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inima Agon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골 May 26. 2023

하늘을 우르러


 부끄러움 아는 미덕 바랜 이유는 그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을 취하기 불리하기 때문이 아니다. 부끄러움은 개인이 자신의 현존을 이상에 빗대서 생겨나는 열등감을 인식해 줄 타자의 시선을 필요로 한다. 원자화됨으로써 독자적으로 온전한 자유를 누려야 하는 현대 사회의 개인은 타인의 열등에 집중해야 하는 탓에 열등감 자체 바라 줄 수 없는 처지에 . 원료 공급에 차질이 생긴 공장처럼 부끄러움 생성 메커니즘은 작동할 수 없게 된다.


 몸의 원리상 감정도 가르치고 배울 수 있지만 부끄러움은 교과 과정에서부터 배제되어 있다. 선천적으로  미덕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 기꺼이 선생이 되길 자처하지만 교실은 비어있다. 제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 더 이상 관능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본(本)으로 삼고 싶어 하지 않으며, 멀리서 감상할 때만 편안하고 상쾌한 느낌을 주는 자연 풍경처럼 취급한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라캉의 주장은 겹게 존속하고 있는 부끄러움이 관능을 잃게 된 까닭으로 그것의 강도를 의심케 하면서, 동시에 부끄러움에 대한 욕망이 왜 사회에 퍼져나갈 수 없는지를 설명한다.


 정치권에서 빈번하게 들리는 '부끄러운 줄 알라'는 식의 비판 (발화자의 의도와 무관하지 않게) 상대에게 실질적인 상처를 입히지 않으므로써 타협을 위한 공간을 미리 확보해 두기 쉽다는 장점 있다. 정치인들은 대변해야 할 이상이 많은 만큼 부끄럽지 않아야 할 이유가 늘어난다고 느낀다. 몰염치는 능동적인 행위인 것이다. 러한 상황에서는 새로운 이상의 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일상이라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는 이상의 수는 커피의 원두 가짓수 보다 적지 않다. 이상의 부재가 아닌 이상의 과잉 속에 부끄럽지 않아야 할 이유는 점점 진하게 배양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