀있기 때문에 그 책을 매입할 수 없다고 했다. 서점에서 정가를 주고 산 책인데, 매입할 수 없다고 하니 황당했다. 그 책을 샀던 독립서점에 대해 실망스러움이 몰려왔다. 어떻게 증정품을 나에게 정가를 주고 팔 수 있었을까. 매입 거절이 되어 나는 그 책을 고스란히 들고 돌아왔다.
그 독립서점은 모든 동물들과 식물들, 지구와 환경 모든 것을 사랑하는데 나는 사랑하지 않았던 것일까. 어떻게 나에게 증정이라고 쓰여있는 물건을 정가를 주고 팔 수 있을까.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 서점에 가서 여러 권을 사고, 친구를 데려갔고, 친구도 그곳에서 책을 몇 권씩 샀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증정 책을 제 값을 주고 구매한 것은 나뿐이었는데, 나뿐이어서 다행이었다가 화가 났다. 그곳에서의 좋은 기억이 증정 책을 정가에 판 나쁜 기억으로 바뀌어버렸다. 아마 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책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책방 사장의 실수인 것이지 의도적으로 나에게 증정책을 팔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소심한 나는 두 번 다시 그 책방에 가지 않게 되었다.
이 외에도 독립서점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이 하나 더 있다. 어느 도시에 들를 일이 있어 그 지역에 있는 독립서점을 방문했었는데, 굉장히 아름다운 서점이었다. 그 지역의 명소가 되었는지, 방문객이 아주 많았다. 독립서점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꽤 컸고, 수많은 방문객들은 모두 기꺼이 책을 사서 나가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벽 여러 군데에 독립서점은 운영이 힘들기 때문에 최소한 1권 이상씩의 책을 구매해 달라는 요청문이 있었다. 그 문구를 보고 불편함이 몰려왔다. 독립서점에 가면 반드시 책을 사서 나와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들고는 했었는데, 그 부담감이 벽에 문구로 적혀있는 것을 보자 거부감이 들었다. 독립서점을 좋아하고, 작가를 꿈꾸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립서점에 방문할 때마다 책을 구매하고 싶지는 않다. 독립서점의 운영을 위해 책을 1권 이상 구매해 달라는 요청문이 그날따라 반감이 들었고, 결국 책을 사서 나오지 않았었다.
그 뒤로 독립서점에 대한 피로감이 느껴져 한동안 독립서점을 일부러 찾아가는 것은 중단하였다. 독립서점에 갔다가 책을 사서 나오지 않는다면, 무료로 독립서점 사장님들의 시간을 빼앗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편한 감정도 들었다. 물론 서점이라는 특성상 책을 반드시 사야 하는 것은 아니라서 사장님들은 신경을 쓰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사고 싶은 책이 없더라도 사장님들의 정성 어린 큐레이션을 이미 봤기 때문에, 그 큐레이션들을 보기 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독립서점에 방문했다는 것만으로도 돈을 내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독립서점에 이용에 부담을 느낀 후 대형서점에 갔을 때,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책을 구경하면서 오히려 편안함과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중고서점에 팔지 못해 내 곁에 남아버린 책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결국은 소장하기로 했다. 좋은 느낌을 받았던 독립서점에서 정가를 주고 산 증정 책이었지만, 그래도 나한테 온 이상 이것도 인연이다 싶어서 그 책을 소중히 간직하기로 했다. 의도했던 결과는 아니지만, 내 곁에 남게 되었으니 그 책을 사랑하기로 했다. 그 책은 1인출판사 작가의 책이었는데, 작가분의 다른 책들을 찾아 읽어보았다. 그 작가도 직장생활을 오래 했었고, 직장생활과 글쓰기를 양립하다가 결국은 글쓰기를 선택한 사람이었는데, 작가의 어느 책에는 국제도서전에 참가했다는 구절이 있었다. 그 출판사가 매년 국제도서전에 참가한다는 말에 나는 국제도서전에 가서 그 출판사 부스에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출판사 부스에서 열심히 책을 판매하고 있는 작가님을 몰래 멀리서 보고 왔다. 만약 증정책이 아니어서 중고서점에서 그 책을 매입해 주었다면, 그 책에 대해서는 한번 읽고 바로 잊었을지도 모른다. 책을 처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이 책과 출판사, 작가님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응원하게 될 것 같다.
한동안 독립서점에 대한 발길을 끊었었는데, 시간이 흐른 후 우연히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분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사장님은 5년째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계시긴 하지만, 언제까지 운영할 수 있을지 모르는 막연함 속에서 1년이라도 더 독립서점을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그 독립서점은 구독료를 받고 큐레이션 된 책을 보내주는 서비스도 하고 있었는데,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굳이 진심을 다해 정성스럽게 하고 있는 사람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지만 하루라도 더 하고 싶다는 그 진심이 전해져서 응원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증정책을 나에게 정가로 판매한 독립서점도, 운영을 위해 책을 구매해 달라는 문구를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어 책 구매를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 독립서점도 책을 사랑하기에 운영되는 곳이라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강연을 듣다 보니 혼자 서운했던 독립서점에 대한 감정이 사라졌다.
작가가 꿈이라고 해서 모든 서점과 책을 사랑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한때는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서점과 책, 그 뒤에는 사람이 있기에 언제나 옳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 또한 언제나 바람직한 소비자는 아닐 것이다. 독립서점은 내가 특별히 사랑하는 책과 관련된 공간이라 더 기대했던 것도 있는 것 같아서 실망 또한 나의 몫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선 나머지, 나는 서점을 그저 책을 파는 곳이 아닌 작가의 꿈에 대한 미리 보기 공간으로 신성시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를 꿈꾸면서 독립서점에 불편한 감정을 가졌다는 것조차 불경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책을 좋아하니까, 서점을 좋아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또다시 독립서점에서 책을 구매하게 될 것이다. 결국에 이뤄낼 작가의 꿈도 때로는 서툴고 때로는 치열한 현실 위에서 시작될 것이므로 역시 모든 서점들을 응원할 수밖에는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