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다은
# 1.
우리 가족은 내가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되면서 강원도르 이사를 했다. 내가 이사갔던 집은 나무로 된 2층 집이었고 1층 거실에는 큰 벽난로가 있어 겨울이 되면 감자나 고구마를 넣어 구워 먹었다. 뒤뜰에는 호박이 자라고 있었고, 마당에는 손바닥만 한 개구리가 지나다녔다. 겨울이 되면 커다란 늙은 호박을 따다가 엄마한테 가져가면 호박죽을 끓여주셨다. 심심하면 개구리를 잡아 종이컵에 넣어 밀봉하고 2층의 비어있는 방에 숨겨두었는데, 까먹고 있다가 나중에 발견했을 때는 말라있었다. 2층에 있는 아빠의 서재에 창문을 열어놓으면 새들이 들어와 머물다 가기도 했다. 저녁노을이 질 때즈음 내가 아빠의 서재의 창문을 닫아놓으면, 다음날 아침 아빠의 책상 위에는 새가 한 마리씩 죽어있었다. 내가 창문을 닫기 전에 도망치지 못한 새들이 투명한 창문이 유리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힘껏 날갯짓 치다 세게 부딪혀 정신을 잃고, 다시 깨어나 그것이 유리라는 것인지도 모른 채 다시 있는 힘껏 날개 쳐 온몸을 부딪힌다. 초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고전을 치른 새들은 그렇게 아빠의 책상 위에 서늘히 죽어 있었다. 그래서 난 아침마다 2층에 있는 4개의 방을 돌아다니며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는, 어쩌면 간단해 보이고 상쾌해 기분 좋을 일이 두렵기도 했다.
강원도의 초등학교로 전학 간 첫날, 나는 서울에서 왔다는 이유로 인기 쟁이가 되었다. 나에게 관심 갖는 친구들은 내가 서울에서 보았던 친구들과는 달리 조금 꼬질꼬질하고 유행에 뒤떨어진 옷을 입었다. 친구들은 집에 컴퓨터가 없어 싸이월드나 버디버디 아이디도 없었고, 내가 즐겨했던 네이버 동물농장도 같이 할 친구가 없었다. 나도 서울에서 그다지 잘 나갔던 건 아니었는데, (오히려 좀 못났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여기 있는 친구들은 나보다 잘나 보이는 친구들은 없었다. 내가 서울에서 다녔던 초등학교에서는 학급에 자주 관여하는 부모님의 자식은 인기가 없었고, 이쁘장한 얼굴을 가지고 옷을 잘 입으면 인기가 있었다. 보통 그런 친구들은 무리를 지어 몰려다녔고, 싸이월드 방명록에 안부인사가 마를 일이 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셔서 자식들, 특히 맏이인 나에게 신경써줄 시간이 없으셨다. 나는 어렸을적부터 키가 좀 큰 편이었고 체중이 있었던지라, 엄마가 어디선가 구해온 옷들을 입으면 바지가 짧거나 뱃살이 튀어나오기도 했었다. 그러니 나는 학교에서 인기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런 내게 이런 관심과 인기는 마치 가뭄의 단비 같았다.
그러다보니 거짓말이 늘기 시작했다. 나는 하와이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본고향인 서울에서 살게되었는데, 올해 부모님의 일로 강원도에 잠시 이사 왔다고 했다. 나는 서울에 살면서 수유리 밖으로는 나가본 적도 없었는데, 서울의 번화가에 대해서 자랑하듯 이야기했다. 하와이에서 자란 내게 영어를 해보라는 친구들에게 ‘헬로, 마이 네임 이즈 다은 정. 아임 나인 이얼스 올드.’라는 말만 내뱉고 나머지는 얼버무렸다. 하와이는 부모님의 신혼여행지다. 아빠는 무기력하다가도 내가 벽에 걸린 신혼여행지에서 찍은 사진에 대해서 물으면 활기를 찾으셨다. 황홀한 듯 보이는 아빠의 표정으로 나는 가본 적 없었지만 그곳이 지상낙원일 거라 확신했었다.
