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오지랖
나만 빼고 점심을 다 같이 먹기로 했는지, 팀원들이 점심 먹으러 가자 누구는 먼저 도착했다더라 하는 이야기와 함께 점심시간은 시작되었다. 회사에서 왕따인데, 자발적 왕따인지, 자발적 아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점심시간을 혼자 보낸다. 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에 피곤함을 느낀 후로는 혼자 점심시간을 보내는 것이 편하게 느껴졌다. 대부분의 점심시간에는 운동을 가는데, 운동을 다녀와서 계란이나 고구마 같은 것으로 점심식사를 대신한다. 나는 타인과 함께하는 점심식사가 편하지 않으며, 나는 직장생활 내내 점심을 같이 먹을 동료가 없었다. 점심시간만은 혼자 보내고 싶다는 마음도 컸지만, 마음에 맞는 사람도 만나기가 어려웠다. 종종 마음에 맞는 동료를 만나기도 했지만, 함께 한 시간은 길지 않았다. 꼭 퇴사 직전에 힘들어하는 사람들하고만 친해져서 퇴사 직전까지 애절하게 점심도 같이 먹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는 했지만, 내가 퇴사를 하든지, 상대방이 퇴사를 해서 곧 혼자가 되었다. 회사에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내가 잘못된 것 같다는 자책도 하고,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떻게든 어울려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차피 어울린다고 해도 억지로 어울리는 것이 불편해져서 결국 혼자가 되었다.
대신 가끔 누가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면 거절하지 않는다. 나같이 늘 혼자 점심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 점심식사를 제안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 때문에 누군가 같이 먹자고 제안을 한다면 그것은 거절하지 않으려고 한다. 점심식사를 혼자 먹으려고 하는 이유는 직장에 마음 편히 소통할 수 없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점심시간마저도 노동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며,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점심시간을 보낼 바에는 내 점심시간을 나 홀로 소중하게 쓰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심식사를 할 때 한 번은 누가 사고 한 번은 누가 사야 하는 것이 굉장히 신경이 쓰이며, 누군가로부터 식사를 얻어먹어도 불편하다. 회사사람들과는 사적인 이야기도 하지 않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어색하다. 그리고 점심시간에 운동이라도 해야 남는 것 같아서 점심시간이 요가수업을 가고는 한다. 점심시간에 운동을 다니면 점심을 같이 먹지 않아도 괜찮은 명분이 생긴다.
점심을 같이 먹을 사람이 없다는 것보다 운동을 한다는 사실에 집중하면 그렇게 쓸쓸하지도 않다. 나는 첫 직장에서부터 사람들과 어울리기 어려워했었고, 그때부터 점심시간에 운동을 다니기 시작했다. 친한 사람이 없어서 밥을 혼자 먹는 사람이 아니라 운동을 하기 위해 밥을 혼자 먹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점심시간에 운동을 한지가 10년이 넘었다. 운동은 회사생활의 좋은 도피처였다. 점심시간에 사무실 자리에 앉아있기는 괴롭고, 불편한 사람들과도 점심식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 좋았다. 점심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먹기 위해 애쓰지 않아서 좋았다. 마음이 편하지 않은 사람들과 점심멤버가 되어 오늘 점심은 뭐 먹을까 메뉴를 정하는 것과 누구는 약속이 있어서 빠지고 누구랑 누구만 남는데 그럼 난 따로 먹을게 하는 상황들도 피곤했다. 점심 메뉴를 내 맘대로 정하지 못하는 것도 싫었고, 내가 정했는데 모두의 입맛을 충족시켜 맛이 없으면 안 되는 것도 싫었고, 맛있는 것은 언제나 비싸서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점심 때문에 지출이 커지는 것도 불편했다. 차라리 혼자가 나았다.
우리 팀원들은 모두 다 나가버려서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도시락으로 싸 온 사과를 먹으면서 이거 다 먹으면 요가수업 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었는데, 평소 교류가 전혀 없는 앞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우리 팀의 팀사람들과도 전혀 친하지 않은데, 남의 팀까지 관심가질 생각은 없지만, 분위기가 심각했다. 업무적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감정싸움이 번진 것 같다. 나는 남의 갈등상황을 보는 것을 불편해하는데, 심각해 보이는 상황에 내 과거 회사생활의 주마등처럼 스쳤다. 당사자들은 한참 화를 표출하더니 모두 나가버리고 나와 앞 팀의 한 여직원만 남았는데, 그 여직원이 울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팀원들이 그 사람만 빼놓고 업무내용을 공유하고, 회의를 하고, 사람을 꿔다 놓은 보릿자루를 만들었나 보다. 그래놓고 왜 안 했어요라고 하는 상황인 것 같다. 그 직원은 공유 좀 해달라 나도 알아야 할 것 아니냐 하는 상황에서 시작했는데, 관리자도 그러게 좀 잘하지 그랬어하는 취급을 받는 것 같았다.
