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집도 블루오션이 있다 / 삼겹살이 능사 아니다
거리에 새로 생기는 가게 열에 반은 삼겹살집이다. 도대체 고기 아니면 창업을 할 게 없는 건지, 오픈했다 하면 고기집이고 그것도 거의 삼겹살을 파는 집이다. 기가 막힌다. 생각이 있는 건지 묻고 싶다. 그래 좋다. 차리는 거야 돈 가진 사람의 결정이니 그걸 트집잡아 본들이다. 자기 돈을 허투루 쓰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다.
문제는 그 삼겹살집들이 다름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다름(색깔)이 있어야 손님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 철수네 삼겹살과 영희네 삼겹살이 차별화됨 없이 그저 가게의 위치와 인테리어 분위기로 선택한다면 그건 결과가 뻔하다. 권리금을 더 준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고, 인테리어값을 더 쓴 부자가 이기는 게임이다. 결과가 뻔한 경기를 하라고 한다면 어떨까? 아니, 승부가 뻔한 전쟁터에 총을 들고 나가라면 나갈 사람이 과연 있을까? 전 재산을 들인 창업이야말로 전쟁터다. 목숨을 위협하는 총칼은 없지만, 한 가정의 경제목줄을 쥔 재산이 걸린 싸움이 바로 창업시장이다. 그런 곳에서 색깔도 없이, 매력도 없는 돼지고기 삼겹살을 팔겠다고 간판을 거는 작태에 신물이 난다.
얼마 전 수년 만에 들린 종로 3가에서 저녁을 할만한 식당을 검색했다. 아구찜을 먹자니 콩나물찜을 줄 게 뻔했고, 닭갈비를 먹자니 2명이 3인분을 시켜도 헐렁한 그걸 먹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량이 의심되는 돼지고기를 대안이 없다고 거기서까지 먹는 것도 싫었다. 검색 끝에 연예인이 다녀갔다는 낙지집을 찾았지만 위생은 눈 감고 먹으라는 리뷰에 즉시 속이 메스꺼웠다. 거리엔 식당이 넘치도록 많았지만, 오랜만에 누군가와 좋은 시간을 보낼만한 식당은 역시나 찾기 힘들었다. 바로 그때 찾은 것이 쇠고집,이었다. ‘소고기를 파는 인사동 마당이 있는 한옥집’이라는 설명이 마음에 들었다. 1인분에 2만원 초반인 가격 또한 매력적이었다. 가격 때문에 한우가 아닐 거라는 건 금세 알 수 있었는데, 어떻게 주길래 월세가 비싼 인사동에서 2만원 초반인지도 궁금했다.
테이블이 작은 게 옥에티 였지만 너스레로 던진 “상이 작아서 오히려 잔칫상처럼 푸짐해 보이네요”도 사실이었다. 무엇보다 상이 작아도 괜찮았던 건, 고기접시가 따로 필요 없었다. 고기를 구워서 내주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상은 클 필요가 없었다. 카운터 뒤에서 주문한 고기만 구워주는 직원이 별도로 있었기 때문에, 모든 손님의 테이블은 고기 굽는 연기도 없었고, 고기 굽느라 대화가 단절되는 단점도 없었다. 참, 좋은 아이디어였다. 손님은 편하게 먹고, 식당은 매출이 늘어 좋았다. 구워진 고기를 먹으니 2명은 3~4인분, 3명도 4~5인분을 먹을 것이다. 고기가 식지 말라고 켜둔 불판 가운데에선 우거지된장국이 줄어들 틈이 없다. 얼마든지 무한리필로 채워주는 탓이다. 서로가 수저를 담가야 하는 불편함만 감수한다면, 메뉴판의 권유대로 우거지국에 밥을 말면 술밥은 공짜인 셈이다. 삼겹살도 팔았지만, 삼겹살 1인분에 18,000원을 받았지만, 손님 대부분은 미국산 토시살과 호주산 갈비살을 주문했다. 삼겹살을 굳이 여기서까지 먹을 이유가 없다는 듯이 열에 아홉은 수입산 고기를 주문했고, 나 또한, 이었다.