부모라는 직업은 쉽지 않다. 배 아파 난 자식에게 무엇을 못해주랴.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어린 내가 밖에서 무얼 하고 돌아다니는지 걱정스러우면서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가르치게 하려면 일할 수밖에 없다. 부모님의 관심과 사랑 속에 보호받으며 자라는 것이 나에겐 조금 부족했을지라도, 그래서 그런 애정의 결핍을 채우려 밖에 다니며 거짓말을 해서라도 관심을 구걸하고 다니는 아이가 되었을지라도 나는 부모님을 원망할 수 없다.
# 2.
길을 걷다가 종이 한 장을 주웠다. 나는 이 종이에 뭐라고 적혀있는 건지 소리 내어 읽을 수는 있었지만 무슨 말이 써져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티켓 같은 모습을 띄는 이 종이를 들고 나는 생각했다. ‘이건 하와이를 가는 비행기 표라고 하자!’ 이 티켓 한 장으로 친구들에게 인기를 끌 시나리오를 썼다.
나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난 후, 그러니까 방과 후에는 학교 바로 옆에 있는 피아노 학원으로 향했다. 피아노 학원에는 덩치가 크고 머리모양이 마치 베토벤처럼 뽀글뽀글한 여자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입구를 들어가면 오른쪽 벽면에는 선생님이 항상 앉아계시는 하얀색 피아노 하나가 있었고, 가운데에는 낮고 큰 원형 테이블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오른쪽 벽면에 3개, 입구 바로 앞쪽 벽면에 2개, 총 5개의 개인 피아노 연습실이 있었고, 그 사이로 좁은 통로를 지나면 선생님이 지내는 방이 나왔다. 선생님 방에는 컴퓨터가 한 대, 티브이가 한 대 있었다. 친구들은 피아노 레슨이 끝나도 집에 가지 않았고, 그 방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기 위해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멍하니 티브이 앞에 모여 있었다.
나는 피아노 학원에 들어가자마자 연습할 생각없이 바로 좁은 통로를 지나 컴퓨터와 티비 앞에 모여있는 많은 친구들 앞에서 티켓 한장을 높게 쳐들었다.
“하와이 갈 사람!!!!”
컴퓨터에서 눈을 뗀 친구들이 나에게 관심을 보였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 티켓에 대해 주절주절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건 하와이에 갈 수 있는 티켓이야. 다음 여름 방학에 내가 하와이에 가게 되었는데, 티켓이 남게 되어서 한 명만갈 수 있어. 나랑 같이 갈 사람? 먼저 손 든 사람한테 주지!”
내 말을 끝으로 친구들의 질문 공세가 시작되었다. 날짜는 언제인지, 정말 갈 수 있는지, 가서 무엇을 하는지 등등 여러 가지 질문에 나는 디테일한 부분은 또 얼버무리면서 대답했다. 남자애들은 무력으로 내 티켓을 뺏기도 했는데, 그때 나는 매섭게 소리를 지르고 달려들어 몸싸움을 한 뒤 되찾았다. 그렇게 뺏은 남자애들 중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철원이었다.)
“에이-. 이거 영화 볼 때 쓰는건데, 이게 무슨 비행기표야.”
“무슨 소리야! 이리 줘!”
나는 살면서 영화를 보러 간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2004년에 개봉한 ‘태극기를 휘날리며’라는 영화를 보러 가족들과 함께 용산에 있는 허름한 영화관에 갔었다. 나는 영화에서 보았던 전쟁 장면과 총소리에 엄청난 공포를 느꼈고, 벌벌 떨면서 부모님 팔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기만 했다. 그때 나는 영화 표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 못했다. 그러니 길 가다 주운 티켓이 영화표였던 것을, 심지어 그것은 온전하지 못한 것이었음을 알지 못했다. 직사각형의 영화표는 입장할 때 일부를 떼어갔는데, 그 티켓은 이미 누군가 사용하고 길을 걷다가 흘린 것이었다.
