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숲이 있대

by 소기


은행나무숲이 있대.

가보고 싶어.


그래? 가자.




그렇게 은행나무숲에 가기로 했다.


강원도 홍천에 있다. 26년 전에 주인 아저씨가 몸이 아픈 아내를 위해 혼자 2000여 그루의 은행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었다. 그 은행나무숲을 재작년부터 개방했다고 한다. 1년에 딱 20일, 은행나무가 황금빛으로 물드는 바로 그때.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준비 시간이 부족해 근사한 숙소하나 예약하지 못했지만 다음을 기약할 수는 없다. 먹고 싶을 때, 바로 그 순간 먹는 라면이 그 어떤 근사한 요리보다 입에 착착 붙는 법이니까.


친절한 이웃(네이버)의 도움으로 ‘홍천 은행나무숲 - 낙산 해수욕장(1박) - 대관령 양떼목장 혹은 월정사 전나무숲’ 코스를 정하고, 길안내는 내비, 숙소는 Feel에 맡기기로 했다.


내일은 토요일이지만 6시에 일어나기로 했다.

아, 새벽에야 겨우 잠이 들고 말았다. 곧, 정말이지,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알람이 울렸다. 끄고 눕기를 반복하다 결국 9시가 넘어서 출발-


4시간 넘게 달려 은행나무숲 입구에 도착했다.


조금의 의심도 허락치 않는, 분명하고 으리으리한 입구


입구에서부터 5분 정도 걸어 올라가니 드디어, 은행나무숲이, 그 황금빛 신비의 정원이……!



가을은 서에서 동으로 흘러가는 모양이다. 이곳은 은행나무에 잎이 다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또한 운치 있었다. 나름 재미있기도 했다. 줄지어 늘어선 2000그루의 은행나무와 바닥을 뒤덮은 은행잎들. 출사 나온 동호회 회원들, 약속이라도 한 듯 은행잎을 머리 위로 뿌리며 사진을 찍는 연인들,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무엇보다, 가족들.


안녕, 산타클로스 군?


비록 잎이 다 떨어진 은행나무숲이었지만, 포근했고 즐거웠고, 왠지 고마웠다. 삼각대를 세우고 용기를 내어 태어나 처음으로 다양한 콘셉트 사진을 찍었다. 다들 그러고 있으니 못할 것도 없었다. 내년에는 흐드러지는 은행나무 아래서 노오랗게 웃는 사진을 꼭 찍으리라 다짐하며 은행나무숲을 나왔다.


그길로 다시 1시간을 달려 낙산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Feel로 콕 찍은 숙소는 깔끔하고 좋고 비쌌다. 단풍놀이 시즌이라 준성수기 요금이 적용된다며 친절하게 바가지를 씌우길래 기분 좋게 써 줬다.


어느덧 날이 어두워졌고, 우리는 배가 고팠다.

낙산 해변을 따라 빈 마차가 시도 때도 없이 우리를 지나쳐 갔다. 횟집에 가서 회를 비롯한 가지각종 해산물을 섭취하고 밤바다를 잠시 걸었다. 잠시. 추워서 내일 아침에 다시 나오기로 하고 숙소로 뛰었다. 비싸지만 따뜻한 방.


다음 날 아침, 신라면 블랙을 아침으로 먹는다는 것은 역시 말도 안 되는 소리임을 확인하고 해변으로 나왔다.


바다.


낙산의 바다는 소녀시대 같았다.

안구정화. 보고 있으면 치유 받는 느낌.


동해는 서해나 남해와는 달리 백사장이 아주 넓고, 바라본 수평선에 아무 것도 걸리는 것이 없는 것 같다. 그 깨끗하고 시원한 경치는 놀라울 정도로 큰 위로가 되었다. 걸그룹은 소녀시대, 바다는 역시 동해.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바다에 머물러 있었다. 어쩌면 바다에 붙잡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양은 원래 되게 사나운 짐승이래.

은행나무숲 봤는데 전나무숲까지 볼 거 있나?


하며 쿨하게 서울로 돌아오는 국도를 탔다. 44번과 46번 국도(정확하지는 않다. 촌놈이라 길을 잘 모르...)는 드라이브가 곧 단풍놀이, 가을여행이 되는 길이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설악산(아마도 그렇겠지)의 풍경은 내가 운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배경이 움직이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했다.


서울이다. 어느새.

참 좋았던 여행, 그러나 변하지 않는 진리.


집이 최고다.









(2012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