당사자는 아니었지만, 내가 잘 아는 상황이다. 내 편은 아무도 없고, 내 이야기는 들을 생각도 없고, 업무적으로도 전달해주지 않았으면서 평가하고 무시하는 상황처럼 보인다. 나는 언제나 혼자였고, 모든 의사소통에서 배제되었으며, 그럴 때마다 일에만 몰두하다가 퇴사를 하고는 했다. 알 것 같은 익숙한 감각이다. 주변의 팀원들로부터 꽤나 오랫동안 배제되고 투명인간이 되면, 생선가시를 목에 삼킨 듯 꽤나 괴로워진다. 점심시간에는 같은 사무실에 있는 것조차 괴로워져서 먼 곳으로 산책을 하고 오기도 하고, 어떻게든 매일 무너지는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며 회사를 다니고는 했었다. 그러다 이직을 하게 되어 온 회사였는데, 알고 보니 나만 빼고 팀장님이 데려온 사람들이라 또 다시 아싸가 되었다. 나만 빼고 다른 사람들은 주말에 보기도 하고, 나만 빼고 골프를 같이 다니기도 해서 이쯤 되면 왕따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그 무리에 도저히 끼고 싶지 않아서 거기에 껴서 눈치 보느니 혼자 고독한 아싸 혹은 왕따가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 무리에 끼려고도 해 봤지만, 나와는 맞지 않아 재미가 없어 내 시간이 아까웠다.
다른 팀이지만 나보다 열 살은 어린 여직원이 점심시간에 사무실에서 혼자 우는데, 사무실에서 혼자 울고 있는 사람을 모른척하자니 마흔살이라는 나이가 부끄러워졌다. 사무실에서 혼자 훌쩍이는 그 비참함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직원을 보니 과거의 내가 떠올라서 괴로웠다. 어쩔 줄 모르는 안쓰럽던 내가 떠올랐다. 그리고 혹독한 회사생활에서 받았던 따뜻한 친절들이 떠올랐다. 퇴사한다고 했을 때,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식사나 하자며 밥을 사주던 동료들을 기억했고,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간식거리를 나누어주던 동료들을 기억한다. 가까이에 있던 팀사람들에게는 받지 못한 친절이었는데, 멀리 있던 사람들로부터 그런 따뜻한 친절을 받았고, 그 덕분에 회사에서 딱딱하게 굳은 마음이 조금은 풀릴 수 있었다. 덕분에 그 날들 하루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너무 부족해서 꽤나 많은 신세를 받아왔고, 그런 작은 친절들이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회사를 다니지도 못했을 것이다. 마땅히 나를 동료로 인정하고 존중해줬어야 할 관리자나 선임들은 나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며 험담을 하고 다닌 적도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라는 감각이 지금까지도 회사생활을 지속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회사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연봉상승과 진급이 중요하지만, 망해가는 회사에서 연봉상승과 진급을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 혼자를 택했지만, 무례한 언행과 행동이 기본값인 회사에서 가까스로 보이는 친절에 마음이 편해지고 조금 더 근무해 볼까 하는 힘을 얻는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친절이었고, 지금도 나는 친절이 필요하다. 회사의 왕따로써 팀사람들과 교류하지도 않는 내가, 회사에서 앞가림도 못하는 것 같은 내가 울고 있는 직원에게 말을 거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회사 경험이 훨씬 많은 내가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여직원 혼자 울고 있는 꼴을 도저히 못 보겠다 싶어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을 테니 잠깐 나갈래요? 거절해도 돼요.'라고 메신저로 말을 걸었다. 나에게 말을 거는 메신저에 대답만 했던 나는 누군가에게 말을 먼저 거는 것이 어색하다. 같이 나가든 안나가든 내가 이 말을 안 꺼내면 올해 가장 후회한 일이 될 것 같아서 말을 걸었다. 거절하면 계획대로 운동을 가야지 생각했다.
