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섦이 익숙함으로 바뀌는 순간

어떤 안도감

by 서윤재

과거에는 회사일에 대해 자신이 있었다. 회사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한때는 회사일이 전부였다. 회사는 조직문화도 별로였고, 마음을 터놓을 사람도 없었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없이 혼자 지냈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만이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과거에는 일 외에는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사람들과 교류를 할 때보다 일을 할 때 마음이 편했던 것 같다. 일을 할 때 인간관계는 꽤나 어려웠지만, 내가 잘 알고 있는 일을 내가 한다는 것에 대해 안정감이 들었고, 내가 잘 파악하고 있는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안정감은 여러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인간관계가 어려웠지만, 일로서는 어떤 조직에서든 꼭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했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을 어려워하는 나는 질문을 받는 것이 훨씬 편했기 때문에 업무에 대해서는 내가 먼저 물어볼 일이 없도록, 누군가가 먼저 물어봐야만 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어떤 업무에 대해 내가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되면 그다음부터는 업무가 수월해졌다. 눈치를 보면서 상대방에게 먼저 말을 걸 필요가 없었다. 다른 부분에서는 자신이 없으니 업무적으로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자는 것이 내 생존수단이었다. 업무를 깊게 파악한 후에는 그 업무를 오랫동안 하는 것이 직장생활을 편하게 하는 방법이지만, 도무지 직장에 마음을 붙일 수가 없어서, 업무 외에는 다른 것들이 불편해서 나는 어렵게 파악한 업무들을 내려놓고 이직을 했었다.



그 뒤로 몇 번의 이직을 거쳐 지금의 회사에 오게 되었는데, 지금의 회사에서 근무하는 것이 오랫동안의 꿈이었다. 한 번쯤은 근무해보고 싶은 꿈의 회사였고, 궁극적으로 커리어의 목표가 되는 회사였다. 그런데 새로운 조직에 나중에 합류한 나로서는 업무에 선택권이 없었다. 담당자가 없는 남는 업무를 해야만 하는데, 이직과 동시에 내게 주어진 업무는 처음 해보는 업무였다. 십수 년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어떤 일에 대해 자신 있다고 자부해 왔는데, 이직을 해서 내가 잘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이 아닌 새로운 일을 맡게 되었다. 이직을 하면서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조직문화, 새로운 사람들에게 적응해야 했는데, 새로운 업무를 맡은 것이 어려웠다. 나는 낯선 것에 대해 친숙해지는 시간이 다른 사람들보다 오래 걸리고, 내가 내 나름대로의 이해과정을 거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사람이라서 새로운 업무를 받고 나서 한동안은 힘들어했다.



이직한 회사에서는 지금까지 직접 실무를 해왔던 것과는 다르게 내가 다른 사람에게 요청을 해서 일이 돌아가게 해야 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요청을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업무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로 다른 사람에게 업무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내가 직접 실무를 하면서 내가 한 일에 확신을 갖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었는데, 내가 잘 모르는 것을 다루어야 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관리업무가 주어지다 보니 업무에 대해 모르는 상태로 다른 사람에게 업무를 지시를 해야 하고, 그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온전히 져야 했다. 내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일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해달라고 요청한 후 그 결과가 제대로 되었는지를 확인해야 하는데, 업무를 파악하지 못한 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휘둘리고는 했었고, 그런 상황은 업무를 진행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나에게는 오랫동안 일이 자부심이었기 때문에 직장생활의 인간관계가 힘들 때일수록 일로 도망을 치고는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내 업무를 내가 파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매 순간 불안했다. 결국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업무를 하면서 그 업무에 대한 경험치를 쌓아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부끄럽지만 이 업무에서 초보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렇게 받아들이면서 계속 마음을 다잡으며 회사에 다녔다. 그렇게 아주 조금 업무에 익숙해졌을까, 지금 하는 업무의 개선점들을 파악하여 이런 점들을 고쳐나가면 편리하겠다라고 생각이 들 때쯤 청천벽력같이 또 다시 업무가 바뀌었다.



이직을 한 후에 자리를 잡지 않은 터라서 다른 직원들에 비해 내가 업무 전환이 쉬웠을 것이다. 하던 업무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것 같고, 자신이 없었는데 또다시 낯선 업무를 배치받게 되었다. 이번에는 이직한 후 처음 받았던 업무보다 더 생소한 업무를 받았다. 처음 받았던 업무는 그나마 알 것 같은 업무였는데, 새로 받은 업무는 전혀 새로운 업무여서 당황의 연속이었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업무인데, 다른 사람에게 업무를 배정하고 요청하고 진행상황에 대한 확인을 해야 했다. 새로운 업무에 대해 전혀 감도 없고 모르겠는데, 업무 요청을 해야 하는 사람과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업무 요청을 하면 답변이 없고, 안된다, 모른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답답한 상황의 연속이었고, 업무를 만족스럽게 해내지 못하는 나 자신이 실망스러웠다.