나의 하와이행 티켓을 뺏으려는 남자애들에게는 물어뜯을 듯이 맹렬하게 대적했고,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에게는 자비로운 말투로 티켓을 팔았다. 나는 참 악질이었다. 티켓을 줄 사람을 꼽았다가, 그 친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근데 영숙이는 어제 나한테 컴퓨터 양보 안 했잖아.’ 하면서 무르고, 다시 또 티켓을 줄 사람을 꼽았다가 그 친구가 부모님께 허락을 맡고 오겠다며 할 때, ‘아 그럼 안돼. 지금 당장 수락해야만 얻을 수 있어. 탈락.’ 하면서 물렀다. 그렇게 몇 차례를 주려다가 무르기를 반복하자 친구들은 지쳤던 것 같다. 처음부터 이 티켓이 영화표인 줄 알았던 철원이는 구석에 앉아 팔짱을 끼고 나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쳤다. 친구들은 지쳐 관심을 갖기도 힘들어하는 것 같아, 나는 급하게 엄지를 높이 치켜들며 마지막으로 크게 외쳤다.
“진짜 마지막! 하와이 가고 싶은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높이 치켜든 나의 엄지를 제일 먼저 움켜쥔 친구는 내가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 현미였다. 현미는 지쳐 보이지 않았고, 치아가 보일 정도로 밝게 웃고 있었다. 나는 현미에게 티켓을 줬고, 현미는 엄청 기뻐하다가 선생님의 부름에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갔다. 나는 남아있는 친구들에게 ‘다음 기회를 노려보라고, 빨리 한 사람이 임자’라는 말을 했다. 친구들의 표정은 차갑게 식어갔고, 나에 대한 관심을 무르고 컴퓨터 앞으로 몰려갔다. 다시금 컴퓨터 앞에 몰려드는 아이들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는, 한 건 했다는 듯 허리춤에 양손을 올리고 한 숨을 쉬었다. 휴. 구석에 앉아 나를 보고 있던 철원이도 일어나 컴퓨터로 갔다. 그러다 내 앞을 지나치면서 내게 말했다.
“너 왜 거짓말 해?”
“뭐? 너가 뭘 알아.”
“정다은-.”
때마침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레슨 차례가 다가온 것이다. 나는 선생님이 계시는 피아노 연습실로 들어갔다. 의자에 앉으니 피아노 연습을 하지 않았던 게 생각났다. 선생님이 아직 들어오기 전에 나는 서둘러 피아노 연습을 했다. 그리고 몇 분이 지나 선생님이 피아노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 옆에 앉으시던 선생님의 표정은 내가 이미 연습을 안 한 것을 알고 있었는지 화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선생님의 표정을 살피느라 뒤늦게 발견한, 한순간에 나를 긴장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내가 현미에게 준 하와이행 비행기 티켓이 선생님의 손에 있었다. 나는 순간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긴, 비행기표를 그냥 주기에는 그 값이 좀 비싸긴 하지. 먼저 엄마 아빠한테 허락 받았냐고 물어보겠지?’.
화가 나 보였던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다은. 너 왜 현미한테 거짓말했어?”
“…”
“이거 영화표잖아. 하와이 가는 비행기 표가 아니라.”
“아아. 키키키키.”
“레슨 끝나고 현미한테 가서 사과해.”
”히히히히히히. 네에~”
“무슨 영화표 가지고 거짓말을 하니. 이게 무슨 비행기표야.”
말을 마치친 선생님은 방금 전 구석에서 팔짱을 끼고 헛웃음을 쳤던 철원이처럼 나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마치 장난이었다는 듯이 웃었지만, 속내는 달랐다. 살면서 처음으로 느낀 부끄러움과 수치심이었다. 수업시간에 바지에 똥오줌을 지려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나는 어른인 선생님도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거짓말이 들통나고 부끄러움에 못 이겨 마치 장난이었다는 듯 실실 웃으며 나를 방어했다. 그리고 입가에 베실베실 웃음을 잃지 않으며 레슨을 받았다. 레슨이 끝나고 연습실에 혼자 남아 악보를 보는데, 손가락이 굴러가지 않았다. 눈물도 나오지 않는 수치감으로 시간을 보내다 연습실을 나왔는데, 마주친 현미는 나를 보며 수줍은 듯이 웃고 있었다. 나의 사과를 바라는 듯한 순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술이 나서 사과하지 않았다.
