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쉼표, 내일은 도돌이표 1
2019년 순례길을 걸으며 작성한 일기장을 열어보았어요. 액기스 기록만 가득한 일기장을 보며 그때의 기억을 덧붙여봅니다. 3년만에 만난 또 다른 나
골로가기 전에 골레가에 도착했다. 친절한 호스트의 환대속에 체크인을 끝냈고, 4인 도미토리에 혼자서 꿀잠을 잤다. 새벽에 우는 진동소리를 꺼버리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다시 눈을 뜨니 8시즘이 되었다. 조급하게 일어날 필요가 없다 생각하니 벌써 신났다. 그래 오늘은 걷지말자! 그냥..그냥.. 좀 쉬자! 혼자 결론을 내리고서 느긋하게 일어났다. 주방에 가보니 아무도 없었다. 파스타를 해먹어야지.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 내 그림자는 항상 무거운 가방이 보였는데 오늘은 등 뒤에 아무것도 없다. 그게 얼마나 홀가분하게 느껴지던지. 매번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인사를 받았는데, 오늘은 내가 먼저 지나가는 소녀들에게 인사했다. 본디아- 본디아- 파스타 면, 양송이 버섯, 몇가지 재료, 과자, 맥주를 샀다. 가방 가득 들고서 광장을 지나가는데 이벤트를 하는지 사람들이 모여있다. 앉을 좌석도 있고, 서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중에 익숙한 얼굴도 보인다. 호스트와 호스트의 어린 아이가 있어서 반가워하며 인사를 나눴다.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고 난 따사롭다고 느꼈다. 뜨거운 태양이 무섭지 않은 오늘이었다.
집으로 돌아가 나만의 소울푸드인 알리오 올리오를 해먹고, 노트북을 들고서 밖으로 나왔다. 동네 카페에 가 에스프레소를 한잔 시켜두고 먹고싶었던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한번쯤은 콘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는데 길을 걸을땐 대부분 목마른 기억이라 생각과 동시에 삭제하는 음식이였다. 달콤한 행복으로 떠올렸다가 목막히는 현실로 바로 삭제해버렸던 그 음식을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길을 걸으며 제한했던 내 행동과 음식을 마음껏 즐기고 나니 나도 그제서야 여유라는게 생긴다.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물론 포르투갈어라 알 길이 없지만) 관심을 갖게되고, 이 근처에 맛있는 식당이 있는지 기웃거리며 돌아다니게 된다. 해가 지는걸 보면서 매일 해 뜨는것만 봤는데 오늘은 이것도 챙겨보네 싶다. 꽤 큰 마을인 것 같으니까 맛있는걸 먹자며 사람이 제일 많은 식당으로 들어가 큰 맥주와 음식을 시켜두고서 사람들을 구경한다. 사람 구경을 참 오랜만에 했다.
매번 나의 고통과 불편함에 집중하느라 시야가 많이 좁아져있었는데 오늘에서야 바닥이 아닌 정면을 보고 로드뷰처럼 360도 다방면을 본다. 무조건 걷는게 답이 아니구나. 쉬고 싶다고 계속 신호를 보낼 땐 이유가 있구나. 처음으로 쉼의 이유를 배웠다.
여유를 얻고 중량을 줄였다. 그간 여기저기 새롭게 자란 새싹같은 물집과 어느새 대빵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큰 물집을 다 없애기로 했다. 알콜솜과 바늘을 준비하고서 모든 물집을 다 없앴다. 특히 왼쪽 발 뒤쪽에 있던 물집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이전에는 이렇게 크지 않았는데 어느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엠보싱 빵빵한 이 물집은 온전히 내 잘못이었다. 내가 발이 이렇게도 아픈 이유는 물론 처음 걸어서 그런것일수도 있겠지만 등산화가 새 것이다. 순례길을 걷기 전 찾아봤을 때 새로 산 등산화보다 차라리 맨날 신던 나이키를 데려가라는게 사실이었다. 나름대로 새 등산화를 길들이려고 오기 전 떠난 제주여행에서 자주 꺼내 신었다. 5km씩 러닝하면서 꾸준히 길들였다 생각했는데 완벽한 오산이였다. 제주에서 걸었던 길은 모두 잘 닦인 평지였고, 지금 내가 걷는 길들은 돌과 자갈이 가득한 흙길이거나 오르막길도 많았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렇게 오랜시간 신으면서 걸어본적이 없으니까.
아직 초면인 등산화다보니 물집이 계속 자라던지 말던지 더 힘내보자고 등산화를 꽉꽉 조아맸다. 물집이 너무 크고 징그러워서 찾아봤다. 그 위치에 나는 물집은 작은 신발을 신었을 때 생긴다고 했다. 등산화처럼 나를 졸라매면서 가보자고! 외칠 때가 아니라 숨 쉴틈을 줘야했던거다. 내 몸에게 미안했다. 주인이 잘 모르고 너무 막무가내로 질러댔지. 미안해 앞으로 조금 더 잘 보살필게. 몸을 구석구석 살피며 앞으로 더 잘 살피겠다고 약속했다.
여행기를 영상으로 보고싶다면 : https://youtube.com/watch?v=FKrgnT4iumk&feature=shares
일기장 글꼴 출처 : 나눔손글씨 가람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