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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과 응과 응은 다르다고

by 소기

응~

이렇게 하라고



나는 '응'이라고 했다.

아내는 '응~'이라고 하면 좋겠다고 했다.


이 '응' 때문에 피곤했던 적, 심지어 다툰 적도 있었다. '응,이 왜 뭐가 어때서? 아닌데, 화 안 났는데? 문자 언어는 원래 그런 거잖아. 감정이 드러나지 않잖아? 내가 화났다고 하지 않았는데, 왜 화를 내냐고 해서, 진짜 화가 나면 그건, 누구 잘못이지?' 하며 상대방만 탓해 왔다. 대체 '응'은 어떻게 느껴질(수 있을)까?





가장 일반적인 표현이다. 상대의 말에 대한 이해, 동의, 수용 등 긍정적 의미를 전달한다. 이론상 전혀 문제없는 표현이다. 그러나 이모티콘이 생활화된 요즘 시대, 혹은 사람에는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다음과 같은 회신을 받게 된다면 '경고' 한 장 받은 거다.


바빠? (궁금해서 묻는 게 아니다)
무슨 일 있어? (걱정해 준다고 감동하지 마라)
알겠어... (이게 정말 '알겠다'는 걸로 보이면 심각한 수준이다)


'응'은 '그런 건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돼. 알아서 하라고. 지금 그런 이야기나 할 만큼 한가하지 않아.'라고 잘못 해석될 수 있다. 상대에게 '성의 없다, 귀찮아한다, (대화 또는 자신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응ㅎ(또는 ㅋ)

'성의를 보이기 위해' ㅎ이나 ㅋ을 붙이는 건 상황에 따라 주의를 요한다. 자칫 그냥 '응'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가볍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라면 '응ㅎ'이 미소 지으며 답하는 느낌을 줄 수 있어 괜찮다. 그러나 진지한 이야기라면 '(웃으며)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난 신경 쓰고 싶지도, 그래야 할 이유도 모르겠어. 뭐가 그렇게 심각해?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해지는 거라고. 나처럼 웃어 봐. 응? ㅎ'으로 읽힐 수 있다. 자칫 '넌씨눈'과 함께 '줘 터질' 수 있다. 가벼운 사람, 현실감각 제로, 눈치 없는 사람, 칠푼이가 될 수 있다.



응-

요건 좀 뭐랄까, 위험한 표현이다. '응... 저기, 있잖아... 아니야... ㅎ (마침 친절한 바람이 살랑, 고운 햇빛이 반짝)' 이런 식이다. 여운을 남기지만 그 여운은 어떤 '말'이라기보다는 소리 반 공기 반 정도의 '호흡'에 가깝다. 그래서 그냥 '응'보다는 좀, 감성적이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것이든 '애매함'을 질색하는 사람들에게는 '우유부단하고 답답한 태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똑같이 여운을 남기지만,



응...

이건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거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할많하않', '어차피 내가 뭐라고 하든 니 맘대로 할 거잖아? 그냥 알아서 해...'와 같은 뉘앙스를 줄 수 있다. 대화 자체가 피로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으므로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응.

국어 전공자 또는 글쓰기, 출판 관련 종사자들, 제발 이러지 말자. 기호 따지는 것은 원고에서만 하자. 가족, 친구, 연인과의 대화에서는 이 마침표가 자칫 대화를 마치고 싶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알겠어. 됐지? 충분하지? 뭐가 더 필요한가? 그만해도 되겠지?' 반복되면, 일상적인 대화가 점점 줄어들게 될지 모른다.



응~

가장 무난한 표현이다. 언제 어떤 상황이든 완전히 마르지 않은 약간의 촉촉함을 가진 표현이다. '으응 좋아~, 으응 알겠어~, 으응 고마워~, 으응 그럴게~'와 같이 '응'이 가진 긍정성을 극대화하면서도 담백함을 잃지 않는 표현이다. '~' 개수로 강도를 조절할 수도 있어 여러모로 유용하다.






필자도 한동안(실은 꽤 오래) '생활 문자 언어'에서 기호와 이모티콘의 영향력을 부정해 왔다. 국어 전공자, 언어영역 강사, 기자, 편집자 출신의 자존심(=똥고집) 때문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따르기는 더더욱 싫었다. '맞춤법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메신저일지언정 어기는 게 당연한 일이 되다니... 개탄스럽도다!' 오바 육바를 서슴지 않았는데, 그야말로 시대착오였다. '표기법을 지키는 내가 이상한 거야? 문자 언어의 특성을 이해하지 않고 표기.표현이 주는 느낌만으로 오해하는 당신이 이상한 거야?' 쓸데없이 열을 올리고 상대방 탓만 해온 (멀지 않은) 과거의 내가 부끄럽다.


보다 풍성한 감정과 의미의 표현, 음성 언어처럼 자연스러운 소통을 위해 적절한 기호와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것은, 메신저상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맞춤법을 무시하자는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다. 그것은 문자 언어의 기본이니까, 공부하고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문학에 시적 허용(시에서만 특별히 허용하는 비문법성. 띄어쓰기나 맞춤법에 어긋나는 표현, 비문법적인 문장 따위가 있다)이 있듯이, 메신저 등 '생활 문자 언어'에서도 문자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풍성한 소통을 위해 '메신저적 허용'을 고려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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