곧 메신저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라는 말이 뜨면서 나가자고 했다. 우리는 회사 1층에 있는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셨다. 자기가 커피값을 낸다는 말에 '저 돈 많아요.'라고 하면서 커피를 사줬는데, 내가 아무리 내 연차에서는 가장 낮은 연봉이어도 열 살 어린 직원보다는 많이 벌지 않을까 싶어 돈이 많다고 걱정 말라고 허세를 부리며 나중에 먹으라고 달달한 것도 사줬다. 올해 가장 큰 허세였다. 자리에 앉으니 그 사람은 자기 상황에 대해 봇물 터지듯이 늘어놓았다. 너무 자세한 것까지 궁금한 것은 아니었지만, 회사에 친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나는 이 소문을 실어 나를 사람이 없어서 회사에서는 보안유지가 잘 된다고 자부할 수 있다. 대신 내 안에서 묵힌 후 브런치에 써서 13명의 구독자와 공유할 수는 있다. 그 직원은 여러 가지 상황에 놓여있었는데, 정보를 맨 처음 받지 않고 누군가로부터 전달받아야 하는 포지션인데, 정보를 전달해 주는 또 다른 직원이 까칠하게 군다는 것, 그런데 팀장이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직원을 감싸고도는 것, 그로 인해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 것, 다른 중간관리자들도 직원들 사이에 갈등이 나면 전혀 중재할 수 있는 능력이나 의지가 없어서 불리한 위치에서 그 갈등을 다 감수하고 있다는 것 등 여러모로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런 상황을 꽤나 여러 번 목격했는데,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는 이 팀이 아닌 다른 팀에서도 나이 어린 여직원 한 명이 무시당하는 역할을 오랫동안 하다가 퇴사를 했다. 왜 이상한 조직에서는 무시당하는 팀원이 없으면 굴러가지 않는지 모르겠지만, 망해가는 우리 회사에서는 꽤나 많은 팀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다. 당사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당사자들은 퇴사를 하고 다른 곳에 가서 자신의 기량을 펼치고 있기에 조직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무능한 조직이라서 각 팀은 무능한 역할을 하는 사람을 무시해야 자신들의 무능이 가려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금의 회사는 정상적인 상식의 사람이라면 견딜 수 없어서 정상적인 사람들은 입사 후 100일 안에 퇴사해 버렸고, 남은 사람들은 더욱더 무례해졌다. 서로의 말속에 가시가 박혀있고, 그 가시로 서로를 찌른다. 어느 한 명 행복하지 않은, 매일같이 서로를 더 불행하게 만드는 그런 조직처럼 느껴진다. 내가 이 회사에 남아있는 이유는 이직에 계속 실패하고 있기 때문인데, 언젠가부터 회사일로 마음이 심하게 긁혀 상처 입는 날에는 이력서를 한 개씩 써서 제출하고 있다. 그것이 요즘 나의 로또인데, 실제 로또에 당첨되고 싶은 마음보다 이직이 더 간절하다.
회사에서 오랫동안 왕따이자 투명인간처럼 지내온 나로서는, 울고 있던 그 직원이 팀 안에서 무시받는 피해자처럼 보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직원이 지금은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로 지목된 상태라고 했다. 직접적인 갈등 상대는 또 다른 직원 A였다. 직원 A는 그와 나눈 모든 대화를 녹취하고, 메신저 대화 역시 모두 캡처해서 팀장에게 직장 내 괴롭힘으로 호소했다고 한다. 울고 있던 직원의 말에 따르면, 감정적으로 상처 줄 만한 심각한 내용은 없었는데도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고 했다. 직원들의 갈등 상황은 해결할 생각이 없는 팀장은 두 직원을 격리하거나 업무적인 충돌상황을 해결할 의지를 피력하는 대신, 내 앞에서 울고 있는 직원에게 잘 좀 하라고 했단다. 이런 경우에 무능한 팀장 대신 좀 더 공신력 있는 고충처리센터나 노동청에 내가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라는데 사실 여부에 대해 조사를 해달라 요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그런데 회사에서 늘 녹취를 한다는 또 다른 직원 A는 사내에서 공식적으로 가장 어린 구성원이며, 이 회사에서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입사원이 근무 중인 모든 순간을 녹취하면서 근무하며, 그 녹취록을 무기처럼 휘두르는 이 회사는 결코 정상적인 조직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 다니고 있는 이 회사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놀라움의 연속이다.