티켓을 높이 쳐들었던 나는, 하와이행 티켓 한 장을 매개로 삼아 나에게 관심 가져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가 아닌 티켓 한 장에 관심을 가졌다. 어린아이의 나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라, 그러면 이 아이를 누가 돌봐줄 수 있었을까? 시간을 돌려 다시 돌아가 그 순간의 나로 돌아간다면 내가 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 티켓을 치워버리는 것 정도. 그렇게되면 언젠가 이 아이가 살다가 느껴야 할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조금이라도 미룰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선생님은, 선생님은 나를 타이를 수 없었을까. 차근차근, 이 종이가 사실은 하와이행 티켓이 아니라 누군가 쓰고 버린 영화표였다고 설명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 3
우리 집 바로 옆에는 마녀의 집이 있었다. 마녀의 집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나다. 왜냐하면, 그 옆 집에 살았던 친구는 학교에서 나 말곤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가려면 논두렁을 올라 그 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옆집을 지나쳐야만 했다. 나는 마녀의 집의 대문은 열린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푸른빛이 도는 녹색의 대문은 장미로 우거져 있었고, 양 옆으로 울타리와 큰 나무, 그리고 화려한 꽃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여름에는 꽃이 활짝 피어 신비로움을 더했고, 겨울에는 말라비틀어진 잎과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분위기를 스산하게 만들었다.
여름 무렵이었다. 나는 현미의 집에 가기 위해 마녀의 집을 지나쳐야 했다. 마녀의 집의 대분은 분홍빛의 빨간 장미가 엉켜 있었다.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했다. 그 집의 대문이 열려있었다. 활짝 열린 것은 아니었는데, 살짝 그 집 안이 보일 듯 말 듯 하게 열려있었다. 평소에 이 집이 마녀의 집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냥 ‘와 예쁜 집이네.’하고 지나갔을 법했겠지만, 나는 심란했다.
나는 살금살금 그 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 안에서 누군가 나오는 낌새라도 느껴진다면, 혹은 작은 소리라도 들린다면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뛸 작정이었다. 내가 조금씩 문 앞으로 다가갔을 때, 나는 저 문 틈새로 내 눈을 갖다 대어 마녀의 집을 확인할 셈이었다. 내 마음에는 두려움도 가득 있었지만, 마녀의 집을 내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기대와 희열이 가득했다. 여름날의 철원. 그곳은 나무 한 그루 없이 논으로 가득한 곳. 온몸을 서늘하게 만드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어 이미 땀이 날 만큼 후덥지근했지만, 내 발걸음이 마녀의 집과 가까워질수록 서늘한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였다, 대문이 열렸다. 대문은 곧 크게 열리더니 그 속에서 강아지 떼가 쏟아져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강아지들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성인 어른의 손으로 한 손에 가득 잡히는 정도의 작은 강아지 었다. 열댓 마리가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동시에, 나는 뛰었다. 숨도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뛰다가 잠시 뒤를 돌아봤을 때, 강아지들은 계속해서 나를 향해서 뛰어오고 있었다. 내가 지금 넘어지거나, 발이라도 헛디뎌 넘어지게 되면 저 열 마리가 넘는 강아지들에게 물어뜯기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내가 뛰기를 멈췄던 것은 어느 순간 논두렁을 벗어나 도로변을 열심히 달리다가 내 옆으로 고속버스가 지나갔을 때였다. 고속버스와 함께 달리던 나는 뒤를 돌아보고 숨을 크게 내쉬며 뜀박질을 멈췄다. 허억. 허억. 허억.
마녀의 집은 개장수의 집이었다.
