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몰랐던 거주지의 조건
“동구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들어가 살면 잘 나오지 않게 돼요. 사모님이 힘드실 거예요.“
남구 부동산 사장님의 말씀이었다. 말의 뉘앙스에 호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근처에 도서관과 성당과 재래시장만 있으면 돼요.”
남편의 대답에 더는 대화가 오고가지 않았다.
업무가 바쁜 남편은 내가 좋은 곳으로 계약하자며 자리를 뜨고 혼자 남아 추천받은 몇 군데의 집을 보았지만 마음이 쉽사리 정해지지 않았다. 복잡한 마음에 다시 동구쪽을 향했다.
그동안 살아왔던 곳을 떠올려 보니 늘 성당과 도서관과 재래시장이 근처에 있었다. 간혹 재래시장은 버스로 몇 정거장 떨어져 있기는 했어도, 그런 환경이 늘 당연하다는 듯 있었다. 남편이 나를 위해 그런 곳을 후보지로 골랐는지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재래시장은 남편도 간혹 따라 나서는 곳이지만 성당과 도서관은 오로지 나만을 위한 곳이다.
남편이 처음 제안한 동구쪽 아파트도 과연 집 사이로 도서관과 성당이 있었다.
성당 마당에서 기도를 하고 이곳에서 미사를 드리는 상상을 했다.
도서관에 들어가 서가 사이를 둘러보았다. 서울에서 예약 대기하며 읽던 책들이 그냥 꽂혀 있었다. 구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던 책도 있었다. 서울서 사용하던 도서관 카드로 책을 대출하며 역시 동구네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