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인화
“너는 너 나이답지 않게 무기력한 것 같아.”
엄마께서 언젠가 내게 하신 말씀이다. 스물 한 살이 어떤 나이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가 무기력하다는 것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무언가를 열성적으로 한다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요하기에, 게으른 나는 머릿속으로 호오를 구분 짓기만 할 뿐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만의 버킷리스트는 딱히 없다. 그러나 귀찮음 외에도 내가 버킷리스트를 회의적으로 느끼는 다른 이유 여럿이 존재한다. 유행에 편승해 작성하는 것이 과연 나를 행복하게 할 지 의문이 든다. 몇 년 전, 버킷리스트의 열풍은 학교 수업 시간까지 침범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 목록을 작성하게 했다. 그렇게 적은 목록의 내용은 주위 친구들의 것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유럽 배낭 여행 가기, 뭐 그런 것들. 좋아 보이고 사회적으로 선망 되는 것들을 나열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건 중학생 시절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 인터넷에 버킷리스트만 검색해도 ‘버킷리스트 추천 100가지’ 이런 게시물이 수없이 뜬다.
물론 버킷리스트는 거창할 필요 없고 사소한 것도 모두 포함된다고 한다. 좋다. 좋은데, 나는 뭘 이뤄내야 한다는 강박이 일상 생활에 스며드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재즈바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가야만 한다는 하나의 의무가 되는 순간 피곤해진다. 하루의 끝을 메우는 체크 표시에 나의 가벼운 마음을 평가하고 싶지 않다. 어떤 일에 대해 굳이 사전적으로 의미를 단정 짓고 시작하기보다는, 사후적으로 가치를 부여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자신만의 버킷리스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해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단지 내가 인생을 나며 나만의 진정한 버킷리스트를 세운다면, 나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카뮈의 작품에 항상 등장하는 알제리의 해변에 꼭 가보고 싶다거나, 그런 것들. 말하고 보니 나의 버킷리스트가 아예 공백 상태는 아닌 것 같다. 다만 앞으로의 내가 ‘있어 보이는 것’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목록을 채워 나갔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