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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장들

초고 쓸 때 하지 말 것 세 가지

김연수, "소설가의 일"

by 소기


내가 쓴 초고를 보면 내 머리통은 무슨 음식물 쓰레기통처럼 느껴진다. 글을 쓰려면 초고를 써야만 하는데, 초고를 쓰면 글을 쓰기가 싫어진다. 이게 창작의 딜레마다.

김연수, "소설가의 일"




초고는 막 쓰자, 후루룩-

초고는 최대한 빨리 쓰는 게 핵심이다. 초고에서 쭈뼛거리면 글에게 말린다. 글이 알아본다. 샌님이다 싶으면 뒷덜미에 찰싹 달라붙는다. 어깨가 굳고 머리가 무겁다. 누가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 열이 오른다. 한 글자도 쓸 수가 없다.


어차피 초고는 쓰레기다. 헤밍웨이는 "무얼 쓰든 초고는 일고의 가치가 없다"라고 했는데, 원래는 "The first draft of anything is shit!"라고 했다. 점잖게 번역한 것일 뿐, 결국 초고는 '쓰레기(shit이니까 사실 더 심하게 말한 것)'라고 한 것이다.


대충 쓰고 넘어가자. 고치면 된다.



초고 쓸 때 하지 말 것 세 가지

1. 완벽하게 쓰려고 애쓰기

처음부터 완벽하게 쓸 수는 없다. 헤밍웨이도 그랬고, 김연수도 그랬지 않은가? 그러니 초고를 쓰면서 고치지 말자. 공연히 시간만 낭비되고 중간중간 자꾸 막히고 옆길로 샌다. 생각대로 안 써진다. 초고는 쓰레기, 고쳐봐야 '고친 쓰레기'에 불과하다. 나중에 보면 다시 다 고치고 싶을 것이다. 미리 할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초고를 쓸 때는 생각한 대로 앞만 보고 밀어붙이자. 세세한 가지를 그리기보다는 큰 획을 죽 긋는 것이다. 고치는 건 그다음에 할 일이다.


2. 순서대로 쓰기

처음부터 순서대로 쓸 필요 없다. 그러다 첫 문장부터 막히면? 첫 문장이 제일 어렵다. 막히면 끝장이다. 먼저 생각나는 것부터 먼저 쓰면 된다. 자연스럽게 앞뒤로 살을 붙여나간다. 순서는 나중에 바꾸면 된다. 순서대로 써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자.


3. 눈치보기

솔직히, 아무도 관심 없다. 당신 초안에 관심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다. 쓰레기라고 쓰든, 음식물 쓰레기라고 쓰든, shit라고 영어로 쓰든 상관없다. 신나게 막 써버리자. 아무도 모른다. 나중에 고치면 된다. 고쳐서 '글'로 만들면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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