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쓰고 있지만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읽고 생각하고 책상 앞에 앉는다. 그러나 쓰지 못한다.
그러므로 써 놓은 것은 없으나 쓰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아,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나는.
이것은 마치 우린 떨어져 있지만 함께 있는 거야 같은
그럴 듯하지만 실은 말이 안 되는 말이다.
말이 안 되는 말은 말이 아니다.
말이 아니다. 그렇다. 처음부터 말이 아니었다.
글을 쓰는 중이다, 나는.
글이니, 그러니 괜찮지 않을까.
말이 되지 않아도 글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어쨌든 쓰고 있으니까
이 글도 글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는 글을 벌써 열 줄도 넘게 쓰고 있다.
이 얼마나 다정하고 친절한 취미인가.
글은 참 괜찮지 않은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