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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이겨라!

by 소기


"아빠, 롯데랑 키움이랑 하면 누구 응원할 거야?"


입으로 가져가던 김밥을 떨어뜨렸다. 당근, 오이, 달걀, 단무지, 햄, 맛살, 우엉이 꽃잎처럼 흩어졌다. 젓가락을 내려놓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시간은 정지되고 아이의 질문만이 끝없이 반복되는 듯했다.

13년이 넘었다. 고향을 떠나 부산에서 기자 생활을 할 때, 동료들과 사직야구장을 찾았다. 어느 팀과의 경기였는지 결과가 어땠는지는 조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했던 비의 냄새, 수만 명이 신문지를 찢어 흔들 때 나던 사각거리던 소리, 주황색 비닐봉지의 선명한 빛깔 만은 또렷하다. 그날로 롯데가 찾아왔고 기꺼이 마음의 방 하나를 내어 주었다.


어릴 때는 MBC 청룡의 팬이었다. 야구가 뭔지도 잘 모를 때 영문도 모른 채(아버지가 김재박을 좋아해서였다고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 되었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서인지, 반에서 MBC를 응원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아버지도 실상은 MBC를 시청하는 것을 좋아하셨지 MBC 청룡을 응원하는 것에는 크게 흥미가 없어 보였다. 낮이 지나 해가 지고 밤이 되듯, MBC가 그리고 야구가 마음에서 졌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나 비가 오락가락하던 그날에 롯데가 떴다. 그리고 또 십수 년을 마음에서, 빛나고 어스름해지기를 반복했지만 결코 지지 않았다. 다른 팀을 마음에 둔 일도 없다. 입밖에 내지 않아도 마음에만 두어도 배신 배반이라고 (전도연 누나가 영화 "약속"에서 그랬고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응원하는 스포츠팀의 성적이 나쁘면 실제 아프다. 영국의 한 연구팀이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응원하는 스포츠팀이 졌을 때 자극을 받는 뇌의 부위가 실제 신체의 고통을 느끼는 뇌의 부위와 일치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롯데가 지면 실제로 아픈 것이다. 십수 년을 아파온 것이다.


고통을 대물림할 수는 없었다. 이기는 야구를 보여주고 싶었다. '야구'를 좋아하던 아이가 '롯데'만 좋아할 조짐을 보이자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적당한 팀을 물색했다. 롯데에서 두산으로 가는 것은 너무 한방에 건너뛰는 느낌이라 좀 비겁해 보였다. SK와 NC는 아들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이유는 모른다). LG는... 롯데에서 LG는 사실... 거기서 거... (사랑해요, LG). 키움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도깨비 같은 팀이고, 그만큼 매력적인 팀이라고 생각했다. 아들도 좋아했다. 그래, 이제부터 키움을 응원하는 거다!


"롯데랑 키움이랑 하면 누구 응원할 거야?"


응원하는 팀을 바꾼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안 보려고 해도 자꾸만 눈에 밟히는 게 롯데다. 의식적으로 경기를 보지 않아도 결과를 확인하고 (한숨) 기사를 찾아보고 (절레절레) 스스로 고통받는 나를 발견한다. 결국 둘 다 응원하기로 했다. 배신 배반? 사람에게나 그러지 말자, 아내에게나 잘하자 스스로를 설득했다. 야구는, 그래도 되지 않겠는가?


"둘 다 응원하지, 뭐."





#야구하러 갈까? #비 온다 #히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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