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보다는 본전이다
나는 동네의 작은 식당 찾는 걸 좋아했다. 대형식당은 어딘가 공장 냄새가 나서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평균적으로 작은 식당이 오밀조밀한 일본을 유독 더 좋아했던 거 같다. 의자를 다 채워도 열몇석인 그런 작은 가게에서 먹는 즐거움은 나에게 참 소소한 유희였다. 무엇보다 주인 혼자거나, 부부가 둘이서 알콩달콩 거리는 모습이 동화 같으면서도 진실해 보였다.
1년 넘게 다닌 회사가 3곳이니 평균의 기간은 뻔하다. 가장 길게 다녔던 회사에서 IMF를 핑계로 내몰림을 당한 후부터는 직장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협업을 할 줄 모른다. 그러다보니 심지어 협업이 귀찮다. 나 혼자가 빠르다. 그래서일까, 나는 작은 식당에 대한 로망이 있다. 3~40대에는 그것이 로망이었다. 온 가족이 먹고 살려면 더 커야 했고, 남보다 더 가지고 살려면 당연히 작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나는 빈자들에게 나가라고 말했다. 도심에서 1억으로는 20평도 버거우니, 벌판으로 나가서 4~50평 가게를 차리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40대의 컨설팅을 가든?창업에 전념했다. 내가 만든 식당은 거의 다 외곽에 있었고, 주차장은 넓었으며, 50평이 넘었지만 창업비용으로는 1억이 모자라도 가능했다. 그런 형편없는 창업자금으로 차린 식당들이 지금은 저마다 명당소리를 들을뿐 아니라 다들 노후벌이는 얼추들 끝내 놓았다.
이제는 로망이 아닌 현실의 식당을 보는 중이다. 그건 순전히 나이 탓이다. 50대 중반이 되고 보니 큰 가게나 큰 벌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보였다. 남루한 7~80대를 맞지 않기 위한 안전한 가게였다. 가게가 안전하려면 일단 작아야 한다. 작은 가게를 차리자고 굳이 허허벌판 가든을 나갈 일이 없다. 그래서 이제 내 눈에는 동네 뒷길이 싱그러운 입지로 눈에 들어오는 중이다. 남들은 버려둔 공간, 남들은 값어치가 없다고 외면한 그런 작은 가게들이 눈에 깊숙이 밟히기 시작했다.
아프면 나만 힘들다. 아무도 위로의 전화나 문병 따위를 와주지 않는다. 50대에도 이럴진데, 60대가 되면 더 외로울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아프지 말아야 한다. 아프면 인맥에 대한 소회가 깊어질 뿐이다. 뜬금포를 이어가면 그래서 주머니가 든든해야 한다. 보란 듯 부자가 되잔 말은 아니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는 하지 말고 살아야 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 아쉬운 소리도 젊을 때나 통한다. 50대만 되어도 “언제 돌려줄 수 있는데?”라고 물으면 서로 머쓱해진다.
그래야 돈을 마련하러 애쓰지 않는다. 빚을 내어도 노후를 저당잡히면서 까지는 아니다. 남은 생을 걸고 악마의 힘을 빌리는 동화속 거래는 하지 않아도 된다. 가게가 작기 때문이다. 좋은 자리, 번듯한 가게가 아니라서다. 빌려도 기천이고, 망해도 기천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망할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그래야 망하지 않는다.
사실 성공의 기본공식이다. 그만한 절박함이 없이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살면서 보아왔다. 배수의 진을 치지 않았을 때 용맹해지는 건, 그만큼 뒤로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이다. 도망갈 곳이 없으니 이빨이라도 드러내야 한다. 설사 상대를 물어 죽이진 못하더라도, 나 역시 힘없이 당하고만은 않을테니 말이다.
별거 없는 인테리어로 차린 식당으로 살아남으려면 이제 남은 건, 음식과 주인 둘 뿐이다. 가성비라는 음식과 친구같은 주인 둘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가성비에 맛은 다행히 없다. 가성비는 첫째가 양이고, 둘째가 가격대비,다. 양을 많이 주는 건 어렵지 않다. 번화한 앞길에 월세도 싸고, 규모가 적어 인건비도 들지 않기에 남보다 얼마든지 많이 줄 수 있다. 그렇게 첫째는 해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둘째다. 그러나 사실은 가격대비,라는 게 사실은 더 쉽다. 5천원이라는 가격에 비해 푸짐하다와 만원이라는 가격에 비해 푸짐하다에서 어느 것이 더 쉬울지 선택해보자. 당연히 후자다. 싼 가격은 아무리 푸짐해본들이다. 가격이 비쌀수록 더 푸짐하게 잘 줄 수 있다. 그래서 의외로 가성비를 완성하는 두가지는 그다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인테리어도 부실한 식당이, 어떻게 가격을 비싸게 받을 수 있냐?고 물을 수 있다. 인테리어와 분위기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인테리어가 화려하고 고급이어도 서늘한 느낌이 드는 곳이 있고, 인테리어라고는 1도 없는데 온기가 따뜻해 마음이 착 감기는 느낌을 주는 곳이 있다. 다 경험해 본 일이라 구체적 설명은 하지 않겠다. 서툴지만, 인테리어는 치장의 기술이고, 분위기는 마음의 기술이라는 말로 포장해보고 싶다.
별거 없는 인테리어로 차린 식당으로 살아남으려면 이제 남은 건, 음식과 주인 둘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제 주인의 문제다. 이제 주인이 로망을 현실로 가져올 차례다. 열심히 온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벌어야 하는 40대는 지났고, 이제 부부 둘의 노후만 생각하는 50대인 경우라는 가정에서다. (50대에도 자식 뒷바라지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철학,이라면 예외다)
외진 자리라서 찾는 이도 많지 않다. 직원을 쓰는 것도 아니니 이것저것을 만들어 팔 수도 없는 일이다. 가성비를 줄 수 있는 나만의 메뉴를 선택해서 그거 하나만 팔아내고 간다는 마음이 이 퍼즐을 완성할 수 있다. 물론, 월세는 내야 한다. 물론, 창업에 쓴 돈을 다른 곳에 투자했다면,보다 나은 수입이어야 한다. 그게 얼마라고 단정 짓는 건,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그 액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실패하지 않을 확률은 크다.
내가 왜 실패를 했던가 생각해보자. 단숨에 많은 것을 갖기 위해서였고, 한방에 잃었던 시간을 보상받기 위해서였지 않았던가? 그게 성공했다면 일거에 부자가 되었을 테지만, 아쉽게도 한끗?이 부족해 실패였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게 능력에 비해 큰 식당을 차렸고, 가진 돈에 비해 인테리어를 챙기느라 허리가 휘었다. 이미 시작부터 고된 과정이다. 그러질 말아야 한다. 5060에게 한방 보다는 본전이 낫다. 큰 돈을 따려고 덤빈 결과가 결국은 본전을 찾기 위해서였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