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이 갑자기 서바이벌이 될 때

어떤 출근길

by 서윤재

전 직장에 다닐 때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서울의 동북쪽 끝에 살았었는데, 전장연 시위로 이직한 지 3일 차 되던 날 지각을 하고 말았다. 새로 이직을 한 직장이었기 때문에 주변사람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고자 근태관리를 잘하고 싶던 그 시기에 시위로 인해 지각을 하여 마음을 졸이면서 출근을 했었다. 그때는 혜화역에서 시위를 하고는 했는데, 출근을 하기 위한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시위를 하든 말든 지하철로만 출퇴근을 할 수 밖에는 없었다. 시위를 한다고 해서 지하철 안에서 한참을 기다렸던 것 같다. 그때 경기도 양주에서 서울의 중심부로 출퇴근하던 직장 동료분이 계셨었는데, 그분은 전장연 시위로 인해 지하철에서 두 시간을 갇혀서 11시 30분쯤 출근을 했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회사에 지각하는 것은 둘째치고 두 시간 동안 사람이 꽉 찬 지하철에서 갇혀있었는데, 화장실이 급해서 혼났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지하철 외에는 출퇴근을 하기 위한 다른 교통수단이 없는 직장인들이 많아서, 전장연이라는 세 글자만 들어도 출근길이 단번에 서바이벌이 되어버린다.



출근할 때 반쯤은 잠에서 덜 깬 상태로 사람이 가득 찬 지하철에서 모든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채 우선 출근만 제대로 하자고 생각하면서 출근을 한다. 회사에 가서 자리에 앉아 피씨 로그인을 할 때쯤에야 정신을 차리는데, 맑은 정신으로 지하철 출근길에 오르면 괴롭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득 차있는 지하철에 간신히 몸을 실은 그 시점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나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모두 내려놓는다. 회사에 지각하지 않기 위해 사람이 꽉 찬 지하철을 타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때 지하철을 그냥 보내버리면 출근시간이 아슬아슬해지기 때문에 나의 지하철 탑승이 다른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것을 알면서도 앞사람을 조금 밀어 본다. 다음 지하철이 바로 들어온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유발하더라도 내가 9시 전에 회사에 도착하여 앉아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출근하는 직장인에게 사람이 많다고 해서 다음 지하철을 기다렸다 타도 되는 여유는 없다.



