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은 것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소설가의 일(김연수)"을 읽다 보니 쓰고 싶은 글의 '모양(?)'이 떠올랐고, 일주일 간 휴가여서 아이와 (물론 아내도 함께) 여행도 다녀왔으며, 회사야 늘 신나는(!) 곳이니 쓸 말이 차고 넘쳤다. 그러다 고민이 시작되었다. 우선 무엇부터 써야 할지 결정할 수 없었다. 게다가 새로운 글 '모양'은 머릿속에서는 쓰기 쉽고 스타일도 잘 나와서 매우 만족스러웠는데(대개 머릿속에서는 그렇지 않은가), 현실에서 구현하기는 녹록지 않았다. 그리고 (참 우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 그게 참 그렇기도 한데) '스물일곱' 분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만 명도 넘는 구독자를 가진 분들이 보면 참 우습겠지만서도, 제게는 이 분들이 정말이지 귀하고 중한 분들이라, 그래서 더), 눈치가 보였다. 글 앞에서 쩔쩔매면 글이 그걸 알고 얕잡아본다고 했던가(강원국 님 말씀). 이럴 때는 (필자가 전에 이야기했듯) 멈추어야 한다.
그래서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쓰지 않았더니 뭐라도 쓰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쓰지 않고 빈둥거리는 것 또한 (이때 아님 언제 이래 보겠나 싶어)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전처럼 '대충' 써 보기로 했다.
어릴 때는 정말 빨리 썼다. 얼개? 퇴고? 그럴 시간에 술을 한 잔 더 먹어야지 했던 (한심한) 시절도 있었다. 학교 다닐 때 한 학기 과제였던 소설과 희곡은 하룻 밤새 다 써내곤 했다(물론 나중에 다시 읽어보고는 차마 끝까지 다 읽지 못하고 삭제해버릴 만큼 형편없었지만). 어쨌든 글쓰기는 정말 재미있는 놀이였다. 지금도 그러하다고 '우기는' 글을 몇 번 쓴 적도 있지만(심지어 '라이킷'까지 해 주셨는데, 죄송합니다. 물론 지금은 아예 아니라기보다는 그때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부담 혹은 의무감도 있다는 것이므로 아예 사기 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그땐 정말 그랬다.
대충 쓰기에 꼭 필요한 것이, '데드라인'이다. 내일 아침 9시에 제출하지 않으면 F라든가, 결혼기념일이 내일모레라든가, 오늘 중으로 그룹웨어에 공지를 올리지 않으면 실장님의 '그거 어떻게 되었어요?' 질문에 적당한 답을 준비해야 하고 이어지는 한숨을 받아들여야 한다든가 하는 따위의 '쪼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지금 배가 몹시 고프다. 한 시간 전에 사둔 초밥이 냉장고에 있다. 초밥을 마시고 맥주를 먹으며 글을 쓸까 하다가 그만 '옛날 생각'이 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글을 다 쓰고 밥을 먹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매우 잘한 결정인 것 같다. 여기까지 쓰는 데 12분 정도가 걸렸다. 무엇보다 아주 재미,있었다.
글을 잘 쓰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저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매우 근사한 일이다. 쓰고 싶을 때 쓰고 힘들면(배가 고프거나) 그만 쓰면 되는 것이다. 직업 작가가 아니라면 그래도 뭐 어떤가 싶다. 중요한 것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누워있는 것보다는 방금 12분(이제 14분)이 훨씬 재미있었다,는 점이다.
아, 배고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