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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가 인생의 낭비인가 하면

by 소기

그리하여 또 실패다



나는 스스로 통제하기를 즐기는 편이다. 금욕주의 같은 것은 전혀 아니다. 술, 농담만큼은 단 한 번도 통제 대상이 된 적이 없다. 그것들을 통제하기란 아예 불가능한 이야기므로 시도는커녕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러니 금욕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욕'에 가까운 편이면 몰라도. 실제는 그다지 티가 나지 않는 것을 통제하고 혼자 기뻐하는 타입이다. 이를테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디바이스 언어를 영어로 설정한다. 그러면 디바이스 언어가 영어로 바뀌는 것은 물론, 구글 추천 콘텐츠도 영어권 콘텐츠로 바뀐다. 며칠 써 보면 확실히 사용 시간이 줄고, 영어로 된 스마트폰을 쓴다는 게 꽤 멋져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데 곧 본래 목적을 잊고 만다. 영어로 된 스마트폰 화면을 자꾸 보고 싶고(근사해 보이니까), 자주 나오는 영어 문장에 금방 익숙해지며, 나와 상관없는 영어권 콘텐츠가 보다 보면 꽤 재밌기 때문이다(펜실베이니아 주의 가정집에 야생곰이 들어와서 냉장고를 뒤지다가 주인 할머니가 휘두른 야구 배트에 맞아 꽁지가 빠지게 달아났다는 그런 이야기... 거봐요, 재밌잖아). 자주 실패하지만 계속해서 이런 시도들을 한다. 실패하면 분명히 배우는 게 있다. 아주 느려서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스스로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기분도 든다. 무엇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아주 즐겁다.


실패에 익숙해지는 게 뭐가 좋은 일인가 하면, 나쁠 건 없지 않나 싶다. 실패를 해야 확실히 는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뭘 고쳐야 할까, 이렇게 한 번 해 봐야지, 다시 해 볼까...! 또 실패한다. 틀림없다. 하지만 분명히 더 나아졌다. 성공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 틀림없다. 다음번엔 성공? 성공하는 법은 잘 없다. 대신 성공에 점점 가까워져서, 거의 성공과 다름없어 보이게 된다. 자주 실패해야 이게 가능하다. 실패도 자주 하면 실패라고 부르기도 수줍은 정도, 어찌 보면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니 그 귀여운 녀석을 자주 보는 게, 나쁠 건 없다. 한방에 성공 근처에 가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고 귀여운 녀석들도 어쩌다 한 번 보면 꽤 크고 무섭다. 그러므로 자주, 귀엽게.


최근엔 SNS를 끊어볼까 했다. 세계적인 명장 알렉스 퍼거슨 경의 'SNS는 인생의 낭비다'라는 말에 깊은 감명을 받고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시도 때도 없이 타임라인을 새로고침하고 봤던 포스트를 또 보고 봤던 댓글을 또 보며 분초 단위로 조회 수와 좋아요 수를 체크하는 스스로가 참 지겨웠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때도, TV를 볼 때도 언제나 SNS를 켜 놓고 있는 스스로가 무서웠다. 글을 쓰는 시간은 거의 사라졌다. 퍼거슨 경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BRUNCH에 이런 글을 쓰는 데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 BRUNCH도 일종의 SNS가 아니던가. 그렇지만 뭐 어떤가 싶다. 어차피 몇 명 안 읽을 텐데 뭐. 행여나 브런치팀이 찾아 올리도 없고 뭐. 이런 고민은 구독자가 많아지면 하기로 하고... 결국 SNS 앱을 모조리 삭제했다. 자동 로그인도 해제했다. 단, BRUNCH 앱은 오히려 홈 화면으로 전진 배치했다. 인생의 낭비류 SNS와 정반대, 글쓰기에 도움을 주는 '인생의 단비'류 SNS라고 판단해서였다(행여나 브런치팀이 찾아 올리도 없지만 뭐). 통제하고 싶은 것은 접근을 불편하게 만들면 된다. 일단 눈에 띄지 않게 하고 실행하기까지의 단계를 늘려 어렵고 귀찮게 만드는 전략이다. 반대로 습관으로 만들고 싶은 것은 눈에 잘 띄게 하고 실행하기까지의 단계를 최소화해 자주 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또 실패다. SNS를 끊는 것은 역시 무리였나. 결과적으로 더 귀찮아지기만 했을 뿐 들여다보는 시간은 그대로다. 오히려 늘었다. SNS 앱이 없으니 웹을 열고 검색해 들어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보게 되었다(몇 번 그렇게 했더니 SNS 사이트,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자동으로 저장되었다. 좋은 세상이다). 그리고 그 방식에 금방 익숙해졌다. 전혀 불편하지 않아서 실패. 의도했던 대로 BRUNCH에 자주 들어갔다. 그런데 그게 너무 자주였다(심지어 노트북으로 BRUNCH에 글을 쓰면서 스마트폰 BRUNCH 앱을 실행한 적도 있다). 게다가 글을 읽거나 쓰는 시간보다 '통계'를 새로고침하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1분 만에 조회수가 늘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치지 않아? 하면서도 통계를 누르는 걸 멈출 수 없었다. 너무 쉬워져서 실패.


그냥 SNS 앱을 다시 설치했다. 생각날 때 짧은 글을 바로 써 두거나 좋은 문장을 메모하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도 듣고 이것저것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이것들을 재료 삼아 긴 글을 써도 좋을 것이다. SNS가 인생의 낭비인가 하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적어도 글을 쓰겠다면 말이다. 자주 쓰고 자주 보아야 한다. 사람들의 반응도 살펴야 한다. 일기를 써서 혼자만 볼 게 아니라면 글 쓰는 사람에게는 '관종적인 역량'이 있는 게 낫다. 이렇게 쓰니 반응이 없네, 저렇게 쓰니 좋아요 하네, 요렇게 썼더니 댓글이 달리네 하며 항상 지켜보아야 '좋아하는' 글에 점점 가까워질 수 있다. 내가 좋아하고 남도 좋아하는 글.


석 달 만에 결심을 지우고 앱을 다시 깔았다고 변명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아닌데, 변명이라 해도 뭐 어떤가 싶다. 글 한 편을 썼다. SNS 덕이다(특히 BRUNCH. 행여나 브런치팀이 찾아올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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