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아버지의 등과 동해 바다

by 소기


강원도에 다녀왔다.


강원도는 국도로 가다 어디서 내려도 그곳이 곧 여행지가 될 만한 지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볼 것, 먹을 것, 느낄 것이 많은 좋은 여행지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었으므로 (그리고 우리는 지쳐 있었으므로) 여기저기 다니기보다는 몇 군데만 들러서 잘 쉬다 오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리하여 ‘낙산사 – 만해마을 – 백담사’의 매우 심플한 코스가 탄생했다.


그러나 막상 떠나 보니 이 코스도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일단 멀고 멀며 멀었고, 덥고 더웠다. 아침에 출발하여 점심때가 살짝 지나서야 첫 번째 목적지인 ‘이모네식당’에 도착했다. 맛집 중의 맛집답게 한 시간 정도 대기해야 했다. 그 틈에 1분 거리에 있는 바다, (바다가 1분 거리에 있다는 건 정말이지 멋진 일이다) 바다를 보러 갔다.


동해는 언제나 옳다. 크고 작은 섬들이 아기자기하게 펼쳐져 있는 남해가 위로한답시고 재잘재잘 떠드는 속 깊은 이성친구 같다면, 동해는 어린 시절 올려다보았던 젊은 아버지의 등 같다. 아무 말도 없고, 딱히 내 마음을 다 알아주는 것 같지도 않은데 묘하게 위로가 되는 그런……


모듬 생선찜을 먹었다. 말 그대로 여러 생선들을 찐 것인데, 가오리가 제일 맛있었다. 이제 낙산사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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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는 몇 해 전, 불에 탔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이제는 거의 재건이 된 것 같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시간의 깊이가 덜 느껴지는 점은 아쉬웠다. 그래서인지 바다를 굽어보는 해수관음상의 뒷모습이 완벽하게 평온해 보이지는 않았다. 역시 부처는 각자의 마음에 있나 보다. 좋은 생각을 많이 해야겠다 싶다.


몇 달 전 워크숍을 다녀온 후 마음에 쏙 들어, 숙소로 정한 ‘만해마을’. 가격도 싸고 넓고 아름답고, 무엇보다 조용하다. 이름에 걸맞게 문인들이 찾아 글을 쓰거나 명상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지만, 만든 이의 의도와 상관없이 아이들이 놀기에 최적의 장소가 아닌가 싶다. 뛰놀 수 있는 넓은 잔디밭 있고, 수로에 잉어 있고, 바닥에 개미 있고, 바로 옆에 개천 있고, 풍광 아름답고, 공기 좋고, 그리고 사람이 없다. 강원도로 가족 여행을 떠난다면 숙소로 고려해 볼만할 듯.


백담사. 아직까지 차량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 셔틀버스로만 갈 수 있다. 물론 걸어갈 수도 있지만 산 입구에서부터 만만치 않은 거리다. 주차장에 내려서 좁은 산길을 3분 정도 가면 그야말로 ‘별천지’가 펼쳐진다. 유배를 갔던 게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다. 신선놀음이었을 것, 아마도, 분명히.


이어 펼쳐져 있는 계곡은 그 모습도 아름답지만 소리가 정말 황홀했다. 하루 종일 듣고 누워만 있어도 좋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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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평화, 지구 정복, 통일, 믿음, 소망, 사랑…… 무수한 소망이 있겠지만 여기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가장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결혼 전이었으면, 혹은 더 어릴 적이었다면 다를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그때 그 시간에는 그런 생각이었다.


1박 2일은 짧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알차게 보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생각이 들었다. 낙산사, 만해마을, 백담사를 둘러보는 코스도 좋았고, 식당들도 다 마음에 들었다. 한 시간씩 기다려 먹었던 ‘이모네식당’ 생선찜, 주인장이 직접 재배해 더 믿음이 가고 담백했던 ‘사계절식당’, 백담사에서 내려와 먹었던 ‘예당막국수’까지. 이 세 곳은 인제를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망설임 없이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이제 ‘할므이, 할브지이’가 된 부모님과, 토끼 같았… 아니 같은 아내와, 우주에서 가장 잘생긴 우리 아들과 함께하는 여행이었다는 점이다. 시간이 허락하는 동안 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경험을 함께하고 싶다.


언젠가 아흔이 넘은 노인의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젊은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은 무엇입니까?

돈이 있으면, 여행을 가세요. 그것이 돈을 가장 가치 있게 쓰는 방법입니다.











(2015년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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