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감래는 원래 극단적인 걸까 2

by sogongnyeon

고진감래는 원래 극단적인 걸까 2

2019년 순례길을 걸으며 작성한 일기장을 열어보았어요. 액기스 기록만 가득한 일기장을 보며 그때의 기억을 덧붙여봅니다. 3년만에 만난 또 다른 나





금방 슈퍼에서 큰 물을 사온 아저씨가 까미나? 싼티아고? 말을 건다. 씨.씨. 싼티아고. 투데이 골레가 (오늘 갈 마을) 답하는데 내 눈이 아직도 금방 냉장고에서 나온 차가운 물통에 꽂혀있다. 아저씨가 생수병을 따면서 아구아?(물?) 물어본다. 그래도 사람이 체면이 있으니까 노노 이츠오케이 이츠오케이 외쳤다. 근데 내 눈빛은 여전히 생수통이다. 거의 뭐 관통할 기세로 뜨거운 눈빛을 보낸다. 아저씨는 이거 시원한 물이라며 그냥 아예 마시라고 건네준다. 하 이러면 제가 그냥 먹어야죠. 사실 그게 맞잖아요. 한번 거절했으면 동방예의지국 다 한거 아닙니까. 오브리가도!!!를 외치며 마신다. 진짜 조금만 마시고 돌려드릴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꿀꺽꿀꺽 두번이나 해버렸다. 꿀꺽 말고 꼴딱 한번만 할려고 했는데. 꿀꺽 두번이나하고 민망해져 에헤헷,,,오브리가도,,하고 웃었다. 아저씨는 더 마시라고 다시 건넸다. 여기서 더 마시면 진짜 또 나도 모르게 꿀꺽 두번해서 반은 먹어버릴까봐 겁나서 이츠오케이 무또 오브리가도! 진짜 고맙다고 거듭 인사했다. 아저씨는 본 까미노! 라며 행운을 빌어줬다. ‘나’ 라는 배터리는 20%에 저전력모드였는데, 아저씨의 친절함과 차가운 물로 급속충전이 됐다. “배터리가 80%로 충전되어 저전력 모드를 해제합니다” 팝업이 떴다.


진짜 순례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다 친절하지. 참 신기하다. 포르투갈 사람들이 신기한걸까. 순례길이라는 특수한 장소가 그들을 친절하게 만드는 걸까. 우리집 주변에 둘레길이 있고, 그거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나는 말을 걸거나 뭔가를 주지 않을 것 같은데. 아니야 근데 생각해보면 어릴때 산에가면 정상 즈음에 힘들어서 퍼질러있으면 “아나. 학생 이 하나 무봐요. 마싯데이. 기똥찬데이.” 이러면서 사과나 감을 건네준 아줌마, 아저씨를 많이 만날 수 있었지. 근데 요즘은 잘 그러지 않잖아. 워낙.. 서로 의심하고, 그럴 수 밖에 없고, 께름칙해 하니까. 여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길이니까 이렇게 서로 편하게 대화하고, 주고받을 수 있는걸까? 서로 익숙하니까? 그치만 아까 그 할아버지는 뭔가 아무래도 쎄했어.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어 여기도.


혼자 이래서 그런가. 저래서 그런가. 오만 생각을 하면서 묵묵히 걸어가다 또 태양x물집 공격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래서 언제 도착하냐고 스스로를 또 다그쳤다. 오늘은 진짜 역대급 힘듦이라며. 생각해보니 마을 이름도 골레가. 그냥 골로가라는거 아니야? 골레가가 아니라 골로가다 진짜. 내 오늘 거기 도착하면 그냥 골로가지 싶다. 혼자 드립치고 만족스러워 하다 호스텔만 나쁘지않으면 좀 쉬어가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게다가 지금 걷는길은 도로길이라 그닥 예쁘지도 평화롭지도 않다. 차가 많이 다니는길이라 잘못하면 내가 치일수도 있는 그런 길. 그래도 큰 나무가 많아서 쉴 곳이 많다. 그렇게 또 쩔뚝 걸어가는데 지나가는 차가 조용히 다가오더니 “까미나?까미나?” 물어본다. 내가 산티아고! 까미나! 외치니 아줌마가 알 수 없는 포르투갈을 막 하시다가 따봉! 따봉! 이러면서 우리가 아는 따봉을 손으로 만들어주고 가신다. 별거 아닌 것 같은 한마디가 진짜 큰 힘이 된다. 그 힘으로 걷다보니 골레가라는 표지판을 만난다. 와 진짜 이제 마을 다와가구나. 마을 다와가니 수국으로 담벼락을 만든 집을 만난다. 아 예쁘다. 힘들다는 생각에서 또 한번 벗어난다. 진짜 이러다 골로가겠다 싶을 때 쯤에 자꾸 이렇게 하트가 하나씩 생긴다. 분명 마지막 목숨, 마지막 판이였는데 자꾸 하트를 준다. 한 판 더있으니까 여유롭게 가라고. 아직 기회가 있다고.


아까 쉬면서 미리 찾아두었던 호스텔로 갔다. 문을 활짝열고 들어가니 중년의 여성이 아주 반갑게 맞아준다. 마치 첫 날 호스피탈렐로처럼. 내 집에 돌아온 것 처럼. 아는 포르투갈 단어 몇개를 말했더니 숙소 주인장이 걸어가다 뒤를 돌아보며 놀랜다. 포르투갈어를 할 줄 아냐며 신기해한다. 나는 무또 깐싸다 (매우 피곤하다) 오브리가도/다(감사합니다) 땡고 앙브래(배고파요) 깔리안떼(덥다/뜨겁다) 프리오 (차갑다) 이것밖에 모른다고 하자 깔깔 웃으며 수준급이라고 말해줬다. 웃음이 오가며 체크인을 했고 그때부터 내 고민은 시작됐다.




바람 한 점의 찐-한 행복함
바람을 맞으며 내 발을 위로한다 좀만 참자 얘야


오늘의 둥근 해


해뜰 때의 황홀함
마을로 들어왔다 아 예뻐
그늘길이 펼쳐지거나
바람이 불 때 진짜 행복하다
그늘길이다 소리질뤄!


매거진의 이전글고진감래는 원래 극단적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