앞길이건 뒷길이건 고기집이라면 의레 삼겹살을 팔았다. 그걸 차별화하기 위해서 숙성을 거론하고, 두께며 칼집을 몇 번 넣었다는 걸 강조했다. 하지만, 손님의 니즈는 ‘숙성이고 나발이고’다. 그게 뭐가 그리 중요한 선택조건일까? 손님은 그런 건 별로 관심이 없다. 1인분이 200g인지, 그 정량대로 눈저울도 믿음직한지, 고기찬으로 손 가는 것이 있는지, 된장찌개는 달라는 대로 주는지가 선택에 기준이 될 뿐이다. 하지만 손님의 언어와 주인의 언어가 늘 불협화음이듯이 삼겹살을 파는 식당은 숙성과 고기의 품질을 강조하고, 손님은 정량과 고기찬에 관심이 있으니 고기집은 사실 어려운 업종이다. 그 어려움을 모르고 열에 반은 고기집창업을 시도하니 딱할 뿐이다.
삼겹살은 그래서 레드오션이고, 양념소갈비살집은 그래서 블루오션이다. 어디서 싸워야 이길 수 있을까? 먹자골목에서만도 10개나 되는 삼겹살집에서 3등안에 드는 게 쉬울까, 동네에 눈 씻고 찾아도 한두개 밖에 없는 양념소갈비살집에서 3등을 하는게 쉬울까? 어떤 싸움을 하려고 뛰어드는 게 재산을 잃지 않는 현명한 일일까 나는 정말 묻고 싶다.
김치 때문에 일부러 찾아가는 칼국수집은 블루오션이다. 콩나물찜을 아구찜이라고 파는 건 레드오션이다. 고기 양이 적어서 모둠사리를 시켜야 하는 닭갈비집도 레드오션이다. 아주 새빨간 레드오션이다. 그 반대의 시장을 내가 만들어야 한다. 판을 내가 깔아야 한다. 남들의 판에 끼어들려고 하지 말고, 내가 내 식대로 판을 깔아야 한다. 아구찜은 콩나물찜이 아닙니다,는 블루오션이다. 2인분 같은 1인분이라 사리를 팔지 않는 닭갈비도 블루오션이다. 회가 많은 회덮밥도 블루오션이다. 둘이서 배 두드리고 먹는 낙지볶음도 블루오션이다. 이처럼 블루오션은 내가 판을 새로 깔면 얼마든지 만들어진다. 깍두기 때문에 손님이 줄 서는 설렁탕집이 블루오션이지, 우리동네 유일한 설렁탕이라서 블루오션이 아니다. 동네에 한 개 뿐이어도 만석을 채우지 못하면 레드오션일 뿐이다.
아이템을 돌려막느라 그랬던 건 아니다. 나는 그저 대중적인 아이템을 비틀어서 블루오션의 판을 깔아주었다. 세상에 없는 메뉴를 발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미 거리의 레드오션이었던 흔한 메뉴를 손님의 입장에서 만족 되게끔 파란색 칠을 했을 뿐이다. 감자뼈가 싸니까(1kg에 2천원대) 감자탕을 시키면 뼈 한 대접은 그냥 줘도 된다고 이해시킨 후 성공시켰고, 3천원이면 만들 수 있는 또띠아피자를 한식 반찬으로 주어 블루오션판을 만들었다. 우동에 올릴 튀김이 다 고만고만했길래 닭다리를 튀겨 크게 올렸더니 우동 하나 온리원인데도 팔렸다. 짬뽕은 팔지 않는 돌짜장집의 히트도, 자장면집에서 짬뽕을 파는 건 찐한 레드오션이라서였다. 진짜 짬뽕을 팔지 않는다는 걸, 손님들이 신기해했다. 신선함이 신기함으로 파란 시장이 되었다.
그건 맞다. 그렇다고 없는 걸 찾아내야만 귀해지는 게 아니다. 있는 걸, 흔한 걸 다른 관점에서 풀면 얼마든지 나만 가진 그런 매력이 만들어진다. 그걸 해내야 한다. 앞접시의 크기는 꼭 15센티여야 할까? 25센티가 넘으면 앞접시가 아닐까? 중간 크기의 양푼을 앞접시로 준다면 부대찌개, 동태탕을 먹는데 딱이지 않을까? 소주잔, 맥주잔은 주류회사에서 주는 잔만 써야 하나? 주류회사 앞치마를 세탁도 하지 않고 돌려쓰라는 식당이 바로 레드오션이다. 레드오션은 물고기머리는 꼭 왼쪽으로 그리는 굳어진 주인의 마음에 있다. 메뉴의 문제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