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원하는대로 살아왔다. 늘 재미를 찾아 나섰고 고군분투하면서 힘들고 지랄 난리를 쳐도 재밌었다. 워커홀릭처럼 일에 대한 지나친 흥미가 있거나 뭔가에 꽂혀서 미친듯이 파보거나 그런걸 하는 타입은 아니였다. 그냥 평범하게 매일을 살아내는, 살아가면서 내가 재밌는걸 더 많이 하고 살거야! 를 다짐하고 많이 실행하며 살아가려는 사람이었다. 었다.는 아니고 이다. 지금도 그러니까.
작년 이맘때쯤 퇴사하고 오랫동안 마음속에서만 묵혀뒀던 시골에서 돈벌며 살아가기라는 꿈을 실현하기로 했다. 퇴사할 때 쯤 어쩌다 기회가 잘 맞아서 강원도 산자락 아래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숙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매니저 역할이었다. 원하는대로 메뉴나 방향을 잡아갈 수 있었다. 한마디로 마음대로 놀 수 있는 놀이동산이 생겼다. 나중에 시골에서 같이 돈벌이를 하기로 약속했던 친구를 꼬셔 강원도로 갔다. 명분은 우리 베타테스트 할 수 있어! 남돈내산으로!!! 카페를 처음 오픈하는거라 사용할 집기류부터 자잘한 소품 같은 그릇, 컵 같은 선택권도 얻었다. 동선도 직접 짜게됐고 일하면서 필요한 모든 재료와 기구들을 직접 만들 수 있다니. 그야말로 내돈내산 말고 남돈내산! 가장 신나는 일 아닌가. 게다가 회사에서 법카로 남돈내산할 때는 제약이나 명분이 충분해야 결제 버튼까지 갈 수 있지만, 아무 경험도 없는 우리를 뭘 그렇게 믿어주신건지 사장님께서 너네가 필요하면 그렇게 해. 라고 자주 말씀주셨다. 그러니까 너무 쉬운 남돈내산이였다. (물론 그 말의 무게를 알기 때문에 더더욱 고심해서 주문하긴 했지만)
우리는 모두 초보였다. 사장님은 본업이 있고 운영자가 필요했던 이쪽 업계 초보 사장님. 나와 친구는 초보 매니저(하지만 우리가 매일 가게를 지키고 손보기 때문에 손님들은 우리가 사장인줄 알았다) 3개월 내에 큰 성과가 안보였고 다가올 겨울이 무서웠다. 산자락의 겨울은 길고도 길어서. 사장님과 우리는 서로 많은 이야기 끝에 이만 물러가기로 했다. 그렇게 카페는 조금씩 활력을 잃어가다 머지않아 다른 주인장에게 보내주게 되었다. 사장님은 그 때의 선택을 아직도 후회한다면서 너무 아무것도 몰랐다며 지금도 미안해하시지만. 그땐 또 그만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우린 충분히 같이 대화했고 함께 받아들였으니까. 마지막 대화를 한 날은 눈물 한방울에 맥주 한 모금, 눈물 한 줄에 치킨 한조각이 이어진 시간이었다.
그렇게 3개월의 재미를 즐기고 친구와 난 각자 길을 정했다. 친구는 다시 서울가서 다른 카페 일을하며 앞으로 방향을 조금 더 생각해보고, 나는 일단 불태운 3개월을 보상하고 비워줘야겠다며 인도로 훌쩍 떠났다. 인도를 다녀와 인도에서 카페와 숙박을 하겠다며 난리치며 알아보다가 비자 문제에 걸려 모든걸 그만뒀다. 2년정도 인도에서 카페+게스트하우스 (원래 내 꿈)을 운영하기 위해서 월 렌탈비며 부동산 브로커에도 연락을 많이 돌려놨는데 그렇게 끝났다. 2년 정도 거기서 구르다보면 다시 한국왔을 때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여태까지 모은 몇없는 돈을 한번의 선택으로 다 날려야된다고 생각하니까 그건 좀 막막하더라. 그 때 다시 일어나고 부모님 앞에서 당당하게 나는 후회없다고 말할 자신이 있는가? 노우 수준이 아니라 네버였다. 절대 아니였다. 나는 겁없이 덤비는 것 처럼 굴어도 항상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최악을 생각해두는 편인데 이 최악은 내가 이겨낼 수 없는 그닥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였다. 그래서 인도 사업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와 정보는 배낭 가방에 함께 넣어 창고에 넣어버렸다.
인도를 다녀와 부모님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앞으로의 거처는 이 곳인데 내 방을 고르려고 둘러봤다. 뭐 둘러볼 것 도 없이 바로 옆에 붙어있는 방 두개인데 일단 창고로 변해버린 내 방은..음..패스. 내 취향이 하나도 묻어나지 않는 오빠 방은...그래! 바꾸자! 내가 집을 떠나 썼던 소품들과 필요한 테이블과 의자, 내 몸에 닿을 침구, 침대 옆에 꼭 필요한 협탁, 스피커, 조명들을 두기 시작했다. 작년 4월부터는 대이동의 나날이였는데 그 때부터 풀지 못했던 짐을 날 잡고 풀었다. 4월부터 6월까지 매 월 이사를 했으니까 매번 '당장 필요한 쓸 것들'박스만 풀 수 있었다. 박스에 꽁꽁 갇혀있던 모든것들을 풀어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이틀간 정리를 하고서 꽤나 내 방으로 만들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상을 가꿔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되었고 안정감이 느껴졌다.
아, 집에 오니까 포근하고 좋네. 이래서 집인건가.
그래 우리집은 햇살이 참 잘 들었지.
그래 엄마가 진짜 깨끗하게 관리해줬어.
그래 우리집은 늘 먹을게 많아서 입 심심할 겨를이 없었어.
근데 살다보니 아니 왜, 가 무수하게 더 많아졌다.
한 지붕아래 살면서 쉽지 않았던 이야기를 적으면서 내 마음도 풀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