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은이 오규헌에게
너를 인터뷰하게 되었을 때, 나는 가장 먼저 우리의 첫 만남이 기억나더라. J관의 어느 강의실에서 책상 두 개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있었지. 나는 너무 긴장한 상태였어서 너와 민석이의 질문에 두서 없는 대답만 한 것 같은데, 처음부터 끝까지 너는 나의 대답에 호기심을 잃지 않았지. 아직도 너의 다정한 눈빛을 기억해.
그리고 다음으로 우리가 같은 부원으로 만난 그 자리를 떠올리게 되었어. 너는 K관 강의실 교탁 앞에 앉아 컴퓨터를 만지작거리고 있었고, 나는 첫만남이라는 설레임과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지. 우리가 처음 글을 쓰고 소개하는 자리에서, 너는 너를 ‘구멍난 사람’이라고 소개했었지. 너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끄덕 끄덕 고개를 움직이고 있었어. 나도 어쩌면 구멍난 사람일지도.
나는 누군가를 알아가기 위해 시간이 필요해. 한 번쯤은 뚫어지게 쳐다보고, 그 사람의 행동과 감정을 기억해. 솔직히 무슨 대화를 했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을 때가 더 많아.
그래서 내가 너를 보고 있노라면, 무언가 다른 공기가 있더라. 너를 감싸고 있는 그 공기가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 안에서 너는 심취해 있었어. 나는 그걸 낭만이라고 표현하려고 해. 나는 너의 낭만이 궁금해. 내가 그것을 이해하게 된다면, 무례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너를 잘 알게 될 것 같아.
한 편의 글을 위해 며칠은 골머리 앓으며 글만 쓰는 너에게. 나의 글솜씨가 마음에 내킬지 모르겠음에도, 다양한 견해가 재밌는 거라며 듣고 싶어 했던 너를 떠올리며. 한편 나는 너를 알아가고 싶은 마음을 담아, 그리고 내가 보았던 너의 모습을 용기 있게 적어 보낸다.
너는 말을 하는 내내 그리 어려운 말을 하는 것도 아님에도 부산스러웠다. 손을 가만히 두질 못했고, 눈을 이리 저리 굴리며 내가 아닌 공간만 찾아 바라보았다. 표정을 감추는 듯 소매로 가려버린 너의 얼굴. 장난스러운 말과 표정에도 숨길 수 없는 너의 진지함. 너의 바쁜 눈이 멈춰 다른 곳에 시선을 두지 않고 한 곳만 지긋이 바라볼 때가 있었는데, 그건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였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주 부딪히고, 닫히는 문에 몸을 끼워 넣고, 카페의 낮은 천장에 머리가 부딪힐 걱정도 없었다. 넓은 길 한복판을 걸어도 코앞의 장애물도 피하지 못하고 툭 걸리거나, 오토바이가 오던 차가 오던 앞만 보면서 가더라. 왜 자꾸 어디 부딪히는 거냐고 핀잔하는 내게,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대답했다.
너는 너 스스로를 대충 다루는듯 하면서도, 타인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내가 들떠 얘기하면, 너는 길을 걷다가도 멈춰 서서 들어주었다. 길고양이를 지나칠 수 없는 나를 기다려주며, 예전에 너가 살았던 동네 이야기를 풀어주었다. 내가 데려가고 싶었던 카페들을 허탕 치고 슬퍼하는 내게, 자긴 걷는 것을 좋아한다며 가로수에 심긴 나무들이 빨갛게 무르익어 예쁘다고 했었다.
너의 말과 행동에는 무던한 배려가 묻어 있었다. 그리고 이 배려는 너의 글에서도 볼 수 있었다. 누군가는 이걸 눈치라고 할 법해도, 나는 배려라고 정의하고 싶다.
너는 너 자신이 가진 특별함이 있음에도, 다른 이들을 위해 너의 특별함에 물음표를 던지는 사람이더라. 누구나 나의 이기심과 자의식에 의문이 들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대다수인 이 세상에서 너는 홀로 고민하고 있었다. 너의 가치를 새장이라고 표현했으며, 그 새장에서 나오고 싶어 발버둥 치더라. 이런 배려가 너에게서 나올 수 있는 이유. 그건 어쩌면 네 안에 순수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했던 너의 낭만은 순정일지도. 착하고, 순수한 마음에서 묻어나오는 너의 순정을 내가 낭만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내가 다정함에 속아 착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속임을 당할 수 있다며 너털 웃음을 자아내던 너에게, 사실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너의 마음에 그리는 크고 작은 꿈들을 세상에 가지고 나갔을 때, 다시금 너는 배려한답시고 너의 꿈에 물음표를 던지지 않기를. 다른 사람들과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는 배려를 너 자신에게도 주지 않기를. 적어도 너는 너 자신을 새장에 가두지 않고, 그 문을 열고 나와 더 넓고 아름다운 세상을 향하여 큰 날개 짓으로 날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