과거 혜화역에서 전장연 시위가 있었을 때, 그 당시에는 시위빈도가 높아 매일 출근길에 가슴을 졸였었다. 전장연시위가 있는 날에는 혜화역에 무정차 통과를 했었는데, 그때 지하철 창 밖으로 바라본 혜화역 플랫폼에는 아주 큰 사다리가 있었고, 경찰들과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굵은 쇠사슬이 지하철역에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을 봤지만, 당시 내 머릿속에는 이직하게 되어 새로 출근한 회사에 지각하지 않기만을 바랬었다. 당시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전장연 시위를 다루었고,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시위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나 또한 새로 이직한 회사에 지각을 했었기 때문에 차라리 출근길이 아니라 퇴근길에 시위를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그 뒤로 부산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부산에서도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했기 때문에 출근길에 전장연시위가 있을까 봐 출근길 지하철 걱정을 했었다. 부산에서도 그런 시위가 있으면 어떡하나 생각했었는데, 부산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장연시위가 서울에서만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서울에서 전장연시위를 보면서 20년 전 스물한 살 때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갔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해외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캐나다에서의 생활은 나에게 여러 방면에서 문화충격을 주었는데, 그중 하나는 캐나다에서는 어딜 가나 장애인이 많다는 것이었다. 버스를 탈 때나 쇼핑몰에 갈 때, 식당에 가면 어딜 가나 장애인이 있었다. 어느 공공장소에서도 장애인이 있어서 같은 공간에 있을 때 당황하고는 했었다. 서울에서는 장애인을 거의 못 봤기 때문에 장애인이 주변에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불편해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몰랐다. 선진국 시민들은 장애인을 봤을 때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할지도 알고 있는 듯해서 나는 언제나 주눅이 들었다. 장애인이면서도 익숙하게 버스를 타고, 쇼핑몰을 이용하고, 식당 직원들과 대화하는 것을 보면 캐나다보다 물가가 낮은 국가에서 와서 주눅 들어 있고, 영어를 못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다시 마주한 건, 5년 전 생애 첫 집을 구하던 때였다. 당시 부동산 광풍 속에서 서울에서 부동산 가격이 가장 낮은 동네에 주택 매수를 결심하고 그 동네 부동산에 전화를 돌렸었는데, 어떤 부동산 사장님이 그 동네는 장애인이 많이 살고 있으니 그 동네 주택은 사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누군가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기피의 근거가 된다는 것이 씁쓸했다. 그런데 그 동네의 주택을 매수하기에 내 예산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부동산 사장님이 알았다면, 그런 얘기를 했을까. 그 동네 주민이 되기에는 내 경제적 여건이 받쳐주지 않아서 어차피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 뒤로 마흔이 가까운 나이에 대학원을 다닐 때에는 학교에서 여러 명의 장애인 학생들을 봤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때 도서관 1층에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남학생들이 몇 명 보였다. 대학원 도서관은 언덕 위에 있어서 나는 숨을 헥헥거리며 언덕길을 올라가고는 했는데, 날렵해 보이는 전동 휠체어를 탄 남학생이 빠른 속도로 언덕을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부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스무 살 정도 된 전동휠체어를 탄 남학생이 도서관 1층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여러 번 봤는데, 마흔을 앞둔 내가 보기에는 빛나는 청춘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싱그러워서 장애가 있다고 해서 건강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되었다. 그 순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내가 스무 살 즈음에 대학교를 다닐 때에는 학교에서 단 한 번도 장애인을 본 적이 없었다. 그 뒤로 20년쯤이 지나 대학교 도서관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학생들과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져서 그동안의 경험들을 되짚어보니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부터 또다시 직장 동료들이 지각을 하고는 했는데, 어떤 동료가 5호선에서 전장연 시위를 하더라며 지각을 했다. 4호선에서만 전장연 시위를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다른 노선에서도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출퇴근 시 이용하는 서울의 지하철 1호선에서는 전장연 시위가 없었기 때문에 전장연 시위는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1호선에도 전장연 시위가 발생했다. 출근을 하기 위해 지하철을 탑승하려고 달려가는데, 지하철이 웬일인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근길 지하철은 매번 나를 기다려주지 않고 먼저 출발해서 야속했는데, 그날은 지하철이 나를 기다려주고 있어서 쾌재를 부르며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한참을 있어도 출발하지 않았다. 곧 방송이 나왔는데, 1호선 용산역에서 전장연 시위가 있기 때문에 열차 운행이 지연된다고 했다.



내가 이용 중인 1호선에서 전장연 시위를 한다는 소식에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했다. 1호선에서는 전장연 시위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안심했었는데, 아니었다. 운행을 재개할 때까지 그냥 기다릴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출근해야 할지를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안 되겠다 싶어서 지하철에서 내려 다른 교통수단을 타고 출근을 했다. 어차피 지각은 확정인데, 잘하면 1,2분만 지각을 할 것 같아서 빨리 움직이면 될 것 같았다. 요리조리 환승을 해야 했지만, 다른 교통수단이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늦지 않기 위해 달리느라 땀이 많이 나서 아침 출근길에 이게 무슨 대모험인가 하는 헛웃음이 나왔다. 어쨌거나 무사히 출근을 했다. 그다음 날도 항상 이용하던 지하철 1호선에 전장연 시위가 있다고 해서 그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다시 다른 교통수단을 검색하여 평소와는 다른 경로로 출근을 했다. 서울의 직장인에게 지하철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생계유지수단이라서 지하철 운행에 작은 차질만 생겨도 평화롭던 출근길은 순식간에 긴장감이 감돌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장연 시위를 반대할 생각은 없다. 월급쟁이의 출근길이 방해받는다고 하더라도 어떻게든 대체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출근을 해야 한다는 간절함보다는 지하철의 운행을 중단해서라도 관통하고 싶은 어떤 사람들의 간절함이 더욱 클 것이기 때문에 응원하지 않더라도 반대하지는 못할 것 같다. 시위 때문에 대체 교통수단을 검색해서 돌아 돌아 땀을 뻘뻘 흘리며 회사에 출근하게 되더라도 시위 참가자들이 놓인 상황보다는 나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 사회가 시위를 할 만큼은 건강하다는 신호 같기도 해서 다행스럽게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런 시위를 할 수 조차 없는 사회를 상상해 보면 시위로 인해 시민들의 출근길에 불편함을 끼치는 것이 나은 것 같다. 내일 아침 또다시 시위 소식을 듣게 된다면 여전히 가슴이 덜컥하겠지만, 나 한 명의 출퇴근쯤은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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