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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골 Nov 09. 2023

벗에 대하여

니체 읽기 AZ 14


“사람은 자신의 벗 내면에서 최상의 적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그에게 대적하는 동안 너는 심정적으로 그를 더없이 가깝게 느껴야 한다.”

 니체가 말하는 벗은 서로를 상승시키기 위한 긴장관계를 형성한다. 솟아나는 이중 나선을 이룬다. 이를 위해 사람은 벗을 향한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고, 벗에게서 ‘적’을 찾아내어 겨루어야 한다. 이때의 ‘적’은 분노와 제거의 대상으로서의 ‘적’이 아니라, 온 힘을 다해 상승 경쟁을 할 수 있는 승부의 대상으로서의 ‘적’이다. 운동선수들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넣으며 경쟁한 상대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경의를 표하듯이, 진정한 벗은 상대로 하여금 경의를 느끼게 하는 존재인 것이다.


“너는 노예인가? 그렇다면 벗이 될 수 없다. 너는 폭군인가? 그렇다면 벗을 사귈 수 없다.”

 자신의 주체성이 떨어지는 ‘노예’와 타자의 존재가 안중에도 없는 ‘폭군’은 동무 관계를 형성할 수 없다. 주체적인 나의 힘과 타자의 힘이 맞부딪치는 지점에서 니체가 말하는 우정은 시작될 수 있다.


“여인의 가슴속에는 너무도 오랫동안 노예와 폭군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 여인은 아직도 우정을 나눌 줄 모른다. 사랑을 알 뿐이다.”

 ‘여인’은 니체 철학에서 상징성이 강하다. 진리의 상징으로 쓰일 때도 있는데, 반대로 약자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여기서 니체는 약자를 여인에 빗대고 있다. 약자는 강자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생각을 제거하는 ‘노예’이거나, 자신의 약함을 감추기 위해 타인에게 지나치게 방어적인 ‘폭군’이 되기 쉽다. 그래서 약자는 진정한 우정을 나눌 수 없다.


“벗이라면 마땅히 미루어 짐작하는 일과 침묵하는 일에서 대가여야 한다. 너 모든 것을 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너의 벗이 깨어 있을 때 무엇을 하는지는 너의 꿈이 대신 보여주어야 한다.”

 상식적으로 ‘좋은’ 우정의 관계란 서로가 서로에게 투명하고, 서로의 ‘인간적인’ 모습을 발견하여 공감을 나누는 관계일 것이다. 니체는 이러한 우정에 반대한다. 현재의 비슷한 성질에서 위안을 얻으면, 벗이라는 존재가 ‘위버멘쉬를 향한 화살이 되고 동경’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정동호 옮김, 책세상, 2000.

원제: Also sprach Zarathustra (1885)


방송

김준산 외, 〈니체 강독 3편〉, 《두 남자의 철학 수다》.

https://www.podbbang.com/channels/1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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