# 4
현미는 내가 기억하기론, 그 시절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사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매번 바뀌었었는데, 조은지는 전학을 갔고, 이소영은 피아노 학원에서 나와 같이 바이올린을 배우던 유일한 친구였는데 꽤나 무뚝뚝했던 친구라 내가 원하는 만큼 더 깊게 친해질 수 없었다. 현미는 구김이 없이 항상 밝았던 친구였다. 나처럼 친구에게 관심 얻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음에도 모든 사람들과 친했고, 누군가의 험담도 하지 않았고, 그냥 항상 밝았던 기억이 있다. 긍정적인 것도 아니고, 순수했던 것도 아닌데, 아, 순진했다. 순진한 친구였다.
현미와 있었던 일 중 기억에 남는 두 가지가 있다.
# 4-1.
첫 번째는 현미의 집에 놀러 갔을 때였다. 현미는 이름에 걸맞게, 농부의 딸이었다. 그래서 현미는 자신의 이름을 싫어해 다른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현미는 나를 현미의 집으로 초대했다. 나는 현미와 논 길을 따라 놀면서 재밌게 따라갔는데, 도착했다는 현미의 말이 장난인 줄 알았다. 현미의 집은 초가집이었다. 허름한 나무 울타리에 철사를 몇 가닥 엮어 대문으로 썼던 현미네 집은 허름한 초가집이었다. 비가 심하게 오면 떠내려갈 것 같아 보였다. 현미는 철사문에 감긴 자물쇠를 풀더니 나를 마당으로 들여보내주었고, 철사장에 갇힌 개들은 날 보고 심하게 짖기 시작했다. 내가 극심한 가난을 경험했던 것은 그때로부터 약 1년 후의 일이었기 때문에, 현미가 살고 있는 이 환경은 처음으로 보았고 또 믿기질 않았다. 나를 마당에 세워두고, 현미는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자기 몸 만한 돼지저금통을 끙끙 대며 들고 온 현미는 내게 해맑게 웃으며 보여줬다.
“이게 우리 집 전재산이야!”
나도 아직은 10살의 어린 나이었고,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세상 물정을 모르기에 그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구별할 능력조차 없었다. 투명한 돼지저금통 안으로 보이는 지폐와 동전들을 보면서 한동안 벙쪄있었던 기억이 있다.
이 마을에서 가장 부자였던 집은 우리 집이었다. 강원도에서의 사업이 번창하면, 마을에 은근한 소문이 퍼졌다. 나도 부잣집 딸래미라는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거의 매일을 금고에서 2만 원가량의 돈을 훔쳤다. 당시 나는 읍내에 새로 생긴 웅변 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학원이 끝나고 학원 아래에 있는 모닝글로리에서 훔친 돈으로 보석함을 샀고, 내가 훔친 돈과 쓰고 남은 돈들을 그곳에 모아두고 있었다.
나는 내가 이제까지 훔친 돈이 이 저금통에 있는 돈보다 많을 것이라 짐작되니, 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그렇지만 현미가 가난하다거나, 불쌍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나는 집에 들어가 저녁을 차리는 엄마를 불렀다.
“엄마.”
“응? 왜?“
”(꾸벅) 감사합니다.“
“응? 얘가 갑자기 왜이래?”
며칠 뒤 내가 집에서 돌아왔을 때 엄마는 회초리를 들어 습관이 된 나의 도벽을 고치려고 하셨다. 회초리는 길고 얇은 나뭇가지였다. 거울 앞에 두었던 보석함을 가져와 열어 내 눈앞에 보여주면서, 다른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셨고 몇 대 맞을 거냐는 말만 하셨다. 나는 울면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빌며 죄송하다고 울었는데, 마음이 약해진 우리 엄마는 내게 입을 수 있는 만큼 바지를 껴입을 수 있게 해 주셨다. 나는 엄마 앞에서 두 세장의 바지를 껴입고 회초리를 맞았는데, 별로 아프지 않았음에도 내가 더 심하게 울었던 이유는 나를 벌하는 엄마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탐내지 않게 되었다. 지금에서야 다시 돌아본다면, 나의 범죄는 결코 나만의 죄가 아님을 엄마의 눈물을 통해 알았던 것이다.
