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듯 보는 정도는 아니지만
전자책 단말기의 쓰임
받아보니 실망이었다.
우선 생긴 모습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레트로, 빈티지 같은 (정확한 뜻도 모르지만 왠지 근사한) 건 바라지도 않았다. 기계지만 따뜻한, 그런 ‘다정한 물건’이었으면 했다. 낡은 물건 같았다. 분명히 새것이고 반질반질한데 낡고 오래된 물건 같아 보였다.
꽤 무거웠다. 왼손 오른손, 어느 손으로 들어봐도 불편했다. 나 손목 아픈데 어떡하지. 주사 맞아도 안 낫는데 이것 때문에 심해지면 어떡하지. 책과 비교해 보고, 휴대폰과도 비교해 보았다. 툭툭툭 손 위에서 가볍게 까불러 보았다. 역시 무거웠다.
켜 보면 다르겠지…… 느리다. 터치를 해도 스와이프 업.다운을 해도 일이 초 뒤에 반응했다. 특히 메뉴를 불러낼 때는 삼 초는 걸리는 것 같았다. 삼 초라니! 반응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숨이 턱턱 막혔다. 서체도 화면 구성도 촌스러웠다. 감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괜찮다는 말을 들어야겠다. 나는 너를 써야겠다. 녀석을 안고, 얼마 전 다른 회사 제품을 구입한 선배를 찾았다. 선배는 자신의 것과 내 것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꼼꼼히 살피는 척, 했지만 실은 보자마자 결정한 듯했다. 어때요?
조금도 부럽지 않구나. 차나 한 잔 하렴. 숙차는 쓰린 속을 달래고 열을 내리는 효능이……
팔까? 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았다. 첫째, 중고 거래를 하기에 나는, 게으르다. 둘째, 오늘 왔다.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ㅡ
정을 들여 보기로 했다. 우선 매일 가지고 다니며 가까이 두었다. 자주 보고 만졌다. 자꾸 보니 생김새가 달라 보였다. 여전히 못생겼지만 밉지 않았다. 손에 익으니 들기 좋은 무게라고 느껴졌다. 더 가벼웠다면 안정감이 떨어졌을 것이다. 반응이 느린 점에 매료되었다. 천천히 깊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심호흡하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무엇보다 얼마 안 가 느리다는 느낌 자체가 사라졌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을 고민해 보았다. 남들은 어떻게 쓰고 있나,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고민하고 찾아보았다. 마음에 드는 배경화면을 찾아 넣고, 케이스를 사다 씌워 주었다. 서체도 바꿔 보았다. 아주 못생긴 얼굴은 아니구나, 귀여운 구석이 있구나 싶었다.
이름을 지어 주었다. 부를 이름이 마땅치 않았다. 전자책 단말기. 정확한 표현이다. 사전에 명기되어 있는 공식적인 이름이다. 그런데 전자책 단말기 하면 ‘휴대전화’라고 하듯 옳지만 정겹지는 않은 느낌이 들었다. 매사에 진지하기만 한 재미없는 사람 같은. 영어로는 이북 리더e-book reader라 한다. ‘이북 리더’라고 하면 (정말 진지하게 하는 말임을 알아주기 바란다) 김정…… 그가 먼저 떠오른다. 적절한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화장실에서 전자책을 보다가 (이 정도로 잘 쓰고 있는 것이다) 문득 ‘책보’라는 이름이 떠올랐다. 책을 싸는 보자기, 책보자기라는 뜻도 있지만 ‘-보’는 '그것이나 그러한 행위를 특성으로 지닌 사람'이라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도 된다. 떡을 좋아하고 잘 먹는 떡보처럼. 많은 책이 담겨 있고 책을 좋아하고 잘 읽는 ‘책보’가 생겼다.
애정을 쏟으면 물건에도 온기가 생긴다.
#크레마카르타플러스 #2in1케이스
*제목은 나태주 작가의 책 "꽃을 보듯 너를 본다"에서 착안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