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면허에 도전한 것은 26살이었다. 고려당이라는 곳을 다녔다. 참 좋은 회사였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회사를 다닌다는 것은 지방 전문대를 나온 나에겐 뿌듯한 일이었다. 빵집 가맹점 개설을 상담하고 자리물색부터 오픈까지 책임지는 영업부서였는데 나는 수도권 3팀이었다. 인천을 포함해 경기 서남부를 담당했다. 팀당 3명이 한 조였다. 매일처럼 가게를 구하고 상담을 하러 다니는 것이 일이었다. 그때 나는 운전을 할 줄 몰라서 팀장이 독박으로 운전하는 팀은 우리뿐 이었다. 그러나 권팀장님은 개의치 않았다. 본인 스스로가 운전하는 것을 즐겼고, 운전 외에는 내가 다른 팀 직원보다 일을 잘 한 탓이었다. 오죽하면 회사에서 만든 브로슈어보다 내가 셀프로 만든 파일첩을 영업이사님이 보시곤, 전 영업사원 모두 똑같이 파일북을 만들어 다니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2014년 첫 차는 쏘울,이었다. 흔하지 않아서 덥썩 샀다.
입사하고 발령을 받은 사무실은 종로였다. 종로서적 바로 옆에 고려당 건물이 있었는데 거기 옥상이었다. 정말 좋은 분위기였다. 당시 핫한 종로에서는 퇴근하면 갈 곳이 넘쳤다. 싸고 좋은 술집과 식당들이 즐비했다. 우리는 매일 회식을 했고, 우리는 매일 코가 삐뚤어져라 마셔댔다. 그러다 사무실을 옮겼는데 선릉역 바로 앞이었다. 신식 건물이었고, 꽤 넓은 한 층을 통으로 쓰면서 우리는 대기업이 부럽지 않았다. 전국 영업을 커버하는 영업이사님이 매일 상주하는 강남 사무실은 고려당의 꽃이었다.
그러다 청천벽력같은 일이 벌어졌다. 회사가 구조조정으로 사람을 내보내는 대신에 사무실을 성남 본사로 통합하라는 지시였다. 당시 뚝섬에 살던 나는 성남까지 출퇴근을 하려면 거리가 멀었다. 대학교 시험도 선생님이 권한 숭실대가 멀다고 건대를 봤다가 떨어진 나였기에 성남본사는 가기가 싫었다. 그래서 이사님에게 퇴사를 말하자 유능한? 나를 놓치기 싫었던 이사님이 파격 제안을 하셨다. 일개 사원인 나에게 회사차(당시 티코)를 내주겠다는 거였다. 당연히 기름값도 부담하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면허시험에 도전을 했다. 필기를 한 번에 합격했는데 실기가 문제였다. 실기를 준비해야 했는데 엄마가 말렸다. 어려서부터 크고 작은 교통사고를 너무 많이 겪은 나에게 엄마는 운전을 멀리하라고 신신당부 했었다. 그때는 엄마가 너무 강했다. 아빠도 면허를 따지 않고 살 정도로 우리집은 운전은 멀리해야 한다는 그런 신념?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면허를 따지 않았고, 차 없이 성남까지 출근도 싫어 사표를 던졌다. 두어달도 안되어 역삼역에 25층 사옥을 가진 회사에 입사를 했으니 면허를 따지 않은 게 그땐 전화위복이었다. 그렇게 나는 면허는 꿈도 꾸지 않고 살아왔다.
2017년 / 2020년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차 없는 삶은 너무 불편했다. 하지만 중고차를 살 돈도 없는 가난이 이어지면서 운전에 대한 갈증은 그다지,였다. 겨울에 기름값도 부족해 난방도 제대로 못하고 살던 신혼에 차가 가당키나 했을까. 실제 어느 해 겨울 이사한 상가주택은 도시가스가 아니라 기름보일러였는데 줄어드는 기름 눈금을 체크하려고 옥상을 하도 들락거린 탓에 집주인 할머니와 싸운 적도 있었다. 그렇게 30대도 면허를 딸 마음도 없이 십년이 지났다. 다행히 40대가 되면서 살림이 피었고, 나는 무섭다는 아내를 꼬득여 면허를 따게 했다. 면허가 나오기도 전에 차를 샀으니 아내는 무조건 면허를 따야 했고, 도로시험까지 단번에 붙었다. 그게 10년 전이다. 10년 내내 아내는 단 한번의 접촉 사고도 없이 운전을 했고 내 면허에 대한 의지는 그만큼 피어나지 않았다.
어느 날이다. 그냥 50대의 중반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15년 후면 70살이라는 생각을 하니 덜컥 서러웠다. 그 나이에 만일 아내가 아프면 어떻게 병원엘 데려갈까 하는 걱정이 기습했다. 엄마가 암으로 크게 아팠을 때, 택시를 잡기 위해 길거리에서 발을 종종거리던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갑자기 복잡해졌다. 그게 속마음이었다면, 겉으로는 새벽에 바다가 보고 싶을 때 자는 아내를 깨우지 않고 훌쩍 떠나보자는 욕심으로 면허를 도전하겠노라 했다.
2023년에도 볼보
야외가 아닌 실내연습장에서의 교육을 선택한 것은 실수였다.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기능시험의 T자를 도저히 합격할 수 없었다. 두 번을 떨어지고 원서를 찢었다. 50만원 떡사먹은 셈을 치기로 했다. 그게 봄이었다. 그러다 늦가을 15년 후면 70살이라는 생각이 또한번 나를 꼬집기 시작했다. 그래서 야외의 운전학원을 등록했고 보름만에 면허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따고나니 이렇게 쉬운 시험이 있을까 싶었다.
나는 남과 늘 다르게 생각한다.
11월 1일 면허증을 찾자마자 연수를 받았고, 5시간의 연수 후 아내를 태우고 거제도까지 달렸다. 그렇게 연수 시작 5일 만에 1,000km를 운전했다. 그리고 지금도 매일 50km를 빠짐없이 차를 탄다. 아내는 옆에서 연신 잔소리를 쏟아내는데 이제는 감사,보다는 쌍방 말대꾸를 할 만큼 실력이 늘었다. 26살 고려당에서 땄어야 할 면허를 30년이 지나서 딴 지금이 어쩌면 더 행복한 듯도 싶다. 이 나이에 운전의 맛을 알게 되어 평화로운 일상이 그저 신난 것도 30년 만에 면허를 땄기 때문이니 말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르다는 말은 역시나 세상 진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