# 4-2.
두 번째는 방과 후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현미는 경환이라는 남자아이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현미와 나는 모이면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그중 하나가 ‘짝사랑하는 남자애’였다. 그날은 나와 현미가 청소 당번이었다. 방과 후 빈교실에 남아 현미는 마른 빗자루로 교실 바닥을 쓸고, 나는 물걸레로 바닥을 설렁설렁 닦고 있었다. 그때 교실에는 나와 현미 말고도 한 남자애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경환이와 가장 친하게 지냈던 민수였다. 현미는 들뜬 목소리로 마치 민수에게 들으라는 듯이 자신이 경환이를 좋아하는 것을 나에게 이야기했다. 그 얘기를 듣던 민수가 현미를 쳐다보았다.
“헐 김현미 오경환 좋아함?”
“어어? 아니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
“오경환 정다은 좋아하는데?”
“뭐?”
그날 민수의 한마디로 현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나는 민수의 말을 듣고 당황스러웠지만, 누군가 나를 이성적으로 좋아하고 있다는 말이 설레기도 했다. 나는 현미를 어떻게든 달래 보려 해도, 현미의 울음은 멈추지 않았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 현미는 무릎을 털고 일어났는데, 청소하고 있던 빗자루를 정리하고 집으로 가버렸다. 나도 청소하던 것을 정리하고, 출석부에 달린 열쇠로 반을 잠그고, 피아노 학원으로 갔다.
다음날이 되었다. 내가 학교에 등교하면 반갑게 인사해주었던 현미는 없었다. 순진했던 현미는 나를 피하는 게 티가 났고, 내 험담을 하는 것을 숨길 줄 몰랐다. 나는 다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딱히 내 잘못도 없는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일은 묵묵히 오늘 하루를 잘 보내는 것뿐이었다. 이 생활은 나에게 전혀 부담이 되거나, 스트레스가 되지 않았다. 내가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날이 지날수록 나는 반에서 거짓말쟁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현미가 내 곁을 떠난 이후로 나는 딱히 거짓말을 하려 하지 않았고, 거짓말을 칠 수도 없었다. (거짓말을 칠 수 있는 친구들이 주변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에 내가 거짓말을 하고 다녔던 것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직 내가 후회하는 게 뭔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체육시간이 제일 외로웠다. 체육시간에는 주로 줄넘기를 했었는데, 선생님은 자유시간을 더 많이 주었고 친구들은 한결같이 피구를 했다. 나는 피구를 잘하지도 않았다. 피구를 하면 정신없이 달리면서 피하기만 하거나, 상대편 라인에 가까이가 나를 죽여달라고 팔을 내뻗는 아이였다. 그런데 현미가 울었던 그날 이후, 체육시간에 피구를 하면 항상 나는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다. 친구들은 나를 죽이진 않았지만, 닿을 듯한 거리감으로 공을 던지고, 내가 쉴 틈 없이 패스를 했다. 어느 날은 이런 왕따 피구를 하다가 공을 맞았는데, 그렇게 서러웠었다. 맞은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는데, 체육선생님이 날 품에 안아 달래주었다. 참 안타깝게도, 다음날 나는 체육 선생님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 4-3.
어느 날부턴가 자꾸 물건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던 이유는, 물건이 사라지면 나는 다시 살 수 있었다. 보석함에 모아둔 돈이 꽤 있었기 때문에 실내화 한 짝이 사라져도 다시 사면 그만이었다.
나는 엄마가 사준 보물찾기 시리즈 만화를 즐겨보았다. 엄마가 사준 책을 학교에 들고 가 자주 읽었다. 표지의 앞 장에는 항상 내 이름 석자를 크게 써넣었다. 그런데 만화책이 사라진 것이다. 엄마는 매일 내가 어떤 것을 학교에 들고 가는지, 그래서 그것을 제대로 잘 가져오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만화책이 사라진 것도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 하지만, 내 자리의 두 자리 앞에 앉아있던 민수가 자꾸 신경 쓰였다. 나의 사라진 보물찾기 만화책을 민수가 읽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민수는 저걸 살 돈이 없을 텐데, 저걸 어떻게 읽고 있을까’ 신경이 쓰였다. 현미네 집의 전재산을 두 눈으로 확인했던 나는 이 마을에서 내가 제일 부자임을 확신했던 계기가 되었고, 다른 친구들 또한 나만큼 누리면서 살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일부러 민수 자리 주변을 두세 번 지나다니면서 쳐다보다가, 책을 읽는 민수에게 말을 걸었다.