점심시간에 카페에 앉아 회사욕을 늘어놓는데, 파도파도 괴담뿐이다. 나 또한 회사에서 투명인간으로 매일의 존엄성을 시험대에 올리며 회사에서 무너진 존엄성을 어떻게든 다시 쌓아 출근하는 일의 반복인데, 갈등을 지나고 있는 직원은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우리는 그래도 품위를 지켜내자고 다짐했다. 매일같이 무례함을 마주하는 상황의 연속이지만, 그것은 무례한 사람의 문제이지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상대가 무례하다고 해서 똑같이 다른 사람에게 무례를 휘두른다면, 그것은 분명 나에게 상처로 남을 것이다. 미래에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스스로에게 실망할 여지는 만들지 않는 것이 낫다. 회사에 출근해서 일을 하자는 것인지 서바이벌에 출전해서 누가 누가 다른 사람과 잘 싸우나를 겨루러 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진흙탕 같은 상황에서도 나는 개인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으며, 품위를 지키면서 근무하고 싶다. 회사에서 존엄성과 품위를 지키는 거 아니다, 회사에서는 진흙탕처럼 싸우고 무례하게 언행을 해야 살아남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보다 상식적으로 일할 수 있는 회사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에 이직의 끈을 놓지 않고 싶다. 동료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그 존중을 기반으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
점심시간에 혼자 울고 있던 직원에게 나 스스로 부끄러운 짓은 하지 말자며 먼저 말을 건네긴 했지만, 나라고 순탄한 회사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다. 팀장과의 면담이 있었는데, 팀장님은 작년에 평가를 희생한 팀원들에게 평가를 잘 줘야 하기 때문에 올해 나에게 팀에서 가장 낮은 평가를 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나도 진급대상이라는 것은 안중에도 없고, 팀장은 자신이 데려온 팀원들부터 챙겨야 하기 때문에 나를 인사평가의 희생자로 점찍은 듯하다. 평가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다른 팀원들에게 점수를 잘 줘야 하니 너는 낮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에 환멸이 났다. 그 면담이 있은 후 익명으로 내가 팀장을 평가하는 다면평가가 있었다. 아무리 최악인 팀장이어도 모든 항목에 1점으로 주는 것은 너무 하지 않나 싶어 5점 만점에 1점과 3점을 나눠서 주었다. 어차피 나한테 낮은 평가를 줄 거라고 공표했으니 나도 모든 항목에 1점으로 줬어도 되는데, 마음이 약해져서 3점을 섞어서 줬다. 5점을 줬어도 낮은 인사평가 등급을 생각하면 속이 상해서 좋은 팀장이 아닌데 좋은 점수를 준 것에 대해 후회했을 것 같고, 1점을 줬어도 어차피 나도 좋은 평가 못 받을 텐데 다 같이 망해버리자 하고 모두에게 낮은 점수를 주는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어서 후회했을 것 같다.
인사평가가 안 좋게 나갈 것이라는 통보를 듣고 무력감을 느낀 나는 다른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했고, 곧바로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회사생활이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모두 사라지니 팀장에게 전부 1점을 줄걸 하는 후회가 되기도 한다. 팀장과 부서장 외에도 직원들 간에 무작위로 서로가 서로를 평가하는 것도 있는데, 평소에 싫어하는 사람이 내 평가대상에 뜨면 그 사람의 업무역량과는 상관없이 싫으니까 1점을 준다. 나는 저 사람한테 몇 점을 줄 건데 저 사람은 나에게 몇 점을 줄까. 이런 계산 속에서 오가는 점수에 과연 어떤 효용이 있는지, 본래 목적을 잃어버린 평가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전 직원이 참가하는 치킨게임을 하는 느낌이다. 직원 간의 불신이 깊은 회사라서 다면평가의 전체 평균점수가 무척 낮게 나올 것이고, 결과가 나오면 서로간의 다면평가를 왜 이렇게 했느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날 것이다.
앞으로도 회사에서의 연봉인상이라던가 인사평가가 잘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할 수 없어서, 매일의 자기 효능감을 확인하는 것과 품위를 지키며 회사생활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팀장에게 인사평가에 대한 보복성평가 낮은 점수를 준 것과 평소 싫어하는 직원에게 낮은 점수를 준 것은 신념을 지키며 회사생활을 하겠다는 목표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지만, 모두가 보복성으로 평가하는 조직문화에서 나 혼자 평가대상인 직원이 이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었는지, 공동의 목표에 이 사람의 역량이 도움이 되었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이러한 행동이 나를 갉아먹는 선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덜 손해 보기 위해 결국 이 회사의 문화에 휘둘리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행동 정당화하고 싶지는 않다. 이 회사의 조직문화가 내가 지향하는 바와 반대되는 선택을 하게 만들더라도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고 싶다. 사무실에서 한참 어린 직원이 혼자 울고 있으면 모른척하지 않으며 관심을 기울이고, 무례함을 무기처럼 휘두르는 사람 앞에서 똑같이 무례함으로 응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례함을 무력하게 만들고 싶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는 이런 것들이 어려운 일이라서 나는 또 이직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언젠가 이직을 하더라도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좀 더 좋은 회사로 남길 바라며, 그때까지는 내가 상식이라고 믿는 것에 반하지 않는 품위를 지키며 근무하고 싶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게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