매일 발생하는 급한 업무들을 먼저 진행하다 보니 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파악할 시간이 없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업무를 파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애써 모른척하며 큰 문제가 터지지 않도록 하는 것에만 급급했다. 새로운 업무를 빨리 파악하기 위해서 더 시간을 쓰고 노력했어야 하는데, 사실 내가 잘 모르는 것을 한다는 것 자체에 의욕이 생기지 않아 오래도록 회피했다. 업무 자체에 대한 파악을 하지 않고 표면적인 것만 파악한 채로 문제가 생기지만 않도록 했었고, 이런 상태로 몇 개월이 훌쩍 흘러갔다. 이와 같은 태도는 결국 업무에 대한 자신감이 사라지게 만들었고, 업무로 힘든 상황을 맞을 때마다 기댈 곳이 없게 했다. 한때는 나의 전부였고, 가장 잘하고 싶은 것이 회사일이었는데,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니 가장 회피하고 싶은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이직을 꿈꾸면서 이력서를 계속 넣고 작가가 되어 글로 수입활동을 할 수 있게 되면 퇴사를 할 수 있기를 바랐었다. 회사일로부터 도망치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처럼 업무에 익숙해지지 않은 채 불안한 상태로 퇴사를 하는 것은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알게된 것인데, 회피했던 일은 나중에 이자를 붙여서 더 큰 대가를 치루게 된다.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회피한 것들은 나중에 더 큰 결심과 더 큰 노력으로 결국은 해야만 했다. 지금이 내 회사생활의 마지막이라면, 누군가 훗날 내가 마지막 회사생활을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물어본다면, 업무를 몰라서 힘들어서 관두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한 때는 내 모든 것이었던 회사일에 대해서 업무를 파악하려고 애쓰지 않은 채 회피하면서 퇴사를 한다면, 앞으로 직장생활에 대해 글을 쓸 때 진심의 무게가 실리지 않을 것이며 직장생활에 대한 한탄을 쓰지도 못할 것 같다.



업무를 파악해 보자고 다짐했다가 바빠서 못하다가 또 업무를 파악해 보자고 다짐했다가 포기하고는 했었다. 몇번이고 이번에는 기필코 업무를 파악해보자고 다짐했다가 바빠서 내려놓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부터는 아주 조금씩이지만 내가 하는 업무가 무엇인지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발생빈도가 높은 업무에 대해서는 희미한 선들이 선명해지듯이 이렇게 처리하면 되는구나 하는 익숙한 감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결국 나는 또다시 익숙함의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이다. 나는 낯섦이 익숙함으로 바뀌는 순간에 마음이 안정되고 행복을 느끼는데, 업무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함이 예전보다는 사라져서 편안해진 것 같다. 지금도 회사일을 하면서 매 순간 겪는 많은 불안과 두려움이 있지만, 몇 달 전에 비해서는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같이 업무를 하는 사람들과도 익숙해지자 숨통이 트이는 듯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조금은 긴장을 풀고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갈 길은 멀었지만, 그래도 지난 몇 달간 맡은 업무에 대해 조금은 익숙해진 것 같아서 제대로 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든다.



낯선 것을 접할 때 내가 과연 할 수 있을지 의심했던 순간들이 처음은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낯선 곳에 갔을 때, 이직을 했을 때에도, 새로운 업무를 맡을 때에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을 때에도 나는 언제나 항상 극도로 불안해했고, 두려웠다. 언제나 새로운 곳에 가는 것을 동경하고 꿈꾸었으면서도 새로운 곳에 막상 가면 두려워서 눈물이 날 것 같은 감정을 주체하기가 어려웠다. 그럴 때에는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 나를 안심시켜 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점점 안도감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아주 조금이더라도, 매일 조금씩만 익숙해지기로 다짐하면,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낯선 업무도, 도저히 친해질 것 같지 않은 사람들도 회피하지 않고 오늘 아주 조금씩만 친숙해지자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으면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주고 처음의 두려웠던 감정은 기억나지도 않게 되어버린다. 업무에 자신감이 생기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지난 몇달간 포기하지 않고 익숙해지려고 했던 노력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든다. 여전히 회사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는 새로운 상황에 마음이 무너지기도 하지만, 오늘의 노력이 몇달 후의 안도감으로 돌아올 것임을 안다. 낯섦이 익숙함으로 바뀌는 그 순간을 이전에도 분명히 경험해봤기 때문에, 조금만 더 하면 될 것만 같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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