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뭔지 모르겠다 2
가-가가-고, 가-가가-가? 1
2019년 순례길을 걸으며 작성한 일기장을 열어보았어요. 액기스 기록만 가득한 일기장을 보며 그때의 기억을 덧붙여봅니다. 3년만에 만난 또 다른 나
드디어 도착한 알베르게에서 땀범벅인 옷을 집어던지고 샤워를 했다. 아 행복해. 이 쩔여있는 땀을 씻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해. 당장 누워 자고 싶었지만 내일 입을 옷을 위해 빨래를 해야했다. 없는 힘을 끌어모아 손빨래를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내일 갈 거리를 확인하려고 책자를 펼쳤는데 또 30km가 넘어가자 화가났다. 왜 이렇게 여유가 없을까.
매일매일 새롭게 생기는 물집들을 바라보며 스스로 안쓰러워 하겠지.
그러던지 말던지 또 이 발로 걸어가겠지.
절뚝이며 그늘을 찾겠지. 5분정도 쉬었을까
너무 늦게 도착하면 빨래가 안마를거야 어서 가야해, 나를 재촉해대겠지.
그렇게 태양에게 화내며 또 걷겠지.
예상되는 내일의 불행에 눈을 질끈 감고싶어졌다. 아 맞다 나 배고파. 화난 내 허기 먼저 달래주자. 내 보상도 잊을 수 없지. 마을에 들어오다 본 피자집으로 달려갔다. 피자와 맥주를 시켜놓고 계속 생각했다. 주변에 좀 걸었다는 친구들에게 의견도 물어봤다. 원래 이렇게 힘든건지 아니면 나 자신과 싸워서 이겨내는건지. 처음 걸어본 길에 나의 아집인지 뭔지 알 길이 없었다. 그 친구들을 통해 물집은 당연하다는걸 알게됐고, 생각해보니 오늘 어떤친구는 샌들을 신고 걷지 않았나. 물집은 당연한거니까 그러니까 별거 아닌거겠지. 그냥 내일 또 걷지 뭐. 이런 생각회로를 지나치는 동안 나는 맥주를 3병이나 비워버렸다. 그리고 삽시간에 행복해졌다. 개운한 몸과 마음으로 맥주를 즐기는 이 순간이 미치게 행복했다. 마치 태양 아래 죽어가다 그늘아래 바람 한 점에 죽도록 행복했던 것처럼 그랬다. 내일도 난 이 고통과 행복을 극단적으로 즐기겠구나 그렇겠구나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극한의 감정들을 겪게되서 매 순간 화와 짜증이 자주 났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 캐릭터는 갓 태어난 레벨1인데 미션들이 자꾸 끝판왕이야. 난 1판부터 시작하고싶은데 자꾸 대빵만 나오는 판이 이어지는 그런거랄까. 나는 건강하고, 이 정도는 크게 어렵지 않게 이겨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자주 무너지는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게 힘들지 않았나 싶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혹독한 훈련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