“야, 너 그거 너꺼 맞아?”
“어? 내꺼야.”
“야, 그거 너거 맞냐고!”
“내거 맞다니까?”
추궁하는 듯한 나의 날 선 목소리에 교실이 조용해졌다. 그때 나는 조금 불안해 보이는 민수의 표정을 읽었다. 그러다 민수가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 나는 민수 책상에서 만화책을 찾아 꺼내 표지의 앞 장을 확인했다.
정 다 은
양 민수
내 이름 위에 볼펜으로 두어 번 긋고, 그 밑에는 자신의 이름 석자 ‘양민수’를 적어두었다. 나는 기가 찼다. 이렇게도 치밀하지 못하게, 이렇게도 멍청하게 거짓말하다니. 나는 민수가 한심했다. 이건 누가 봐도 민수가 나의 책을 훔친 것임을 알 수 있다. 불안한 눈빛부터 감출 수 없었던 민수가 거짓말에 소질이 없어 보였다.
나는 생각보다 대담했다. 민수를 제대로 망신 줄 생각이었다. 자율시간에는 책을 읽었는데, 정숙한 시간이었다. 주로 그 시간에는 질문이 있는 친구들이 맨 앞에 계시는 선생님에게 찾아가 조용히 물어보는 시간이다. 나는 몸을 들썩들썩하며 두 자리 앞의 민수가 내 만화책을 읽고 있는 것을 봤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민수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리고 소리쳤다.
“야! 이거 내거 맞잖아!”
“아니라고..”
“야! (만화책을 뺏어 표지 앞 장을 보이며) 이거 내거 맞잖아! 내 이름 여기 써져 있잖아! 내 이름에 줄 긋고 니 이름적고 너거라고 하는거잖아! 이거 내거니까 돌려줘!!”
내가 민수에게 소리를 지르자마자 선생님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상황을 보고있었다. 곤란하다는 듯 지켜보던 선생님은 민수가 아닌 나에게 다가왔다.
“다은아. 자리로 돌아가.”
“근데 이거 제 거에요!”
“아니야. 이건 민수거야.”
“여기에 제 이름이 적혀 있는”
“자리로 돌아가지 우선, 응?”
도둑놈은 양민수인데, 내가 이상한 아이가 되어있었다. 민수를 꾸짖고, 다은이에게 책을 돌려달라고 할 것 같았던 선생님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친구들은 모두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이 나는 어떤 시선인지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책을 돌려받지 못했다. 그리고 학교가 마치고, 선생님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아- 다은이 어머님 맞으시죠? 네에. 아이, 아닙니다. 네네. 그럼요. 다은이 잘 지내고 있죠. 네에. 아 다름이 아니라요, 다은이가 하와이에서 와서 그런지, 네? 아. 아아. 아… 네… ”
관심이 고팠던 내가 그 당시 할 수 있었던 것은 거짓말이었다. 그 거짓말의 말로는 내가 진정 원했던 관심과 영원한 사랑을 받을 수 없었다. 누구도 나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한 교실의 중재자였던 선생님마저도 거짓말쟁이의 말보다 도둑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진실성이나 믿음을 논하기 이전에, 먼저 이 상황을 진정시키고 해결해야 했던 선생님의 선택은 한 때는 거짓말쟁이였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 누구보다 정의롭기를 바라는 나를 제자리에 앉히는 것이었다.
