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을 나가살다가 집에 돌아와보니 생각보다 불편한 구석이 많았다.
엄마나 아빠랑 부딪히고 싸우고 그런일은 없었다.
나는 얹혀 사는 주제에 불만을 제기하고 싶지 않았다.
정말 그랬는데..
불편한 구석은 생각하지 못한 지점에서 나타났다.
아빠는 직업 특성상 큰소리 속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귀가 많이 어두워졌다.
그러다보니 티비 소리는 항상 무지막지하게 컸다.
어릴때부터 그 소리를 듣고 자라왔으니 익숙해질 법도 됐는데 나는 그 소리에 질려서 티비자체가 싫어졌다.
아무도 보지않는데 항상 틀려져있는 티비, 보험/상조 광고 소리, 홈쇼핑 소리, 시끄러운 군중소리 (오빠놈은 매번 해외 축구 경기를 틀어놨다)…
내게 티비는 항상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물체였다.
그래서 티비가 없는 삶을 지향해왔고, 운좋게도 내가 살아온 환경에서는 소음을 조절할 수 있었다.
9명의 동거인과 함께 살 때도 복작복작 시끄럽게 살았지만 듣기 싫은 티비소리가 아닌 우리가 만드는 소리여서 소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 티비 세상으로 돌아왔다.
알고 싶지않은 뉴스 소식이나 뻔해빠진 실제상황 그날이야기, 구식사고가 만연해서 보고 있으면 괜히 화가나는 사랑과 전쟁, 전원일기 소리들이 가득찼다.
나는 내가 살아온 것 처럼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조명을 바꾸고 원하는 것들을 해나가고 싶었다.
티비 세상이 아닌 내 세상으로 가고 싶었다.
그 때마다 문을 닫았다.
처음에는 엄마,아빠가 이름을 부르면서 문을 활짝 열어댔다.
내가 자주 쿰척쿰척 놀래며 하던일에 방해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다음에는 노크를 해주었다.
서른 넘은 자식놈이랑 또 맞춰 살려니 힘들었을거다.
엄마 아빠가 나름 노력을 해주니 그 마음이 고마워서 문을 가끔 열어두었다.
마음같아선 내가 글을 쓰거나 영상 편집을 하거나 어떤걸 할 때는 집중을 해야하니 문을 꼭 닫아두고 싶었는데 그냥 열어두는게 의리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러다 그게 심증이 아니라 물증이라는게 밝혀졌다.
영상 포트폴리오를 만들겠다고 집중하느라 작업할 때는 무조건 문을 꼭 닫아두고 생활했다.
그랬더니 2시간에 한번꼴로 뭐하노? / 도대체 뭐하는데? 뭐 재밌는거하나? / 우리도 좀 알려도 뭐하노? 다양한 문체로 똑같은 질문을 했다.
다음날 아침에는 “하루종일 문 꼭 닫고 있으니까 뭐하나 싶어서 불렀는데 대답도 없고 궁금타”
우리집의 궁금증과 관심과 의리는 문 열린 정도와 동일하다.
내가 문을 꼭 닫아둘때면 우리네 집주인은 섭섭해한다.
물론 집주인이 정말 친구라면 뭐하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이렇게 답했을텐데,
“나중에 시골가서 먹고 살게 지금부터 준비해야하는데 생각해보니까 나는 다 쪼매쪼매할 줄 알고 어떻게든 업그레이드 시켜야되고 지금 갈비뼈 금가서 나가서 돈 벌지도 못하고 너무 답답하고 그러니까 그냥 미래를 위한 준비인 개념인데 옆에서 보면 너무 거창해보이지만 사실 별거 아닌 그런거를 미친듯이 준비하고 있는데 될지도 잘 모르겠고 몰라 그냥 일단 해봐야지 싶어서 좀 설치고있다”
그치만 엄마, 아빠니까. 나를 언제나 가여워하고 어떻게든 도와줄려고 애쓰는 우리네 집주인분들이니까.
하숙인은 “그냥. 이것저것~” 으로 대답하고서 그 날은 종일 문을 열어뒀다.