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식욕
체중이 점점 늘고 있다. 스무 살 이후 체중이 가장 많이 나갔을 때와 가장 적게 나갔을 때가 20kg 정도 차이가 나는데, 요즘의 나는 인생 최고였던 몸무게를 향해 가고 있다. 다른 것들로부터 이미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외모로 만큼은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고 생각하지만, 몸무게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것을 보고서는 충격을 받아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흔 살이 되어도 나쁜 식습관은 개선이 안 되어 과식을 하고 나서는 소화가 안 되고, 소화가 안 되면 컨디션이 나빠지고, 기분이 나빠지고, 우울해지고, 자괴감이 드는 그런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나쁜 식습관을 고쳐보려고 해 봤지만, 식습관도 습관이라 힘이 어지간히 세서 쉽게 고쳐질 것 같지는 않다.
퇴근을 하고 허기 진 상태로 집에 도착하면, 긴장이 풀리며 마음이 편해진 상태로 식사를 하게 되는데, 이때 식사를 하면 꼭 과식하게 된다. 그리고 술 한잔이 간절해진다. 회사에서 힘들었으니까 술 한잔 정도는 먹어도 된다고 합리화를 하면서 술을 먹다 보면 안주가 모자라서 안주를 추가하게 되고, 안주를 추가하면 술이 모자라 다시 술을 더 마시게 된다. 그렇게 안주와 술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 지경에 이르면 과식을 한 채 잠이 들고, 다음 날 무거운 몸으로 일어나게 된다. 다음 날 저녁에는 전날보다 더 강력한 저녁식사를 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자극적인 음식을 입에 넣지 않고서는 못 견딜 것 같은 순간도 찾아오는데, 그럴 때 자제력을 잃고 과식을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파블로프의 개가 된 것처럼 음식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를 나타내고 내가 되기 때문에 무엇을 먹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의식적으로 음식 생각부터 하게 된다. 먹고 나서 배부름을 넘어 불쾌함이 들 때면, 불쾌해질 때까지 먹은 내가 싫어진다. 내가 무엇을 먹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는 내가 정하고 싶은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통제력을 잃어버린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시기에는 소화는 잘되지 않으면서 음식 섭취량은 많아지고,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서 살이 찐다. 그러고 나면 거울 속의 내 모습이 싫어져 나 자신을 싫어하게 된다. 그렇게 한동안 방치하다가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마음을 다잡고 식단을 조절하며 과식하던 습관을 조절하면 어느 정도는 돌아오지만, 스트레스를 다시 받게 되면 같은 일이 반복된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가장 좋아하는 메뉴 조합은 컵라면과 캔맥주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편의점에 들러 매운맛 컵라면과 캔맥주를 집어 들고 집에 와 조용한 방 안에서 영상을 보며 혼자 마신다. 컵라면 하나와 캔맥주 하나로는 심리적 허기가 채워지지 않아 결국 컵라면 두 개를 먹고 캔맥주 500ml 두 개를 마시게 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생긴 이 습관은 몇 번이고 고치고자 했지만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밤에 컵라면과 맥주를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고 컨디션이 나빠져 빈도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머릿속이 폭발할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는 순간에는 여전히 매운 컵라면과 캔맥주를 찾게 된다.
사회초년생 때 회사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어쩔 줄 모르던 시절, 내가 선택한 것은 과식과 과음이었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건강한 취미도 없었기 때문에 회사 일에 대한 생각을 스스로 떨쳐낼 수가 없었다. 아무리 다른 곳으로 신경을 돌리려 애써도 회사 일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고, 괴로워하다가 음식을 떠올리게 되었다. 음식을 먹을 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회사 일에 대한 걱정을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컵라면과 캔맥주는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확실한 효과를 주었고, 나는 꽤 오랫동안 여기에 의지해 힘든 순간들을 버텨왔다.
퇴근 후 야심한 밤에 컵라면과 캔맥주를 마시던 순간에는 큰 행복을 느꼈지만, 밤늦게 먹고 난 뒤에는 종종 배앓이를 했고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먹고 난 후의 여운은 붓기와 늘어난 체중으로 남았다. 외모로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거울 속의 내가 싫어질 만큼 살이 찌고 붓는다. 그러면 이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나를 해치고 있다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밤늦게 컵라면과 캔맥주를 먹으면 신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트레스를 크게 받은 날에는 그것을 먹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결국 선택하게 된다.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스트레스로 괴로울 때면 자해하듯이 먹고, 그 끝은 늘 후회였다.
유튜브에서 나보다 훨씬 날씬하고 아름다운 여성 유튜버가 몸에 좋은 음식만 먹으며 자기 관리를 하는 모습을 보면, 나와 대비되는 모습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낀다. 회사 일이 힘들다는 이유로 몸에 해로운 음식을 먹으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나 자신이 싫어진다.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며 내 불행을 나열하게 된다.
회사를 관둘 수도 없고, 회사를 다니는 한 스트레스를 피할 수도 없다. 결국 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계속 건강을 위협하며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이런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다. 아름다운 외모는 포기했지만, 최소한 밤늦게 컵라면과 캔맥주를 먹는 습관에서 벗어나 매일 아침 좋은 컨디션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컨디션이 좋으면 그날 하루는 뭐라도 해보고 싶어지고, 다음 날도 또 좋은 하루를 보내고 싶어진다.
반면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에는 그날 하루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고, 모든 것을 그만두고 도망가고 싶어진다. 괜찮은 컨디션일 때는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일도, 컨디션이 나쁠 때에는 작은 불행으로 다가와 일상을 흔든다. 나는 컨디션에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 어쩌면 내일의 불행을 막기 위해 오늘의 컨디션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늘 지금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몸에 해로운 음식을 먹으며 이 순간의 괴로움을 달래왔다. 그렇게 귀하게 준비해야 할 내일의 컨디션을 앞당겨 써버린 기분이 든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과식과 과음을 하는 습관을 고쳐보려고 정말 오랫동안 노력해 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이 습관은 힘이 너무 세서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는 한, 아무리 다짐을 하고 결심을 해도 스트레스에 무너질 때마다 다시 컵라면과 캔맥주를 찾게 될 것이다. 먹지 않겠다고 다짐해 놓고 또다시 먹고, 먹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다짐을 멈출 수는 없다. 앞으로도 수없이 다짐하고 또 무너질지라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