물건이 사라지는 것도, 말 같지도 않은 소문이 퍼지는 것도 그 선생이 알았던, 몰랐던 그 상황 자체를 없었던 일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조건 아이의 편이 되어주는 것일까? 그 시작은 가정에서부터 오는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우리 부모님을 탓할 생각도 없고, 원망할 수도 없다.
# 5.
나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 내 친구들은 같은 반이 아니었어서 수업시간이 끝나야만 만날 수 있었다. 학교는 2층 건물이었고, 나무로 만들어진 학교였다. 2층에 있었던 장미반에서 나와 학교 건물 중앙에 있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한 층 내려가면, 흙바닥이었던 운동장을 지나 교문으로 갈 수 있는 중앙 문이 하나 있었고, 그 반대편으로는 학교 뒤편으로 갈 수 있는 중앙 문이 하나 더 있었다. 학교 뒤편에는 작은 공터가 있었는데, 바로 뒤에 산을 두고 있어 관리하지 않은 잡초들이 무성하게 나 있었다. 봄과 여름에는 작은 들꽃이 피고 푸른 잔디가 있었는데, 겨울이 되면 말라버린 잡초들 위로 흰 눈이 수북하게 쌓여 녹을 생각이 없었다. 나와 친구들은 학교 뒤, 공터에서 항상 모여 놀았다.
엘릭스는 파란색을 띤 정령이었다. 내가 엘릭스를 부르면 이 세상에서는 반딧불이라고 부르는 곤충이 내는 작은 불빛을 내며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나도 엘릭스를 따라 함께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았다. 제자리를 돌면서 느끼는 어지러움도 왠지모르게 좋은 느낌이 들었다. 파냐는 초록색을 띈 정령이었는데, 항상 나와 대화하던 친구였다. 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나의 아픈 일들을 얘기하면 항상 위로해 주었다. 모로코는 분홍색을 띤 정령이었는데, 나는 모로코가 예뻐서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쉬는 시간에, 점심시간에, 방과 후에 학교 뒤의 공터에서 엘릭스, 파냐, 모로코와 재밌게 놀고 있을 때면 가끔 같은 반 친구들이 2층 창문 너머로 나를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양치기 소년은 ‘늑대가 나타났다’고 마을에 거짓말을 하고 소란을 일으켰다. 양치기 소년의 거듭된 거짓말로, 정작늑대가 마을에 나타나 양 떼가 위험한 날에는 아무도 소년의 말을 믿지 않았고 도와주지 않았다. 결국 양치기 소년의 양 떼는 늑대에게 모두 잡아먹혔고, 양치기 소년과 그 가족은 생계에 위협을 받았다.
나는 강원도의 한적하고 구석진 그 시골 마을에서 자랐던 순진한 아이들을 교란시켰다. 나의 거듭된 거짓말이 크고, 작음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아무도 나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고, 주변인들은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나에게 하나 남은 그 순진한 친구, 나의 여러 가지 거짓말을 진짜라고 믿어(속아) 함께 다니며 즐겁게 웃었던 그 친구마저도 잃었다. 나의 진실과 정의를 알아줄 어른마저도 내 평소의 행실 앞에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제정신이 나가버린 것은 아니었으나, 나를 향한 사랑을 찾아 판타지 같은 나만의 세상을 그려내었다. 그리고 나는 시간이 지나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 6.
한 해가 지나며 더 멀어진, 17년이 지나버린 그때를 더듬어가며 양치기 소년 같았던 나의 모습을 돌아본다.
거짓말을 함으로써 나를 부풀리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것이고, 나는 나의 모양 그 자체로도 사랑받을만한 아이였으며, 너의 거짓말은 네가 아닌 너의 거짓된 모습에 관심을 갖게 하니 설령 누군가 너를 좋아했다고 할지라도 진정 너를 향한 사랑이었을지. 이것들을 의논하기에는 다은이는 너무 어렸으니,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나는 당장에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너무나도 어렸기에 후회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부끄러움과 수치심의 느낌을 알았을지언정, 혼자가 되는 것에 부끄러움이 없었던 것. 마지막으로는 배우지 않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으나, 아직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아 내가 외로움의 늪에 빠져 괴로워하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