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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문장들

죽과 젓갈

권여선, "오늘 뭐 먹지?"

by 소기


자꾸 아프다. 하루가 다르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자주, 죽을 끓여 먹거나 누룽지를 끓여 먹는다. 이제까지는 주로 간장 베이스의 반찬을 곁들여 먹었다. 파 장아찌 같은 것을 하나씩 얹어 먹으면 구수한 맛으로 시작해 간간한 맛이 스며들다가 이내 입안이 개운하게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입안은 개운하고 속은 따뜻하니 아프지 않은 것 같아 좋았다. 작가의 방식대로 젓갈과 함께 먹으니 신세계가 펼쳐졌다. 심심한데 피식,하게 만드는 블랙코미디 영화 같기도 하고 평범한 진행에서 갑자기 허를 찌르는 코드로 판을 뒤집는 노래 같기도 했다. 하루 종일 입안에 남아 하루 종일 죽과 젓갈을 먹은 게 아닐까 착각이 들기도 했다. 이 조합을 알게 해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다. 내일 아침에도 먹어야겠다.







아침에 학교 가는 길에 나는 심하게 토했는데, 다행히 라일락꽃이 만개한 나무 아래여서 토하고 나서도 기분이 좋았다.


요즘도 어머니는 종종 내가 편식하던 시절에 저질렀던 부끄러운 짓들을 하나하나 들추어내며 기쁨에 젖곤 하시는데, 그 말씀들 속에는 그토록 까다로웠던 딸의 귀족적인 입맛이 짐승의 수준으로 타락한 데 대한 은근한 비난이 숨어 있는 듯도 하다.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이 참으로 많다. 술술 읽히고 착착 감기는 것이 역시 이 분은 (스스로 쿨하게 인정하신 바와 같이) 글에서 맛 좋은 안주맛이 난다. 2주째 '금쏘(소주 금함)'를 하고 있는데, 매우 위태위태하다. 실로 해로운 책이다. 정말로.




맛있는 음식을 놓고 둘러앉았을 때의 잔잔한 흥분과 쾌감, 서로 먹기를 권하는 몸짓을 할 때의 활기찬 연대감, 음식을 맛 보고 서로 눈이 마주쳤을 때의 무한한 희열. 나는 그보다 아름다운 광경과 그보다 따뜻한 공감은 상상할 수 없다.


상황과 분위기, 감정까지 완벽하게 묘사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마저 눈에 보이는 듯 착각하게 만든다. 이래서 문학을 예술의 영역이라고 하나보다. 머릿속 어딘가에 무심한 듯 스윽 넣어두었다가 적당한 때에 스윽 꺼내어 흉내라도 내어야겠다.




#오늘뭐먹지 #권여선 #메뉴(라쓰고안주라읽는)고르기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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