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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글을 못 써 난리

by 소기


나는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그런데 읽다 보면 쓰고 싶어 견딜 수가 없다. 이번 장, 아니 이 페이지만 다 읽고 쓰자아,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다. 다음 문장을 아무리 반복해 읽어도 '쓰고 싶어, 쓰고 싶다고, 쓰면 안 될까, 쓰고 읽으면 되잖아, 쓰자고, 써! 당장 쓰라고!' 라고밖에 안 읽힌다. 같은 문장을 일고여덟 번쯤 읽다 결국 항복, 졌다(이긴 건가). 찰랑찰랑 쓸 생각들이 넘친다. 몸을 잘못 놀렸다가는 왈칵 다 쏟아져 버릴 것이다. 머리는 움직이지 않고(대체 왜 그러나 모르겠지만) 팔을 쭈욱 뻗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토도도도도 두두두두두 다다다다다ㅡ. 와이프랑 한바탕 할 때 얼굴 보면 용기가 안 나 절대 못할 소리를 메신저에 와다다다 쏟아내며 순식간에 장문의 메시지를 연속으로 투척할 때와 비슷한 속도와 양이다. 한바탕 쏟아내고 나면 또 읽고 싶어 진다. 그러면 또 시험 직전 쉬는 시간 교과서를 파듯 책을 읽는다. 종이 울리고 대나무 뿌리 회초리로 창틀을 딱 딱 치며 선생님이 오신다. 딱딱 소리가 가까워 온다. 문이 열리고 "책 듶으라! 인마!" 그래도 포기할 수가 없다. 한 문장이라도 더! 한 단어라도, 한 글자라도 더! 더더더!


왜 이러는 걸까요?


왜 갑자기 글을 못 써 난리일까? 빠른 생, 미국 나이, 별 핑계를 다 대도 이제 속절없이 마흔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쓴다고 돈을 더 주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니다. 정작 많이 읽고 많이 쓰면 돈을 더 주거나 학점을 더 주거나 하던 시절에는 이러지 않았었다. 국문학도 시절, 국어 선생 시절, 기자 시절,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하는 시절에는 최소한으로만 읽고 썼다. 학고 맞지 않을, 잘리지 않을 딱 그 정도로만(교수님, 얘들아, 학부모님, 국장님, 안면은 없지만 독자님 등등 정말 죄송합니다). 천하의 게으른 작가, 아니 작자(作者)였던 내가, 나이 마흔에 인사장이가 되어서는 인사만 잘하면 되지 왜, 잠잘 시간도 술 먹을 시간도 부족한데 책을 못 읽어서, 글을 못 써서 이 난리일까.


이 글 역시 잠과 사투를 벌이며 죽을 둥 살 둥 김연수 님의 "소설가의 일"에서 "어느 쪽의 이유에서든 오백사십 년 전에 죽은 신숙주의 이름이 이자카야의 메뉴판에까지 적혀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위대함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문장을 일고여덟 번쯤 읽다가 휴대폰을 집어 들어(머리를 움직이지 않고) 쓴 글이다. 본래 이름은 '두아채'였다던 녹두의 나물에다가, 충성스러운 여섯 신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일로 백성들의 미움을 받게 된 자의 이름을 붙였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나는 '쓰고 싶어, 쓰고 싶다고, 쓰면 안 될까, 쓰고 읽으면 되잖아, 쓰자고, 써! 당장 쓰라고!' 밖에는 생각나지 않아 결국 이렇게, 쓰고 말았다.


왜 이러는 걸까요?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이기지 못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쓰면서는 나이 먹어 '갑자기 글을 못 써 난리인 이유'를 찾아볼까 했다. 이쯤 쓰고 보니 '뭐하러 그래' 싶다. 사실 좀 귀찮기도 하거니와 암만 생각해도 그 이유에 대해 쓰는 건 통 재미가 없을 것 같다. 무엇보다 대체 누가 정답을 알겠는가? 정답이 있기나 하겠는가? 있으면 뭐, 어따 쓰게? 다만 중요한 건 읽고 쓰는 일이 참 재미있다는 점이다. 잠을 자고 술을 먹는 것보다 그렇다. 물론 지금은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러다 읽고 쓰는 것이 지겨워지면? 안 하면 그만. 그러다 생각나면 다시 읽고 쓰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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