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마흔

by 소기


마흔이다, 만으로.


어떻게든 미루고 미루었는데 더는 피할 곳이 없는 '찐' 마흔이다(그럼 나는 '군' 마흔 하면 곤란해 친구들).

특별히 달라진 건 없다. 불혹이라지만 여전히 흔들리고, 본책은 시작도 못하고 부록부터 읽고 있는 것 같은 기분 또한 여전하다. 그나마 부록이 만만해 보였는데 그마저 진도가 안 나간다. 다음 페이지를 보면 이전 페이지가 기억나지 않는다. 같은 말을 여러 번 들어도 자꾸 틀린다.


ㅡ이거 내가 물어본 적 있던가?

ㅡ네, 그때도 똑같이 틀리시고 똑같이 물어보셨죠.

ㅡ역시, 그랬군.


그런 식. 물론,

'사소한' 변화는 있다.


단어를 까먹는다. 그 뭐지? 그 누구지? 그 어디지? 그......

이유 없이 아프다. 왜 아플까 고민하다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그만, 우울해지고 만다.

단 것이 당긴다(문장 참 맛없게도 생겼네). 단 게 땡긴다(아 시원해).

음악 취향이 바뀐다. 일단 노래를 좀 못해야 좋다.

자주 서운하다. 별거 아닌 일에 별스럽게 서운해진다.

대충 입는다. 전보다 옷 잘 입는다 소릴 들으면 왠지 서운하다.

이상한 꿈을 꾼다. 자꾸 죽는, 아니 죽을 것 같은데 죽기 직전에 깬다.

운다.

물을 흘린다. 더 속상한 건 입 주변은 말라 있다는 점.

지기 싫다. 아이(8세)에게 변화구를 던지고 말았다.

쇼핑에 흥미가 생겼지만 사지 않는다. 장바구니 비우기라는 취미가 생겼다.

반주를 한다. 술이 식사의 일부가 되었다. '밥 먹자' = 한 끼 식사, 즉 밥, 반찬(+국), 술을 먹자.

책을 읽는다. 책은 고민 없이 산다. 술 먹듯 읽는다.

걱정이 늘었다. 책을 읽어도 너무 읽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말투가 바뀐다. 그렇군. 하는 게 어때? 다른 문제는 없는가? 따위의 문어체를 현실 대화에서 쓴다.

잔소리가 많다. 밥 먹어야지. 얼른 먹어야지. 너무 급하게 먹으면 안 되지......

아내에게 미안하다. 갈수록 더 그렇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다.


어떻게 마흔이 되었는데.

아무튼, 마흔이다.




https://unsplash.com/photos/HKmBzQDkv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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