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파이터

나는, 김민지

by 에이포

몸과 마음이 괴로울 때 SNS를 하는 건 자해라는 얘기를 들었다. 작년에 집에만 오면 핸드폰으로 온갖 SNS만 하다 잠에 드는 날을 반복하곤 했다. 나를 못살게 굴어도 그렇게 굴 순 없을 정도로 핸드폰이 없으면 잠이 안 올 지경이었다. 가장 자극적인 컨텐츠는 푸드파이터 영상이었다. 100개가 넘는 핫도그를 단 1분도 안 되어 입에 쑤셔서 넣는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만족감이 느껴졌다. 정작 나는 심하면 일주일에 두세 번은 길 가다 공중화장실에서 변기를 붙잡고 일부러 게워냈다. 기념일에도 비싸고 실한 양고기를 거하게 먹고 문을 나서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양 보다 항상 과하고 빠르게 먹어댔기에 이어 뒤따르는 참사는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많이, 빨리 먹어서 푸드파이터와 닮았다고 하는 건 아니다. 그들처럼 모든 걸 단숨에 쑤셔서 넣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작년의 이야기를 풀어야 할 듯싶다. 봄학기에 마케팅 학회의 임원이 되어 정기 세션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역할을 맡았고, 코로나로 학회원 간 유대감이 낮아진 것 같아 소모임을 제안해 운영했었다. 감당할 수 있었다.


푸드파이터는 첫 번째 피자 조각을 입에 쑤셔서 넣자마자 두 번째 조각을 반으로 포개고 물에 약간 적신다. 나도 앞선 덩어리를 입에 잔뜩 부여 넣으면서도 대외활동과 동아리를 홍보하는 사이트에 들어가 책갈피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찾아가 통계 교육을 하는 봉사팀에 소속되어 수업 준비도 하고 팀을 이끌었다. 또, 치킨 전문 브랜드 SNS의 컨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했다. 또, 또, 또...


학교 선배님의 제안으로 비영리 스타트업 지원 사업에 지원서를 냈다. 청년과 시니어를 1:1로 연결해 스마트폰을 알려주는 사업이었는데, 10:1의 경쟁률을 뚫고 어마어마한 지원금을 받아 돈 걱정 없이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대표할 양반은 안 되는 사람인데 어쩌다 보니 언론 인터뷰도 하고 홍보 영상을 촬영하고 있었다. 4명이 사업 계획, 영업, 프로그램 운영, 청년 봉사자 관리, SNS 컨텐츠 발행 등 끝없이 나열되는 업무를 맡았다. 지원서를 낼 당시 아무것도 없었다. 청년 봉사자도 없었고, 교육받을 어르신도 없었다. 그들을 모을 포스터도 없었다. 단 4달 만에 50건이 넘는 교육이 진행되기까지 마음은 졸여질 대로 조려졌다. 그 와중에 학교에서 지원금을 받아 청년 단체와 시니어 단체를 연결해 서로 재능을 나누는 프로그램도 진행했었다. 위는 가득 차 곧 찢어질 기세였다.


모든 소용돌이가 끝나고 올해 1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원래 토익과 컴활 공부하려고 했으나 하기가 싫었다. 종일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다가 약속이 있으면 나갔다 들어오는 게 일과였다. 아마 그때가 모든 걸 소화하고 있는 타이밍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디톡스를 마치고 나니 더 이상 무한리필집에 가지도, 양이 많고 싸다며 홍보하는 가게에 방문하지 않는다. 한 끼에 적절한 양의 식사를 즐기는 것이 좋다. 이제는 나의 식사량을 제대로 찾았나 싶다.


하지만 며칠 전 인턴 단톡방에 광고 공모전을 같이 구한다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저도요!!”라고 답했다. 황금 같은 연휴에 회의했는데, 또다시 게워낼 것만 같았다. 이전 같았으면 소화제를 먹거나 속이나 시원하여지라고 일부러 화장실에 갔을 것이다.


하지만 어젯밤 나는 이렇게 보냈다. “죄송하지만 함께하기 힘듭니다.”


음식을 턱 끝까지 해치우고 울먹이는 나는 이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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